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발표된, 문학성 높은 작품들 발굴 소개
솔직하고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고감도 해설
"세계문학 된 한국문학의 자산, 제대로 돌아볼 때"
문학평론가 박혜진이 이상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단편소설을 선별해 엮고 해설을 붙인 앤솔러지 '퍼니 사이코 픽션'(클레이하우스)을 펴냈다. 정열로 인해 말 그대로 몸에 불이 붙은 화신이 있는가 하면, 내내 육식에 집착하다가 갑자기 비구니가 된 사람, 나비 떼를 먹고 죽는 사람, 기필코 좁은 공간으로만 숨어들어 사라지는 사람, 자신만의 뇌관인 빨간 풍선을 보며 절망하는 사람, 가짜 이론을 만들어 세상을 속이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포진한 단편들이다. 요컨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괴한 인물들'이 읽는 이의 숨겨진 내면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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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된 과거 작품들을 선별해 현재를 돌아보는 앤솔러지를 펴낸 평론가 박혜진. [클레이하우스 제공] |
편집자로도 이름이 난 박혜진이 '알라딘'에서 펀딩을 받고 독자들의 기대 속에 이 앤솔러지를 기획한 배경에는 "돌아보니 주변에 성난 사람들이 많았는데 알고 보면 다 아픈 이들이었다"는 자각이 자리 잡고 있다. 소설 속 우울하고 병적인 캐릭터들이 튀어나와 활보하는 듯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그는 "내 상처를 방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오랜 시간 낙제생이었지만, 인간이라는 거대한 질문과 씨름하며 나만의 풀이를 생각해내는 것으로 작은 보람을 느낀다"고 썼다.
이 단편들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발표된 것들로, 세기말 세기 초의 감성을 담보한 작품들이다. 송경아('정열'), 김이태('식성'), 안성호('나비'), 이평재('마녀물고기'), 채영주('상자 속으로 사라진 사나이'), 이응준('그녀는 죽지 않았어'), 박성원('댈러웨이의 창')의 단편들인데 크게 빛을 보진 못했으나 지금 돌아보아도 충분한 현재성을 지니는 작품들이라는 차원에서 박혜진의 작업은 겹으로 조명 받을 만하다.
-'작품의 시효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고, 그런 짧은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작품들도 너무 많다'고 썼는데, 서구 작품은 오래 전 것까지 경쟁적으로 펴내면서 정작 국내 작품들은 너무 쉽게 사장하는 것 같다.
"그때그때 시대정신에 따라 작품들이 선택 되는데 어떤 작품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시대의 부주의인지, 편집자 때문인지는 모르되 대접을 못 받은 작품들이 안타깝다. 이즈음 타인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상담을 한다. 정신병이라는 게 지금 우리 시대 인간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대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과거 작품들 속에서 관련 작품들을 솎아보고 싶었다. 사실 앤솔러지라는 형식이 과거 무크지에서 보듯 상당히 전위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데, 요즘은 많은 수상 작품집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의문도 들었다. 저 나름대로 수상 작품집을 만들어본 셈이다."
-이 시점에서 '아픈 사람들'을 천착한 배경은?
"주변을 보면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를 못해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만연한 것 같다. 이런 사연을 다루는 영상도 굉장히 조회수가 높고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를 구분하는 방법도 화제다. 사실 소설가들이 약간 스스로 환자이면서 의사이고, 인간에 대해서는 어떤 면에서는 심리학자보다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을 잘 읽으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어떤 캐릭터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어서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해답을 조금 얻은 느낌이다."

이 앤솔러지는 특별히 '변화'라는 키워드로 일곱 인물을 분석한다. 연애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곤 하는 남자 앞에서 끝내 불에 타버리는 여자를 등장시킨 '정열'을 두고는 '병적인 자기애에 가까운 남자의 속성'을 적시하며, '평온하고 투명한 세계'의 실체는 다름 아닌 '나르시시스트로 가득한 이해 없는 세상'이라고 박혜진은 본다. 이 남자의 불행은 '잘 안 변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고기에 병적으로 집착해오다 정작 미국 유학을 갔다가 갑자기 고기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는 '식성'의 언니는 "곳곳에서 비린내와 기름기가 자신을 두들겨 치는 것 같았다"고 하소연한다. 박혜진은 "자아가 확립한 길을 따라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실은 수많은 변덕 속에서 양극단을 오가며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체에 더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 언니는 '너무 쉽게 변하는 사람'이다.
