생생한 방언을 시어에 담아 제주의 정체성 살려내
제주 훼손에 저항하는 굿시 등 다양한 형식도 수용
"우리 상처를 인정받으려면 남의 상처도 먼저 봐야"
급하다는 전갈 받고/ 요양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아침 여섯 시 반// 방금 전 돌아가셨수다// 어머니는 구석 침대에 가만히/ 하얗게 누워 계셨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와시냐/ 하고 대답할 것만 같은데/ 어머니/ 어머니// 울어야 하는데/ 정말 울고 싶은데/ 이상하다/ 눈물이 돌지 않는다// 고마웠수다/ 흰 손 잡아드렸다// 차지 않다 _ '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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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탑동 방파제에 선 김수열 시인. 어린시절 아침밥만 먹고 나와 하루종일 놀던 아름다운 해변은 매립돼 광장으로 변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어머니의 영혼은 채 식지 않았다. 따뜻했다. 날것의 혼, 갓 죽은 몸에서 빠져나온 혼, 그것을 두고 제주에서는 '날혼'이라고 불렀다. 제주 토박이 김수열 시인이 어머니의 '날혼'을 표제로 8번째 시집(삶창시선)을 펴냈다. 제주 오일장에서 어린 시인과 함께 꽃을 팔던, 동문시장 노점에서 감귤을 팔던, 생계가 어려워 일본에 밀항했다가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던, 아들의 학창시절에는 장한 어머니상을 끝내 거절하다 오랜 세월 뒤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받기도 했던, 어머니였다. 그 모친이 멀쩡하게 요양원에 들어간 지 4개월 만에 지켜보는 가족 없이 홀로 떠났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는 아직 따뜻한 혼이었다.
평생 제주를 떠나 살아본 적 없는 김수열은 가위 제주 지방문화재급 시인이다. 1982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살아온 이래 시대와 조응하는 시를 써오다가 근년부터는 제주 방언을 시로 살리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학을 선보이는 중이다. 제주라는 섬의 정체성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생생한 언어로 조각한다. 190cm에 육박하는 '남들보다 머리통 하나 더 있는' 키다리 김수열 시인을 그가 어린시절 놀던, 지금은 매립돼 광장으로 변한 제주시 탑동에서 만났다.
-5년 만에 묶어낸 시집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등단 이듬해 4·3을 처음 쓰기 시작한 이래 꼭 안 쓰면 안될 것 같은, 제주도 1만8000 신들 중 누군가 시키는 것처럼 썼던 것 같다. 4·3을 겪은 세대가 아닌데도 당시 제주를 생각하면 섬 전체가 큰 무덤으로 다가온다. 어딜 가나 그때 흔적들이 있다. 그런 곳에 가면 이상하게 안 쓰면 꼭 죄를 짓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제주에서 살아왔던 선배들의 풍습을 공부도 하고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와 기억을 토대로 제주의 삶을 잊혀져가는 제주어로 전해주고 싶었다."
절물 편백숲에서 생태숲으로 나오는 샛길 걷는데 이 길도 그 길 저 길도 그 길 같아 잠시 망설이는데 마침 마주 오는 아주머니 한 분 있어 길을 묻는다 그 아주머니 위아래로 쓰윽 훑더니만 고사리 등짐 살짝 추스르고 답지 않은 섬놈에게 조근조근 말씀하신다//저래 굳장 가당 보민 양 가달이 나옵니께 그디서 노단착으로 호쏠 노려사민 질이 뵈려짐니께 헤천바레당 양 가달 넘어살 수 이시난양 맹심해사 해요 혼저 저래 굳장 가보세요 _ '양 가달' 전문

제주 방언 '가달'은 '갈래', 혹은 '다리'의 의미다. 김 시인이 생태숲 샛길을 걷다가 '양 가달'에서 고사리 따러 왔던 제주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더니 '노단착'(오른쪽)으로 '호쏠'(조금) '노려사민'(내려가면) 길이 보이는데, 설렁설렁 가다는 갈래길을 놓쳐서 지나칠 수 있으니 명심하라고 했다. 말투는 제주도 놈인데, 멀끔한 허우대는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마지막 말은 어정쩡하게 표준어 '가보세요'로 맺더라고 했다. 모두 표준어로 옮겨놓으면 시가 안 될 뿐더러, 인물 자체의 생생함이 사라진다는 말, 공감할 만하다.
-주도 달지 않고 제주 방언을 그대로 전개하는 시편들이 많다.
"초기 시집들에는 제주어 쓰는 것을 좀 두려워했던 것 같다. 갈수록 제주어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제주어나 제주에 대해 더 관심이 가면서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아왔나 싶은 것들이 많다. 제주어가 어머니 뱃속에서 배운 최초의 언어인데, 이걸 표준어로 고치게 되면 시가 아닌 느낌이 든다. 제주어로 써야 리듬도 호흡도 있고 시가 된다. 표준어로 고치게 되면 얘기를 나누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없어진다. 나 자신의 이야기보다 다른 이들에게 빙의할 때 주로 제주어를 쓴다."
-평안도 방언을 시로 옮긴 백석의 '방언 시학'이 연상된다.
