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로봇 불가 아니라 대화 전제 입장"
위험하고 부담 큰 공정 우선 적용 전망
"노동자 나락 떨어지지 않도록 지원이 관건"
"영국은 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고 '붉은 깃발법'을 만들었는데, 결국 자동차 산업에서 뒤처지고 말았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혁신을 주문하면서 한 말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였지만 기계산업의 꽃인 자동차 산업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 등에 주도권을 빼앗겼는데, 그 배경 중 하나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1865년)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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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차체 공장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이 품질 검사를 하는 모습.[뉴시스] |
1865년 제정된 이 법은 증기자동차 운행에 세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운전하고, 다른 사람은 보일러에 석탄과 물을 집어넣는다. 나머지 한 사람은 붉은 깃발을 들고 뛰거나 말을 타고 사람들이 비켜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 했다. 마차 산업과 노동자 보호를 위해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없게 한 이 법은 30년 넘게 존속했다. 속도를 높여야할 때 거꾸로 제한을 둠으로써 자동차 산업 발전에 역행했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조가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다시 회자되는 역사다. 19세기 산업혁명기에 영국 노동자들이 방직기를 때려 부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이번에는 로봇과의 갈등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더 나아가 이제 로봇이 대체하려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새로운 혁신 기술이 나타났을 때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은 정해진 수순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 대응 방식에 따라 사회 전체적인 편익을 후퇴시키는 대표적 사례로 '붉은 깃발법'이 거론돼 왔다. 거꾸로 독일 역시 영국보다 수십년 먼저 증기선을 개발했지만 뱃사공 길드(장인이나 상인 조합)의 반발에 꺾여 전체적인 산업혁명의 물결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기술의 물결을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어도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실기(失期)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현대차 노조도 로봇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한 의도로 보인다. 자동차 생산 현장의 자동화는 이미 가속화돼 왔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현대차 아산공장의 자동화율은 프레스가 90%, 차체(용접) 70%에 이른다. 다만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만든 '아틀라스'가 인간처럼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점에서 보다 전면적인 노동 대체를 우려하는 것이다.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은 '인력 전환 배치가 수반되는 자동화·신기술 도입 시 노조에 통보하고, 요청 땐 설명회를 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는 아틀라스 배치 계획이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로봇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노조와의 충분히 대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대화를 해보고 정당하다면 인정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대차는 오는 2028년까지 아틀라스 등 휴머노이드 로봇 3만 대 양산 체제를 구축하고 제조 현장에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사 쪽 입장에서는 절박한 과제로 볼 수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 점유율을 급속도로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로봇을 통한 효율성 강화는 필수적이다.
경쟁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테슬라가 자사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공장 단순 업무에 이미 시범 도입했고, BMW도 미국 공장에 로봇을 투입해 차체 조립 공정을 맡겼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독일 공장의 물류와 초기 품질 검사에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현대차가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아틀라스를 투입하는 첫 단계로 안전 취약 분야를 꼽는 분석이 적지 않다. 차체에 내·외장 부품을 장착하는 의장 공정이 대표적이다. 손과 어깨, 팔꿈치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업무여서 근골격계 질환을 야기하는 등 노동 부담이 크다.
이서현 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람과 유사한 외형과 행동이 필요한 의장 분야는 자동화가 어려운데, 휴머노이드 로봇을 통해 노동자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와 로봇이 작업을 분담하고 위험성과 신체 부담이 큰 작업은 로봇이 맡는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전체적인 일자리의 수는 줄어드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신기술이 도입되는 시대적 변곡점인만큼 현대차로서도 고용 감소 피해를 최소화하는 적극적 지원책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안종기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아틀라스의 기술 수준을 보면, 현대차가 전반적인 제조 생태계를 뒤집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높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러다이트 운동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었고 그 과정에서 단결권 같은 노조 권리가 높아진 측면도 있다"며 "현대차도 밀려나는 사람들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안전망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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