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백산, 의령에서 발해까지' 개봉
독립운동 자금 마련한 기업가 안희제 조명
백산상회, 임정 자금줄이자 독립운동 연락망
자산가가 일제와 밀착하던 때 '특이한 소수'
경남 의령군청 홈페이지에는 '3대 인물 탐방'이라는 구성 요소가 있다. 이 지역 출신으로 걸출한 세 인사의 생가와 관광 명소를 연계한 여행 안내 페이지다.
군청에서 제시한 의령 3대 인물은 곽재우, 안희제, 이병철이다. 임진왜란 때 맹활약한 의병장 곽재우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은 타지인에게도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그와 달리 안희제에 대해서는 '누구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꽤 있을 듯하다. 안희제는 적잖은 공적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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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의령에서 발해까지' 포스터. [뉴시스(사진=KNN 제공)] |
그러한 안희제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백산, 의령에서 발해까지'(부산경남방송 KNN 제작)가 이달 초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안희제는 1885년생으로 호는 백산이다. 1910년생인 이병철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인 고향 선배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엔 문중 재산 등을 투입해 의령과 동래(오늘날 부산)에 학교를 세웠다. 또 일제 강점기까지 이어진 항일 비밀 결사인 대동청년단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기미육영회를 조직해 청년들에게 외국 유학길을 열어주고 협동조합 운동도 전개했다. 1929년 조선총독부의 무기한 발행 정지 처분 등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던 일간지 중외일보 사장을 맡아 2년간 언론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건너가 발해의 옛 수도인 동경성 지역(오늘날 헤이룽장성 닝안)에 발해농장을 세워 조선인 농민들을 정착시켰다. 발해학교를 세워 농민 자녀들을 가르치다 일제의 대종교 탄압 사건에 휘말려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1943년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교육, 장학 사업, 언론 등 활동 분야가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항일과 독립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안희제의 직업적 정체성의 핵심은 기업가, 엄밀히 말하면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기업가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백산상회다. 안희제는 1914년 무렵 부산에 개인 상점으로 이 회사를 세웠다. 1917년 경주의 부호 최준, 동래 대지주 가문의 장남 윤현태와 의기투합해 합자회사로 규모를 키웠다. 1919년에는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해 더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백산상회(백산무역주식회사 시기 포함)는 곡물, 해산물, 면포 등을 거래하는 무역 회사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요 자금줄 중 하나였다. 회사 영업망은 독립운동 연락망으로 활용됐다.
안희제 주변에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다. '경주 최 부자'로 알려진 최준은 안희제를 통해 임정에 적잖은 자금을 지원했다. 윤현태 동생 윤현진은 임정 재무차장으로 활동했다. 윤현진은 안희제와 마찬가지로 대동청년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백산상회는 1920년대 들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일제 감시가 강화된 것에 더해 자금난이 심각해졌다. 1921년과 1923년에는 주주들이 자금을 추가 불입해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경영 상태가 개선되지 않아 내분이 일어났고 1928년 회사가 해산됐다.
학계에서는 백산상회 자금난이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제라고 본다. 통상적인 부실 경영이 아니라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임정에 제공해 생긴 일이라는 얘기다. 많은 조선인 자산가가 일제와 밀착하던 시대에 손실을 감수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댄 안희제, 최준 등은 특이한 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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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 지능을 활용해 복원한 백산 안희제 모습. [뉴시스(사진=KNN 제공)] |
일각에서는 안희제의 기업가 정신과 이병철의 기업가 정신이 연결돼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업보국, 국리민복, 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주장이다.
흥미롭지만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병철은 재벌 형성 과정에서 정경유착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1960년 4월혁명 후 시민들에게 지탄 대상이 된 부정 축재자 중 한 사람이었다. 1966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카린 밀수 사건은 이병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여러모로 안희제와 대비되는 행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이병철 생가엔 방문객 발길이 이어지는데 안희제 생가엔 뜸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계기로 독립운동을 한 기업가에 대한 관심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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