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 어두운 뼛속의 먼 하늘로 날아가는 새에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5-04-11 17:15:43
생명으로 잇는 열번째 시집 '시와 물질' 펴낸 나희덕 시인
인간과 비인간 경계 허물고 다양한 생명체 탐구하며 대화
과학과 시의 대립 탈피 서로 연결, 주관과 감정 최대 배제
"파국으로 가는 지구에서 서로 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온몸이 귀로 이루어진 존재가 되고 싶었다./ 경청의 무릎으로 다가가 낯선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지친 손과 발을 가만히 씻기고 싶었다.//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길러진 열정으로서의 연민./ 그 힘에 기대어 또 얼마간을 살고 썼다.
 

▲ 시와 물질 사이를 잇는 새 시집을 펴낸 나희덕. 그는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기울이고 받아내는 산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 제공]

 

나희덕 시인이 열번째 시집 '시와 물질'(문학동네)을 펴내면서 서두에 붙인 말이다.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길러진 열정으로서의 연민'이라는 구절이 눈에 밟힌다. 일찍이 '뿌리'를 향한 흙의 모성이 강렬한 시로 등단했던, 고아들과 함께 성장한 그의 연민은 '타고난' 자질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아무리 타고난 것이어도 세상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수많은 생채기를 지나오면서 그 연민은 변함없이 생생하리라고 기대하는 건 과도한 기대일지 모른다. 길러진 열정으로서의 연민이란, 부단한 공부와 올곧은 자세가 담보할 수 있는 의지의 소산일 터이다. 이번 시집은 그러한 공부가 어떻게 진화된 서정으로 나아가 새로운 자각과 울림을 줄 수 있는지 시전하는 모범이라 할 만하다.

근육과 혈관 속의 세포들은/ 매일 조금씩 사라지거나 생겨나는 중// 대체 무엇을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방금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간 사람./ 그를 돌아보는 동안에도 세포 몇 개가 사라졌겠지 _ '세포들' 부분

과학적으로 따져본다면 인간의 몸을 이루는 물질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어서 어느 상태가 진정한 '나'인지 규정하기 어렵다. 어디까지가 '나'일까. 지난 계엄 국면에서 광장에 나갔다가 발을 헛디뎌 응급실에 실려간 뒤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 그는 '피부를 지닌 존재로서/ 철이나 플라스틱이나 세라믹과 연결된 이 몸'의 가장자리는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고 썼다. 그의 사유 속에서 '나'의 개념은 거미불가사리와 진딧물, 산호와 버섯으로까지 확장된다.

-'시와 물질'은 어떤 관계인가.
" 사실 시와 물질을 연결하고 있는 주제어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생명체들에 대한 탐구,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성, 이런 것들을 조금 더 집중해서 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시집의 톤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간 느낌인데, 무게를 좀 빼려고 했다. 감정이든 진술의 무게이든 일부러 생략하고 누그러뜨리고, 진술도 질문의 형식으로 바꿔서 시 자체가 하나의 질문으로 독자에게 다가서는 방식을 취했다. 인용된 텍스트들이 많은데, 공부하고 읽으면서 사유의 단초를 줬던 책이나 예술작품들과 대화를 하면서 새로운 상호 텍스트성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썼다."

-무엇을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근대 주체로서의 인간, 나라고 자명하게 불려왔던 그런 것에 대해서 계속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되고 그것이 확고하게 경계가 있다는 것은 그 경계 밖으로 배제되는 타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자명해 보이는 우리 사유체계 안에 있는 그런 경계를 계속 넘는, 근대에 의해서 구획되어진 그런 선들을 계속 없애 나가는, 그러면서 그 존재들과 접속하고 연결되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깊은 바닷속 거미불가사리처럼 '이제 눈으로 생각하고/ 뇌로 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썼다. 온몸이 귀가 되기를 바라는 시인이 선망할 법하다.
"시인이 다른 존재들과 조금 다른 점은 감각기관의 구조나 역할일 것이다. 시인은 결국 시로 말하지만 그 전에 잘 느끼고 듣는, 온몸이 감각기관이 되는 그런 점에서 거미불가사리라는 존재가 굉장한 것이다. 인간보다 더 오래된 생존의 비밀과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공생은 서로 돕는 게 아니라 이용하고 착취하는 거라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하지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이득을 보도록/ 모든 생물종은 설계되었다고./ …// 과연 개미는 개미 자신을 위해서만/ 진딧물은 진딧물 자신을 위해서만 물기어린 손을 잡는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인지 _ '진딧물의 맛' 부분

