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5-04-04 17:40:34
두번째 소설집 '혼모노' 펴낸 '한국문학 미래' 성해나
태극기부대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문제적 지점 포착
가짜 진짜의 경계,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다양한 시도
"작가란 사회 통증 함께 앓는 사람, 이해하는 노력 필요"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2024 예스24 선정) 성해나(31)가 두번째 소설집 '혼모노'(창비)를 펴냈다. 대체로 젊은 작가군이 근년에 집중해온 소재는 젠더 갈등이나 성소수자처럼 흐름에 쏠리는 편이었는데, 성해나의 경우는 작금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적 맥을 짚는 관찰자 시선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편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한국사회 갈등의 상징인 '태극기부대'를 비롯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탐색하며 드러난 현상의 본질을 파고 드는 단편들이 포진해 있다.
 

▲ 두번째 소설집을 펴낸 성해나. 그는 "사회와 계속 호흡을 맞춰 나가면서 통각을 공유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창비 제공]

 

한국사회를 대혼란에 빠트린 계엄 사태는 헌법재판소 만장일치 판결로 고비를 넘어섰다. 이로써 결정적인 혼란의 매듭은 풀었지만 '타이극기' 그룹의 '충정'이 안고 있는 극단적인 분열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할까. 성해나가 이번 소설집에 수록한 단편 '스무드'는 직접 태극기부대 시위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겪고, 소수의 상위층만 누리는 고급아파트 갤러리를 배경으로 그들만의 단절된 세상을 관찰하는 작품이다.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으나 나는 곧 그 상황에 적응했고 미스터 김처럼 음악에 맞추어 '타이극기' 를 흔들었다. 미스터 김과 '열사'들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기도 했다. …내 손을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며 한국어로 무어라 말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미스터 김은 그들이 나를 대견해한다고 했다. 당신도 '열사'예요. 우리처럼요. _ '스무드'

'듀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지만 한국은 처음 방문한, 아버지가 철저하게 한국을 외면하는 교육을 시켜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스러운 캐릭터이다. 그가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져 당황하던 터에 성조기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우연히 '타이극기' 대열에 합류해 관찰하는 이야기이다. 듀이는 미국 조형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 1955~ )의 매니저 중 하나로, '스테인리스스틸을 미끈하게 세공한 검은색의 구'를 하이엔드 아파트 주민만 출입할 수 있는 갤러리에 전시하기 위해 방한한 터였다. 제프 쿤스 작품은 매끈한 외관에 속을 알 수 없는 스타일인데, 검은 색의 '구' 또한 표면에 바깥 세상이 거울처럼 일렁일 뿐 전체 외양은 그저 세련된 모습으로 딴청을 피우는 작품이다. 특정 소수의 주민만 향유할 수 있는 경계 너머의 '구'와, 그들만의 한정된 세계에 갇혀버린 '타이극기' 세상의 단면을 작가는 판단하지 않고 단지 보여줄 따름이다.

-극단적인 그룹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세태이다.
"작가란 사회의 통증을 함께 앓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태극기 부대라는 계층 내지 집단도 그 통증의 일부일 것이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옹호의 차원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적, 아니면 내편이라는 단순한 피아식별의 관점으로 판가름해서는 안된다. 그냥 저 사람들을 서로 사람으로 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성별이나 정치색, 인종 이런 것에서 벗어나 그냥 인간됨을 서로 봤으면 좋겠다. 증오나 혐오 같은 감정은 필터를 거쳐 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일차원적 감정이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감각이어서 너무 쉽게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한번 필터를 거치는 사유를 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2022년 이후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이번 소설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첫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세대'였다면, 이번 소설집은 세대적 관점도 녹아 있지만 그보다는 현상과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현상이라는 게 어떤 사회적 문제라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본질을 이번에는 도출해내려고 애썼다. 뭔가 안에 숨겨진 것, 예컨대 진짜와 가짜의 본질이랄지, 어떤 계급의 본질을 꿰뚫는 시도를 한 소설들이 있다." 

