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에 덧씌워진 편견을 걷어내고 '치욕의 역사' 직시
결핍 공유하는 망국의 왕과 내시가 나누는 '브로맨스'
"서사 뒷면 감당하는 소설로 인간 내면 한계 그릴 터"
'나는 음낭이 없다. 성년으로 접어든 사내의 몸에 음낭이 없는 것은 신체의 여러 기관 가운데 하나가 떨어진 것에 불과하나 전부 제거된 상태와 다름없다. 팔다리가 없는 것과는 속사정이 사뭇 다르다. 나는 좆힘으로 버틴다는 말을 지금껏 이해하지 못한다. 그 말을 들을 적마다 내가 속한 무리에서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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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여 년에 걸쳐 집필한 새 장편을 선보인 소설가 이현수. 그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고종의 다른 면모를 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썼다. [작가 제공] |
소설가 이현수가 망국의 시기에 조선의 왕으로 살았던 고종을 내시의 시선으로 재조명하는 '나의 마지막 조선'(문학동네)을 펴냈다. 희화화된 내시 이미지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그들의 삶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고종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형식이다. 내시라는 소수자가 제대로 부각된 적이 없었고, 고종이 식민사관 영향으로 공보다는 과에 치우쳐 부정적으로 인식돼 온 측면을 감안할 때 눈에 띄는 소설이다.
이현수는 '신기생뎐'의 기생에 이어 같은 조선시대 소수자인 내시를 돌아보면서 인간의 존엄을 탐색했다. 사면초가의 삶을 살아야 했던 고종의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의 존재인 내시와 공통으로 접속되는 측면이 있어, 이들의 교류는 서사를 입체적으로 이끌어내기에 적합하다. 존경할 만한 왕과 사랑할 수 있는 왕이 있다면, 반석호에게 고종은 사랑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철저한 주종 관계이면서도 형제이자 전우 같은 브로맨스로 확장된다.
반석호는 다섯 살 때 개에게 음낭을 물려 고자가 된 후 내시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인물이다. 그는 기존 역사물에서 희화화되거나 엑스트라로 소모되었던 내시의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작가는 내시는 단순한 시종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학문과 지식을 갖추고 엄격한 승진 단계를 거치는 전문직 관료일 뿐 아니라, 생물학적 거세를 통해 육체의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가 남은 '제3의 성'으로 규정한다.
소설의 도전적인 지점은 고종에 대한 재해석이다. 이현수는 고종을 '녹색 신호등'에 비유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파란불'이라고 불러왔지만 실제로는 '초록빛'인 신호등처럼, 고종 역시 식민사관과 망국의 책임론에 가려 그 실체가 왜곡되어 왔다는 것이다. 고종은 자주 눈물을 흘리고 수치심에 떠는 '피식자'(포식 질서에서 희생되는 존재)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정보 운영 능력이 뛰어난 '모던 보이'이자 '얼리어답터'이기도 하다. 그는 고종을 '가장 문학적인 왕'이자 '복잡한 내면을 가진 실패한 인간'으로 포착했다.
-내시의 시선으로 '마지막 조선'을 들여다본 이유는?
"영웅에는 관심이 없다. 가장 문학적인 왕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니 고종이 떠올랐다. 고종을 주인공으로 쓴 예가 별로 없다. 망국의 왕인데 누가 좋아하겠나. 나라를 망해먹은 망국의 왕과 신체가 불완전한 소수자인 내시는 둘 다 결핍이 많은 인간이다. 가장 안 좋은 상황에 처한 그 둘을 축으로 세웠다. 내시는 조선이 망하면서 종족조차 사라졌고, 한 주군은 나라의 문을 닫았다. 한 집안을 망해먹어도 가솔들이 회고할 때마다 원망이 클 텐데, 왕은 얼마나 끔찍할까 싶었다. 안 좋은 상황에 처하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그 상황에서 결핍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극함에 대해 쓰고 싶었다."
-어떤 '지극함'인가?
"누군가에게 쓰임을 당하지만 자기의 존엄을 잃지 않으면 많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서도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인간, 그 지극함으로 그리고 싶었다. 내시들은 대부분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쓰고 버리는 도구 같은 엑스트라로 나온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관인데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전문직이었다. 내시가 되려면 일정 수준의 학문과 지식이 있어야 시험을 통과하고 승진 단계는 세분돼 있다. 내시는 우스운 직업이라는 편견에 많이 치우쳐 있다. 역사는 언제나 선비들이 쓰기 때문에 사대부의 특권으로 이런 존재들을 소도구로 취급한 것인데,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단히 전문적인 문신이었다."

