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생활 마치고 '읽기'에 투신한 지 10년 만에 펴낸 노작
문학이 어떻게 인간을 변화시키고 다른 삶을 만드는지 집중
"이야기가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녹턴'은 야상의 소설이고 회한의 소설이다. 동시에 '녹턴'은 희망의 소설이고 부사의 소설이다. '이미'와 '아직'이 만나서 '다시'를 연주하는. 그리하여 한밤중에 우리가 녹턴을 듣는 이유는 한낮의 시간을 돌아보며 삶을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숱한 실패와 좌절에도 인생이란 긍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건네고픈 말일 테다. _'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녹턴-가즈오 이시구로)
![]() |
| ▲ 오랜 편집자 생활을 마치고 '읽기'에 투신한 문학평론가 장은수. 그가 그 결실을 10여년 만에 묶어냈다. [풍월당 제공] |
'읽기 중독자'로 불릴 만큼 독서와 책 문화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문학평론가 장은수가 오랜 읽기의 결실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첫 에세이집을 펴냈다.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풍월당)는 그가 이사를 다니면서도 버리지 못했던 20권의 모던클래식을 살뜰하게 소화해 그만의 방식으로 독자들을 설레게 한다. 문학 기법이나 난해한 용어에 집착하지 않고, 절망의 밑바닥에 놓인 인간들이 어떻게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그 '자유'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첫머리에 배치한 일본계 영국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을 " '이미'와 '아직'이 만나서 '다시'를 연주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맥락은 시적이다. 밤에 떠오르는 상념 '야상'(夜想)은 대부분 회한이기 십상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야상곡 같은 소설들을 두고 장은수는 대부분의 인간이 '이미'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만, 늙은이들조차 '아직' 새로운 기회가 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무언가를 시도하는 존재라고 본다.
장은수는 "삶의 경로가 완연히 뒤집힐 압도적 상대와 마주쳤는데, 맞붙어 싸울 수도, 뒤돌아 도망칠 수도 없을 때" 우리는 이 망연자실의 순간에 "우물쭈물 제자리를 맴돌면서 살길을 찾으려는 방황"을 하는데"이곳에 항상 문학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왔다"고 썼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문학은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여 시험하고, 그 선택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과 가치가 있는지, 더 나아가 인간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려줌으로써 "숙명적 수동성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삶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문학은 자유를 가르치는 기계"라는 시각이다.
이 에세이집은 '녹턴'을 필두로 '네메시스'(필립 로스), '작은 것들의 신'(아룬다티 로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 '한밤의 아이들'(살만 루슈디), '소네치카'(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아우스터리츠'(W.G.제발트),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 '절반의 태양'(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뉴욕 3부작'(폴 오스터), '하얀 이빨'(제이디 스미스), '킨'(옥타비아 버틀러), '브로크백 마운틴'(애니 프루), '세상의 모든 아침'(파스칼 키냐르), '화이트 노이즈'(돈 드릴로), '화씨 451'(레이 브래드버리), '여름별장, 그 후'(유디트 헤르만), '시녀 이야기'(마거릿 애트우드), '남자의 자리'(아니 에르노)를 자신만의 독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말미에는 한강의 작품 세계를 덧붙였다.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면서 많은 책을 만들었는데 정작 자신의 첫 에세이집 출간은 오래 걸렸다.
"작가들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존경스러운 사람이지만, 읽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이 읽었다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것이 책이 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의심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확신이 생겨서 내게 된 것인데 한 10년 걸렸다. 제가 생각하는 편집자의 윤리는 저자의 그림자 속에 영원히 있는 자인데, 그림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 자체가 옳은 걸까 싶은 생각도 계속 있었다. 요즘은 놀랄 정도로 세태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럴수록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문학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은?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문학이 다른 삶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지금 이 삶이 아니라 다른 삶으로 변화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일종의 공허한 상태에서 의미가 있는 상태로 가거나 아니면 절망에서 희망, 슬픔에서 기쁨의 상태로 옮겨가는 이런 이야기들이다. 이번 책에서도 바로 그런 변화에 관한 부분들, 주인공의 존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치중해서 보았다. 평론가들은 기법에 관심이 많은데 저는 문학보다는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왜 이 작품이 좋은지가 아니라 이 작품이 우리 삶에 뭘 말하려고 하는지, 그점을 주로 보려고 했다."