"백석의 시에는 주를 달지 않아도 알아서들 찾아보는데 제주 사람들은 친절하게 주를 달더라. 나도 몇 개는 주를 달았지만 외국어도 아닌데 글쓰는 사람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제주도는 아직까지도 식민지인가, 해외 내국인가 싶다. 대한민국 안의 한 영토인데 왜 우리 말만은 주를 달아줘야 되나, 과잉 친절 같다. 정말 더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요즘은 제주어도 사전에 많이 나오니 찾아보면서 생생하게 시의 현장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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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열 시인은 "삼도리 해녀 대장 강 씨 할망은 탑동 매립 반대 투쟁 당시 물옷 입고 비창 들고 맨 앞줄에 서 있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먹보말 돌킹이 조기 물토새기 구살 오분작/ 보들락 코생이 어랭이 객주리 물꾸럭 각재기// 불러도 부르고픈 구수한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돗줄레 삐쭉이 스프링조쟁이 돌붕어 줄락탁/ 뺄레기똥 심방말축 동녕바치 똥깅이 뽕똘// 불러도 대답 없는 그리운 벗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이레착 저레착 바람은 뒈싸지고/ 싸락싸락 겨울비는 헤싸지고/ 중환자실 목숨처럼 바당은 아무 말이 없고 _ '겨울 탑동' 부분
난이도가 높은 방언 위주로 해설하자면, 돌킹이는 게, 물토새기는 물돼지, 구살은 성게, 객주리는 쥐치, 물꾸럭은 문어다. 아침밥만 집에서 먹고 조무래기들은 하루 종일 지금은 매립된 아름다운 탑동 해변에 나와 점심과 저녁까지 바닷가에서 채취한 것들로 배를 채웠다. 이 때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의 별명이 흥미롭다. 주둥이 삐쭉 나온 도마뱀 종류를 닮아서 '돗줄레'요, 아무리 수영을 가르쳐줘도 물에 뜨지 않던 친구는 '돌붕어'였다. 바다에서 나오면 고추가 쪼로록 졸아드는데 그 모양이 스프링 같다고 붙인 친구 별명은 '스프링 조쟁이'다. '조쟁이'는 제주어로 남자 성기. 불러도 대답 없는 그리운 벗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바람은 '뒈싸지고' 겨울비는 '헤싸지고' 중환자실 목숨처럼 바당은 아무 말이 없을 뿐.
'어린 시절 유독 개씹이 잦았다/ 어머닌 쪼가리 무명천으로 눈가리개를 만들었지만/ 개씹 때문에 창피했고/ 가리개 때문에 더 맘 상했다'('방법')는 시에서는'개씹'이라는 어휘의 표준어를 알지 못하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예전 제삿날 밤 대화가 매혹적인 '불알시계'의 한 대목은 제주의 자연과 사람이 손에 만져질 듯 다가온다. 아버지 왈 '밖에 나강 보라, 북두성 꼴랭이가 어디 시니?' , 잠이 덜 깬 눈으로 마당에 나와 하늘을 보던 어린 아들 답 '예, 동펜이 울담 먹구슬낭에 거러졌수다'. 동편 담 먹구슬나무 가지에 북두성이 걸렸으니 이제 파제(罷祭)를 해도 좋을 시각인 것이다.
미얀마항쟁이 백 일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 '그들은 머리를 겨누지만/ 혁명이 심장에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고 외친/ 나이 마흔다섯 미얀마 시인 켓 띠는/ 미얀마 군부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 후/ 심장과 모든 장기가 적출당한 채/ 하루 만에 텅 빈 주검으로 버려졌다//…// 약탈당한 심장 대신 수만의 사랑으로 되살아난/ 미얀마 시인 켓 띠는 세 손가락 치켜들고/ 세상의 심장을 향해 외치고 있다/ /우리의 시에 심장이 없다면/ 그건 시가 아니다/우리의 노래에 심장이 없다면/ 그건 노래가 아니다// 결코 혁명이 아니다 _ '심장 없는 시인, 켓 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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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행불인묘역을 찾은 김수열 시인. 그는 "당시 제주는 섬 전체가 큰 무덤이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1~3부는 제주어를 바탕으로 한 시들이 포진해 있지만 4~5부는 국제 연대의 감성으로 확장된 4·3정신과 제주 땅을 훼손하려는 시도에 맞선 '설문대할망' 굿시 등이 그동안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진설돼 있다. 김 시인은 "4·3을 공부하면서 나중에 깨닫게 된 건 우리만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면서 "우리의 상처가 상처로 인정을 받으려면 남의 아픔도 먼저 봐야 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가족으로 손녀가 찾아오긴 했지만 김 시인은 지난 몇년 사이에 어머니와 장인, 장모를 모두 보냈다. 어머니의 '날혼'을 보내드린 뒤 홀로 찾은 식당.
오늘은 혼자 갔다/ 혼자인데도 아무도 안 묻는다/ 곱빼기 대신 보통을 시켰는데도 묻지 않는다/ 왜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묻지 않는다// 얼마 전 벚꽃 필 때/ 어머니, 아버지 뵈러 먼 길 가셨다고/ 이젠 여분 그릇, 가위 안 줘도 된다고// 입이 근질근질한데/ 하, 아무도 묻지 않는다 _ '아무도 묻지 않는다'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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