-서로 착취하고 이용하는 공생도 사랑인가.
"사랑이다. 의문문으로 썼지만 사실은 제 진술이다. 이기적인 생존 본능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여러 진화생물학자들을 거론했는데 그들의 생각을 추종하거나 동의해서가 아니다. 그 이야기들을 사랑의 차원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에게만 사랑이 있을까, 숭고한 사랑의 예를 동물들에서도 찾지 않나. 함께 살지 않으면,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파국으로 향하는 지구에서 우리에게 남은 날이 얼마나 될까. 이런 관계성 속에서 서로의 차이와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면서 서로 돕지 않으면,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시집은 4악장으로 구성된 심포니 같다. '밤과 풀'(1부)에서 비인간의 존재들을 응시하며 이번 시집의 방향성을 드러내고, '파편들'(2부)에서는 그런 관심사와 연결된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피와 석유'(3부)에서는 그가 그동안 써온 서정시의 연장선상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존재들을 들여다보고, '산호와 버섯'(4부)에 이르러서는 '시라는 이름의 산호 또는 버섯'의 미래로 이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연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 폭격당한 땅 위에 피어난 분홍빛 장미처럼/ 총탄 맞은 나무에 달린 버찌처럼/ 죽은 병사의 가슴에 누군가 놓아둔 라일락 한 다발처럼/ 폐허를 걸어가는 농부의 귓바퀴에 꽂힌 들꽃처럼// …//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오소리나 왜가리의 습성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정치와 정원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정치의 동물성과 정원의 식물성을 _ '조지 오웰의 장미' 부분

-자연도 정치적인가.
"리얼리스트라면 모더니즘과 대립되는, 심미적인 것과는 먼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대립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저도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한다. 리얼리스트가 현실을 그냥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심미성을 부여해야 되고, 사회적 메시지를 내더라도 그것이 시의 언어로서 일정한 형식미나 함축성을 갖고 있어야 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리얼리스트를 넘어서려고 할 때 더 리얼리스트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문단에서 정치성과 심미성의 관계를 논의하고, 새로운 서정을 추구하면서 외연을 계속 넓혀왔다. 동료들 시를 읽다보면 그런 변화들 속에서 한국 시가 유연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하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다'는, '유리창 너머' 사진작가의 말이 흔연하다.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고 굉장히 거창한 일을 한다는 걸 드러내고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예술가의 야망에서 벗어나, 오히려 가끔은 이렇게 무심한 듯 자유롭게 예술이 힘을 뺄 때 반응이 일어난다. 시라는 것도 그렇게 엄숙하기만 한 것일까. 이전 시집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과학적인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점인데 과학과 시의 대립적인 것들을 연결해 보려고 했고, 거기에 주관적인 생각이나 해석을 붙이기보다는 그냥 그걸 보여줌으로써 시를 읽는 사람이 스스로 어떤 생각의 계기를 갖게 하고 싶었다. 최종 교정을 보면서도 주관적이거나 감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은 계속 걷어냈다."

 

 

▲ 나희덕 시인은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도 시를 믿는다고 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최대한 감정적인 부분들을 걷어냈다고는 하지만, 등단작 '뿌리에게'(1989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뿌리로부터'(2011)를 거쳐 나아 온 서정의 바탕은 여전하다. 날기를 소망했던 그의 '새'는 세상이 사납고 참담해지면서 무겁게 가라앉아 바위에 붙박인 채 갈수록 희미해지는데, 정작 그 새는 '내 어두운 뼛속의 먼 하늘을 날고 있었다'('무겁고 투명한') 고 썼다. 날아오르는 것만이 비상이 아니라, 뼛속 깊이 사무치는 것도 일종의 비상이라고 했다.

삿포로에 가서는 '십 년 전 길에서 죽은 동생' 옆에서 '눈의 대지가 들려주는 심장소리를' 듣고, 새벽 꿈에서 누군가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를 듣고 깨어난 아침 그녀가 떠났다는 부음을 듣고는 '누가 죽음을 고요한 묵음이라 말하는가' 탄식한다. 과학을 넘나들지만 시인은 부인할 수 없는 샤먼의 숙명이다. 호주의 섬에 사는 시인과 산호와 버섯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는 '더 깊은 숲으로, 더 멀고 먼 숲으로/ 포자 터지는 소리가 폭죽처럼 들리는 숲으로' 난 시의 길을 다짐한다. 그가 연주하는피날레는 서로를 받아내는 '산파의 손'이다.

실뜨기는 자주 어그러지지만/ 우리는 다시 손가락에 실을 걸기 시작한다/ 작은 무대 같기도 하고 바구니 같기도 한 실의 형상은/ 가만히 입을 벌린다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며// 무너져가는 실테를 아기처럼 받아내는 산파의 손을 _ '손과 손으로'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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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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