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연설 전문, 출간 전후 심정, 북향정원 식물성 삶
미발표 시들과 함께 담아낸 글쓰기 안팎 작가의 초상
"사랑이란 우리 가슴과 가슴 사이 연결해 주는 금실"
한국 작가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수상 이후 첫 책으로 산문집을 펴냈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필두로 작품 출간을 전후한 작가의 심정, 미발표 시, 북향 집 정원 풍경이 담긴 정원일기 등을 수록한 산문집 '빛과 실'(문학과지성사)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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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책으로 산문집을 펴낸 한강. 그는 소설이 포기 상태에 이르렀을 때 "하루씩 살고 쓰자고, 그걸 천 번만 반복하자고" 다짐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 계엄을 거치면서 자주 인용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같은 명구들이 등장한 전후 사정이 연설문 전문에 담겨 있다. 쓰는 자의 지극한 태도가 작품 출간 전후 소감을 담은 산문들로 이어져 작가의 내면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미발표 시와 함께 수록한 북향 집 정원일기에는 작가의 식물성 영혼이 투명하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연설은 대체로 울림이 큰 편이다. 윌리엄 포크너(1897~1962)는 "작가는 자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진실을, 심장의 보편적인 진실을, 모두가 공유하는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토니 모리슨(1931~2019)은 "언어는 죽음 이후가 아닌 지금, 이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서 "삶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는 없지만, 그 삶을 향해 나아갈 수는 있다"고 희망을 설파했다. 올가 토카르추크(1962~)는 "문학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다정한 손"이고 "세상은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이며 우리는 그 일부이자 전체"라고 했다.
토카르추크의 사유도 한강과 다르지 않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들고 다녔던 노트에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라고 써 넣었다. 이들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사유의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거니와, 한강 연설은 인간들을 연결하는 사랑의 금(金)실을 발견한다. 지난해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 한강의 수상 기념 연설 제목은 이번 산문집 표제로도 뽑힌 '빛과 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_'빛과 실'
한강은 이사를 준비하다 1979년 여덟 살에 썼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그는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자신과 연결됐다고 느꼈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이 빛나는 실을 다시 자각하는 과정에는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통과하는 여정이 있었다.

그가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려던 단계에서 어린 시절 어른들 몰래 읽었던 '광주 사진첩'의 기억이 그를 붙들었다. 그는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십 대 일기장에 적었던 문장들의 답을 '소년이 온다'에서 찾았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이른 것이다. 이 장편을 읽는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는,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어진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그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그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묻고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 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맺는다.
소설이 출간되었다. 더 이상 새벽에 일어나 초를 켜지 않아도 된다. 외딴집이 정전됐을 때 촛불이 얼마나 밝은지 보려고 보일러 센서 등을 가리고 냉장고 코드를 뽑지 않아도 된다. …살갗에서 눈이 녹는 감각을 기억하려고 손이 빳빳해질 때까지 눈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검색창에 '학살'이란 단어를 넣지 않아도 된다. 구덩이 안쪽을 느끼려고 책상 아래 모로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 …울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눈물로 세수하지 않아도 된다. …산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_ '출간 후에'
소설을 쓰는 한강의 태도는 지극한 정성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도자에 가깝다. 그는 "남은 삶에는 평화도 희망도 없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결론에 다다라 있어서 하루씩 살고 쓰자고, 그걸 천 번만 반복하자"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일은 소설을 써 갈수록 점점 살게 되었다"고 썼다.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음악을 들으며, 내가 김연아라고 생각하면서 스파이럴 동작을 흉내 내기도 했다. 온몸을 써서 춤도 췄다. 빙글빙글 돌고 있으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쓴다…… 쓴다./ 울면서 쓴다.// …//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온 힘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_ '출간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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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은 '출간 후'에 "더 이상 눈물로 세수하지 않아도 된다, 산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썼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
'북향 정원'은 마흔여덟 살에 그의 명의로 온전히 갖게 된 최초의 집, 열다섯 평 대지에 딸린 열 평 집 좁은 마당에 가꾼 정원 이야기를 담았다. 북향집 좁은 정원이라 햇빛이 고루 비치지 않는 상황이 문제였다. 조경사의 조언을 따라 정원에 각도가 조절되는 탁상용 거울을 설치해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돌려주었다. 그는 "모든 나무들에게 고루 빛을 쬐여 주려면 여덟 개 거울의 각도와 위치를 약 십오 분에 한 번씩 옮겨 주어야 한다"면서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의 감각을 그렇게 익히게 되었다"고 썼다.
햇빛이 잎사귀들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 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그 기쁨에 홀려 십오 분마다 쓰기를 중지하고 마당으로 나와 거울들의 위치를 바꾼다. 더 이상 포집할 빛이 없어질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_'북향 정원'
이어지는 '정원 일기'는 2021년부터 2년 동안 기록한 정원의 식물에 관한 기록이다. 한강이 정원 일기에서 관찰한 생명의 움직임은 섬세한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한강은 2021년 4월 23일, '내가 벽으로 거울 빛을 쏘아 주지 않자, 단풍나무가 스스로 마당 가운데를 향해 몸을 틀었다'고 썼다. 마지막 시 한편.
더 살아낸 뒤/ 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 보았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_ '더 살아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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