이번 소설집에는 무속의 세계를 배경으로 가짜와 진짜의 경계를 천착하며 자유를 추구하는 무당을 내세워 화제를 모았던 단편 '혼모노'도 수록돼 있다. 이 표제작은 30년 경력 박수 무당인 '문수'가 어느날 새파란 여자아이에게 그의 몸주인 '장수할멈'이 옮겨가면서 망신살 뻗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무얼 바쳐도 감격이나 감사 한번 하지 않던 할멈도 목단을 올리면 늘 흡족해하곤 했다. '곱구나, 참으로 고와. 역시 혼모노(ほんもの·진짜)는 다르네'라면서. 그리 극진히 모셨건만 할멈은 어린 '신애기'에게로 가버렸고, 그에게 오래 도움을 받은 정치인은 자신에게 의뢰했던 굿마저 신애기에게 넘긴다. 신애기의 굿판에 찾아간 문수가 날이 시퍼런 작두 위에 올라 마지막 대결을 벌인다. 신애기가 먼저 나가 떨어진 뒤에도 발에 피가 철철 흐르지만 춤을 멈추지 않은 그는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며 큭큭거린다.

-가짜에도 '진짜 가짜'가 있는가.
"사실 진짜와 가짜의 경계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어떤 것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의 이야기다. 진짜와 가짜를 이분법적으로 나눈다기보다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합성어를 떠올리면서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려 했다. 진짜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의미를 더 많이 투영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사실 그런게 그리 중요한가. 그런 본질 다툼에서 놓여난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길티 클럽:호랑이 만지기'에도 열성 팬카페 회원들이 '물의'를 일으킨 감독을 열렬히 옹호하지만, 어느순간 화자가 미몽에서 깨어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역시 진짜와 가짜의 뒤얽힘과 그 속에서 빚어지는 착시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이야기를 비틀어 허구의 인물 '여재화'와 그의 제자 '구보승'의 스토리로 전개한다. 건축 위에 인간이 있다는 신념이 기계적으로 제자에게 전달돼 고문실에 비칠 한뼘의 '빛'을 고문의 도구로 만들게 되는 아이러니다. 스승은 슬쩍 빠지고 설계자로 오명을 남기게 된 '구'의 말. 

 

제가 선생님의 뜻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창이 필요했던 건데…… 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으니까요.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우호적인 감정'은 '부장급' 인물이 젊은 세대와 한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갈등에 초점을 맞춘 단편이다. 성해나는 "이전 소설집에서는 세대별로 맞춤한 역할을 주목하며 긍정적인 조화를 지향했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사실 서로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비애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농촌 공동체 마을 활성화 프로젝트가 소재인데, 실제로 성해나는 성장기에 공동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완벽한 공동체라는 건 희망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표 같은 물음표가 따라다닌다"고 했다.

 

▲ 성해나는 "궁극에는 '좋은 소설'을 넘어서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탁월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창비 제공]

 

'잉태기'는 자신들이 설계한 대로 딸과 손녀를 몰아부치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갈등을 다룬 한판 막장극이다. 임신한 딸을 괌으로 보내 출산시키려는 엄마와 또다른 소유욕으로 일관하는 할아버지, 그 사이에서 아무런 주체적 시각도 지니지 못한 딸 이야기가, 공들여 취재한 일부 유한계층의 행태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개된다. '메탈'은 표제 그대로 헤비메탈을 동경했던 고교 시절 세 친구의 바래가는 우정을 다루면서, 그래도 청춘기의 방황과 지향은 지워지지 않는 인생의 '빛'이라는 희망을 제시하는 단편이다.

충남 예산 출신으로 대안학교인 홍성 풀무원학교에서 고교시절을 보내고 서울예술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성해나는 일찍이 8세 때부터 시를 쓰는 어머니와 메일로 대화를 나누며 성장했다. 'TV문학관'을 보다가 잠든 할머니에게는 나머지 줄거리를 자신의 창작을 보태어 들려주곤 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수요집회에 다녀와 '김복동' 할머니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다듬은 소설 '봄이여 오라'가 충남작가회의 청소년 대상 공모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계속 뱉어내고 첫 숨을 쉬는 행위는 다시 살기 위한 작가의 책무라는, '작가의 말'.

부엉이는 제대로 된 숨을 뱉기 위해, 살기 위해 모구(毛球)를 쏟아낸다고 한다. 작가도 소설 한편을 쓸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나 싶다. 오랫동안 모아둔 슬픔과 회한, 의문과 성찰을 쏟아내고 다시 첫 숨을 뱉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말이다. 이 일곱편의 작품 역시 내가 쏟아낸 모구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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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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