-고종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다.
"그동안 고종의 공보다는 과가 더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고종은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고 부끄러움도 많은 신중한 남자다. 평화스러운 시기였다면 성군이 됐을 거다. 19세기 제국주의 열강 침략의 파도가 높을 때 아무리 활달한 왕이 명쾌하게 판단하고 실천력을 가졌다고 해도 힘들었을 것이다. 고종은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왕이라고 본다. 많이 측은했고, 쓰면서 사랑하게 된 면도 있다. 이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마음과 왜 이랬어야 될까 싶은 마음이 교차되면서 안타까움이 컸지만, 응원해 주고 싶었다. 내시를 내세운 것도 그런 전략이다. 최측근 내시가 보는 고종은 주군인데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짐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어. 바람의 방향을 아는 자가 진정한 지도자일세. …고백건대 개화파를 지지하다 슬그머니 발을 빼기도 했어. …그 일 말고 또 있네… 돌아보니 짐은 불신의 정치를 했어. …짐이 부덕하여 나라를 잃었어.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총 한 방도 쏘질 못하고. 곱씹을수록 기가 막히네.'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총을 쏜들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지요. …폐하께서는 할 만큼 하셨습니다.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무너졌는데도 조선을 독립된 나라로 유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쓰셨습니다. 지금 왜는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폐하의 실체 왜곡에 나섰다지요.'
'언제나 내 편이었지. 삭막한 대궐에서 무조건 편드는 사람이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하던지. 자네는 숨은 방 같은 존재였어. 험한 몰골로 숨어들어도 이유를 불문하고 먹이고 씻고 치유하는…… 나는, 자네가 좋았네.'
-동무 같은 내시와 나누는 고종의 육성이 생생하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는데.
"일본이 당시에 자신들이 장악한 언론으로 악의적으로 선전했던 부분들을 걷어내고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자는 맥락이다. 누구든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서 평가를 해야 한다. 훗날 평가하는 이들은 그 뒤의 미래를 다 알고 있지 않나. 그때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역사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쓰는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니까 고종 당대부터 불리했을 것이다. 비록 망국의 군주이지만 다시 보자는 말이다. 그는 자기 눈으로 나라가 문 닫는 걸 보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말을 떠올린 배경은?
"요즘 보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때 우리는 당시의 에너지원인 산림 벌채권을 러시아에 넘겼고 미국에는 광산을 줬다. 어느 한쪽에 먹히지 않기 위해 고종도 고민을 많이 했다. 석유를 노리고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그냥 잡아오지 않나. 그때랑 뭐가 다른가. 정치라는 것이 명분과 실리 중간에서 줄을 잘 타야 하는데, 그냥 아무 명분도 없고 외교적 법적 절차가 하나도 없다. 완전히 제국주의 시대로 변화하는 게 아닌가, 그런 두려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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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 황제(위)와 국상 장면.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국상에 참가하려고 지방에서 올라온 백성의 수는 대략 사십만 명이었다. [위키피디아] |
이현수는 반석호라는 내시의 내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거세를 통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지닌 그들에게 "성적 대상으로서의 집착이 아닌 순수한 갈망, 육체의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 뚜렷이 남은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열렬한 찬미와 희구"라고 썼다. 반석호의 양아버지인 남수중과 천상궁의 안타까운 사랑, 내시 남편을 둔 어머니의 '아이고 타령'을 매개로 한 첫사랑, 내시를 만드는 거세 장면의 세밀한 묘사 등은 내시를 새롭게 보는 텍스트로 기여할 핍진한 대목들이다.
이현수는 자신은 "인간의 뒷모습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서 "'나의 마지막 조선'이 역사소설이라면 망국에 주목해야 할 테지만 인간에 방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문예지에 연재하던 이 작품을 완전히 엎은 뒤 다시 썼다는 그는 "소설은 모름지기 서사의 앞면보다는 뒷면을 그려야 하는데 탐탁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도 인간의 뒷모습, 내면의 모순과 한계를 끝까지 드러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시 반석호가 황제좌의 서쪽 하늘 환관성(宦官星)으로 떠나면서 남긴 유언.
'운수가 박하고 좋은 시절을 만나지 못해 하루아침에 나라가 무너졌으니 한낱 고자에 불과한 내가 그 망극함을 어찌 입에 올리랴. …우리 백성은 부디 정신을 차리고 일본이 치밀하게 심어 놓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옛 조선의 영광을 찾으라. 훗날 반드시 돌아와 백성들이 이룩한 찬란한 땅을 내 썩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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