-문학이라는 외피를 쓴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선별 기준은?
"저도 닥치는대로 읽는 편이지만, 적어도 자기 삶에 와 닿은 부분, 일종의 촉발하는 부분이 생기는 작품이라면 장르를 넘어서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한 책들은 30~40대에 열심히 읽었던 책들 중에서 이사를 수없이 다니면서도 지금까지 남은 것들이다. 이 책들은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당대의 삶에 정보화 세계화 신자유주의가 덮치면서 삶이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규칙으로 전개됐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 잘 모르는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 '얼음 땡'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질문 앞에 제일 정직하게 맞선 책들이다. 그때의 상황이 현재도 계속되면서 우리 삶을 얽매고 있다. 이 작품들은 여전히 어떤 대답을 해 주고 있는 셈이다. 굳이 특별한 기준을 말하자면 공동체를 향해서 말하는 바가 있어야 되는 것 같다."
바싹 쫓아온 생존의 사냥개들이 우리를 끝없이 달리게 하고, 잦은 정보가 우리를 탈진하게 하는 시대에 아직 문학이 쓰이고, 우리가 그걸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모두 소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진된 인간, 즉 가능성을 모두 잃은 인간은 살아도 살고 있지 않고 살아 있어도 이미 죽어 있다. 그러나 문학과 함께하는 한, 우리에겐 아직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가꿀 자유가 남아 있다. _서문
-'문학은 자유를 가르치는 기계'라고 서문에 언급했다. 어떤 자유인가.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이 엄습한다. 아무리 애써봐야 뭐하나 싶은. 지금 한국 사회가 특히 너무 시니컬한 절망에 젖어 있다고 느낀다. 이런 체념적 수동성의 상태로 계속 살면 결국 그냥 넘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때야말로 문학을 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야말로 바로 이런 삶에 인물들을 던져놓고 가혹하게 괴롭히지 않나. 그 인물들이 결국 체념적 수동성 내지는 운명의 습격을 견디고 일어나는 장면들을 작가들이 끝내 만들어내는데, 사실 그게 작가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감성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실 굉장히 논리적이다.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녘에 난다고 했는데, 문학 하는 작가들은 대낮에 날게 만든다. 현실 속에 지혜가 작동하게 만들고 예언의 역할도 수행한다."
![]() |
| ▲ 장은수는 "이기의 존재인 인간을 이타의 존재로 바꾸는 힘이 문학에 있다"면서 "문학이 없다면 시민도 없다"고 썼다. [풍월당 제공] |
-보후밀 흐라발의 서사를 빌려 '책은 우리에게 사랑의 힘을 가르치는 도구'라고 썼다.
"사랑이란 결국 타자를 향한 관심인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늘 생각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기 생존에 큰 관심이 있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욕망이 크다. 한국 사회는 특히 그 생존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하다. 타자에게 말을 건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주는 게 문학이다.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자기 삶에 대입해서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이야기가 있는 한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언급한 배경은?
"이야기의 본질은 고쳐쓰기이다. 이를테면 삼각관계 사랑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하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계속 고쳐 쓰고 있는 것이다. 읽는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자기 경험이나 사유를 투입해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식으로 고쳐 쓰는 셈이다.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현재가 낯설게 보이게 돼 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낯설게 보이면, 그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현실에 맞춰 자기를 고쳐 쓰려고 할 것이다. 이야기는 한 사회를 언제든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장은수의 책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학의 효용이 강력하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뛴다. '풍월한담'에 연재했던 내용 중심으로 묶은 이 책은 '풍월당'에서 10여년 강의해온 고전읽기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서문 격이다. 편집자의 일을 마치고 인생 후반부는'무의미와 공허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우리 영혼을 지켜주는 세 가지 기본 동사'에 투신했다는 그는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빛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문학 부흥사' 장은수의 에필로그.
'작품 속을 여행하면서, 나는 읽어서 재생의 힘을 얻고, 일해서 나와 세상을 바꾸며, 사랑해서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확인하는 인물들을 수없이 마주쳤다. 문학은 우리를 강하게 단련시킨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