교도소를 지키는 초병이 여자 죄수가 높은 담장 아래에서 나비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다가 자신도 휴가지에서 나비 떼에 기도가 막혀 죽는다는 설정인 '나비'의 인물들은 변화를 위해서는 재조직이 필요한데 "남자와 여자는 다른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갇히길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변화를 꿈꿨던 사람'이다. 이평재의 문제작 '마녀물고기'의 남자는 '자신이 변한 걸 모르는 사람', 채영주의 남자는 '변화를 피하는 사람', 이응준의 인물은 '끝내 못 변한 사람', 박성원의 사진가는 '변화를 악용하는 사람'이다.
-'변화'를 키워드로 삼은 이유는?
"처음에는 그냥 사이코적인 캐릭터를 모으자는 생각이었는데, 모아놓고 보니 결국 변화라는 것이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불행도 비극도 변화 속에서 이해가 되고, 변화라는 걸 이해 못하면 납득이 안되는 차원들이 있다. 살면서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들도 변화라는 시각으로 보면 그때마다 변화를 못했거나, 변화했는데 변화라고 몰랐거나, 변화를 못 받아들이거나, 그런 상황들이었던 것 같다. 보편적인 설득력을 높이고 싶었고, 누구나 읽었을 때 전혀 어렵지 않게 쓰고 싶었다. 사실 여기 실린 소설들은 쉬운 소설은 아닌데, 쉽다고 재미있는 건 아니고 어렵다고 더 재미 없는건 아니지만 제 글은 그냥 좀 쉽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작품 그 자체보다 작품에 대한 의미를 소비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허영과 허위'를 분석한 글에서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읽기 위해 작품을 '사유화' 했던 경험이 내게도 있다'고 고백한다.
"솔직하게 썼다. 칭찬에는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직면하는 일인 것 같다. 싫고 상처 받지만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 얼마나 유용한 정보이자 깨달음이 되는지 계속 인식해야 된다. 제 말만 계속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비평집을 내고 나서 했다. 비평가로서 사회에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어떤 생각을 얘기한다면 내가 낸 길들에 사람이 많이 다녀야 된다. 그 길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지 않으면 그냥 의미 없는 길, 사라지는 길이 된다.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유포하는 방식의 비평이 아니라, 제가 이해하는 것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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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진은 "과거에서 온 이 소설들은 현재에 쓰인 어떤 소설보다 더 현재적으로 인간의 심연을 증언한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이 소설들에는 요즘 보기 힘든 성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즈음 소설들에는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집단무의식의 자기 검열이 작동하는 것 아닐까.
"폭력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판단을 해야겠지만, 중요한 건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욕망 덩어리이고 통제할 수 없는 어둡고 냄새 나는 면들을 가 지니고 있어서 인간을 제대로 그리려면 그런 부분 없이 묘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심연과 속성에 대해 얘기하기 위한 장면이기 때문에 필요한 장면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는 것도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다.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예측하기도 하는데, 자칫 소설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지면 그것도 문제다."
-소설이 치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저는 문학을 공부하고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지 의사가 아니다. 정신 병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당연히 과학이나 의학의 관점에 풀어낼 수 없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 아니다. 저는 프로이트도 문학으로 읽는다. 철학이나 인문학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난해하고 따분한데 소설로 읽으면 일상적이고 약간 무슨 말인지 몰라도 재미있다. 사실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가 갖는 태도도 그 정도면 딱 좋을 것 같다. 이상하고 이해가 잘 안되는데 좀 궁금하다, 재미있네, 이렇게 바라보는 태도가 자신은 물론 타인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박혜진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국문학은 이제 세계문학 자체이기도 한 것인데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학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소외됐지만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고감도 감성과 예리한 시각으로 출판 현장에서 새 길을 열고 있는 비평가의 에피그람.
'요컨대 나는 나의 일진이었다. 강한 내가 약한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고 겁박했다. …이상한 사람 안에 평범한 사람이 있고, 평범한 사람 안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 그 둘은 종종 구분되지 않는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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