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병고로 위축된 몇년 동안 일기 쓰듯 메모한 것들
그 동굴 생활이 쏟아놓은, 생명을 향한 자연스러운 호흡
"'기계지성' 아닌 '인간지성'만이 가능한 문학의 향기 주목"
서울 놈치고 어째 촌스럽더라니,/ 나중에 소설가가 된 전라도 친구/ 내 본적이 강원도라는 걸 알고서/ 낄낄거리고 좋아하던 모습/ 60여 년이 지난 오늘/ 어제 웃음처럼 홀연히 귀에 가깝다/ …/ 편안함이 주는 평안/ 그 원류의 힘은 강원도 아닐까/ 강원도 방에 누워서 처음으로 생명을 마신다 _ '강원도-늦은 나이의 여행길에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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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순을 넘어서 첫 시집을 펴낸 원로 문학평론가 김주연. '카페 플라츠' 앞에 선 그는 "지금 플라츠는 피난처다/ 병원으로 가야할 시간,/ 병원에서 이제는 잠시 나와/ 한숨 내뿜어도 좋은 시간"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원로 문학평론가 김주연(84)이 시집 '강원도의 눈'과 팔순을 넘기면서도 현장 비평의 끈을 놓지 않은 결실 '포스휴먼과 문학'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란히 펴냈다. 시집은 60년 가까이 근엄한 비평의 문체로 자신의 사유와 독후 생각들을 진설해오다, 처음 편안한 호흡의 형식으로 발언을 한 것이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
그가 시집 '자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원적(原籍)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 탑리는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오랫동안 지도에서도 찾지 못했지만, 그의 정신에 새겨진 고향의 상징이 돼버렸다. 그에게 그곳은 어느 순간 '엊그제까지 살던 고향처럼' 다정하고, 생명과 자연의 아득한 거처로 다가왔다. 대학시절 낄낄거리던, 소설가 친구 김승옥이 그 생각의 발단을 제공했고 후일 북에 다녀온 이들이 북쪽 강원도에 이천이라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줘 비로소 그 실체를 파악하게 됐는데, 그곳은 38선 북쪽으로 편입된 미수복 강원도 지역이었다.
강원도는 그의 정신에 생명과 자연과 평화의 아늑한 고향 이미지로 잠복해 있었던 것인데, 근년에 팬데믹을 거치고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입원으로 병원을 오가며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생명을 향한 갈망이 강원도의 이미지를 거느리고 시편들로 솟아났다. 그는 코로나와 병고로 위축된 몇년 동안 일기 쓰듯 메모한 것들이라면서 "그 동굴생활이 쏟아놓은, 생명을 향한 자연스러운 호흡의 언어가 시의 형태를 입었다"고 했다. 자서에서 "시집이라고 우기고 싶지는 않다"고 했지만, 오랜 세월 다져온 내공은 빛을 숨기지 못한다.
한 줌 바람도 보이지 않는/ 대낮이다/ 아무도 없다// 유리창을 깨뜨릴 듯 두드리는/ 한밤중의 비바람/ 아무도 없다// 귓가를 살짝 만지고 가는/ 가느다란 바람 소리/ 누군가의 엷은 발자국// 먼, 아득한 바람에/ 생명의 소리/ 들린다 _ '바람'
-팬데믹 지나 이즈음은 '유리창을 깨뜨릴 듯' 시끄러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펜데믹 시절을 지나면서 6·25의 공습경보가 오버랩됐고, 그 느낌은 지금도 여전하다. '윤석열 사건'이 나에게는 심리적으로 6·25다. 좌우로 편이 갈리는데 어디서 좌가 나타날지 어디서 우가 나타날지, 적인지 아닌지를 백성들은 알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사이렌이 공습경보를 알리면 미군 B-29 폭격기가 떠서 폭격을 하는데 그 와중에 죽는 사람은 꼭 좌가 아니다. 한 집안에서도 아저씨는 인민군 의용병으로 가고, 이제 스무살 먹은 놈은 대한민국 국방군으로 가는 그런 세월이었다."

김주연의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난은 열살 소년 시절, 서울에서 홀로 부산까지 피난을 가야 했던 기억이다. 충북 옥천을 거쳐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겨가며 트럭을 얻어타고 간신히 부산에 도착해서 가족과 상봉한 과정은 그에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 부산에서는 신문도 팔았고, 어머니의 자매들 집으로 뿔뿔이 흩어진 형제들 중 하나로 경포에서 몇개월 살기도 했다. 이때 경험이 이번 시집에도 배어 있다. 학창시절에는 '피난민의 설움'이라는 소설을 써서 급우들과 돌려 보기도 했을 정도로 6.25의 고통스러운 환경은 그에게 오래 각인되었던 것인데, 이즈음 극렬한 세상의 소음은 그가 공습경보를 떠올릴 만한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물속에 빠졌다/ 10리 바위까지 헤엄쳐 가다가/ 발밑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익사하는 것// 눈 속의 물에 처음부터 빠지고 싶었다/ 맑은 그대 눈의 물속에/ 내가 있었다/ 나를 건지고 싶었다 _ '경포 호수-강원도 2'
-묶어놓고 나니 전체를 관류하는 공통 정서가 보이는가.
"솔직히 정직하게 그냥 썼을 뿐인데, 무심코 썼던 것들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게 됐다. 전체를 관류하는 공통된 것은 생명이다. 내가 아프고 가족이 아픈 데서 출발했지만 지구가 아픈 환경과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나도 몸과 마음이 아프고 더불어서 함께 이 지구도 아프다는 사실을 그 시기에 실감한 거다. 여러 자리에서 강연을 하고 원고를 쓰다 보니 결국 지구의 위기, 생태계의 위기 얘기였다. 공부를 해서 얘기한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실감 차원에서 느낀 지구의 신음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공부를 하고 나서도 몰랐다/ 인류세라니, 무슨 세금 종류인가 했다/ 사람으로 사는 값, 사람세라니/ 설마 했는데 사실이었다// 인류세(人類世)는 인류세(人類稅)지만 세금은 세금이다/ 홀로세 다음으로 나타난 지질시대의 이름이라나/ 인류의 교만으로 초래된 지구의 환경 악화 이름이라나 _ '인류세' 부분
새로운 지질시대를 일컫는 '인류세'를 인류가 치러야 할 세금으로 읽는 시각이 흥미롭다. 이번 시집에는 원로 인문학자의 묵직한 발언들도 질문의 형식으로 포진해 있다. 독문학자인 그는 '파우스트' 연작 시편에서 괴테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는 문장을 빌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고 했는데/ 나머지는 모두 추락하는가// 여성의 맞은편에/ 남성이 있고/ 남성의 맞은편에/ 여성이 있지만// 영원히 여성적인 것/ 영원히 남성적인 것이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는 "페미니즘은 아름답고 부드럽지만/ 영원히 여성적인 것도/ 아름답고 부드러울까"라고 이어가면서 "아름다운 여성은/ 남성을 껴안는다/ 아름다운 남성도/ 여성을 껴안는다/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영원히 여성적인 것-파우스트 4')라고 맺는다.
성소수자를 두고는 "소수가 축제를 벌이는 곳에서/ 진리의 아픔은 잊어버린다/ 소수는 소수 자신이 축제"라면서 "세상이 온통 문학예술로 가득가득하다면 / 나는 기꺼이 문학을 버릴 것"('성소수자')이라고 쓴다. 그의 동업자인 '평론가'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친분의 굴레는 더욱 깊어지고/ 행복과 고통은 앞뒤로 엮어지면/ 풍성한 생기는 환멸과 싸움을 잉태"하여 "진리나 오류나 허세는 하나가" 되면서 "중구난방 역겨운 소리를 낼 때/ 평론가, 자네들은 어릿광대였구나!"('어릿광대가 된 평론가-파우스트 8')라고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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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년 평론을 시작한 이래 현장비평을 고수해온 김주연은 "어찌 보면 나의 문학행위는 세상의 화와 싸우는 위로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1966년 '문학'지에 '카프카 시론'을 발표한 이래 줄기차게 현장비평을 수행해온 김주연은 팔순을 넘긴 지금도 여전한 현역이다. 이번 평론집에 수록한 글들은 모두 근년에 청탁받은 원고들이다. 그는 서문에 "어찌 보면 이러한 문학 행위가 세상의 화와 싸우는 위로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썼는데, 노년에도 명징한 이성으로 글쓰기를 지속하는 흔치 않은 전범이다. AI로 상징되는 '기계 지성'이 횡행하는 시절에 문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포스트휴먼' 시대를 원로의 시각으로 성찰한 이번 평론집에서 그는 '인간 지성'만이 가능한 '문학의 향기'에 주목한다.
-AI 시대 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나는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작품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AI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AI는 아무리 대답을 다 잘해도 질문을 하는 게 아니잖은가. 질문이라는 건 의문인데 의문이라는 건 지금까지 진리인 척 하는 모든 것을 두들겨보는 것이다. 지금도 책상 앞에 앉으면 제일 자주 보는 게 괴테의 책들이다. 괴테에 관한 논문은 한국에서만 수백편이다. 독일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모두 거의 비슷하다. 그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는 차원에서는 논문으로 쓰는 것보다 시가 더 좋은 측면이 있다. 나에게 문학은 '질문하는 언어'이다."
김주연은 극도로 지쳐 로뎀나무 아래에서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쓰러진 선지자를 천사가 살려주었다는 성경 속 이야기를 빌려 완성한 '로뎀나무' 시편에서, "살기도 좋고 죽기도 좋은 그 그늘 아래 눕고 싶다"고 썼다. 그가 아프면서 체득한 진리.
'친한 건 아프고/ 아프면 친해진다/ 반(半) 진리에 이르는 데/ 80여 년 걸렸구나/ 진리는 아프면서 친해진다'_ '간헐적 파행'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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