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 vs 흰말…출산율 떨어뜨린 한·일의 다른 미신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1-08 17:26:50
[김덕련의 역사산책 42] 말띠 여성 속설
붉은 말의 해 여성 차별 미신 사라지지 않은 일본
미신 확산 계기로 거론되는 1683년 오시치 사건
'드센 백말띠' 등 한국에도 말띠 여성 편견 존재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돼

2026년 새해는 60간지에서 병오년(丙午年)이다.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로 불린다. '병'이 붉은색과 불의 기운, '오'가 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웃 나라 일본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병오년(일본어로 '히노에우마')에 태어난 여성을 차별하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다. '병오년 출생 여성은 일곱 명의 남편을 잡아먹는다', '성격이 사납고 남편 수명을 단축한다' 등 내용이 고약하다.

일본에 '병오년 미신'이 있다는 사실은 앞서 국내 언론에 소개됐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미신이 만연하게 됐는지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면이 있다.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새벽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일대에서 드론 2500대를 동원, 붉은 말의 해를 알리는 '2026 카운트다운 광안리 M 드론라이트쇼'가 펼쳐지고 있다. [뉴시스]

 

이 미신이 퍼진 계기로 에도 막부 시기인 1683년에 발생한 오시치 사건이 거론된다. 오시치는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의 딸이었다. 10대이던 오시치의 삶을 바꾼 것은 큰 불이었다.

화재로 인해 오시치 가족은 한 사찰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오시치는 주지의 시중을 들던 또래 소년과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오시치 가족이 집으로 복귀하면서 미혼 청춘 남녀의 사랑에 빨간불이 켜졌다. 오시치는 불이 나면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불을 질렀다가 붙잡혀 화형을 당했다. 목조 주택이 다수이던 당시 일본에서 방화죄는 중범죄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사건과 병오년의 관련성을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건이 일어난 1683년은 병오년이 아니다. 오시치가 병오년인 1666년에 태어났다는 얘기가 있지만, 1668년 출생이라는 설도 있다.

그럼에도 오시치가 1666년에 태어났을 것이라는 추정을 바탕으로 '병오년 미신'이 확산된 것으로 얘기된다. 당시 유행하던 오행설에서 '병'도, '오'도 불을 뜻해 병오년은 불의 기운이 겹치는 해로 여겨진 것도 확산 배경 중 하나로 고려할 만하다.

사실 오시치 사건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요즘으로 치면 신문 사회면에 실린 후 잊힌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기억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건 발생 3년 후인 1686년 이하라 사이카쿠라는 사람이 발표한 '호색오인녀(好色五人女)'라는 대중 소설이 바로 그것이다. 인기 작가였던 사이카쿠는 당시 제도와 관습에 어긋나는 연애와 밀통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다섯 여성의 이야기를 이 소설에 담았다.

17세기 후반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 5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었다. 그중 하나가 오시치 사건이었다. 일본 문학 연구자 윤혜영에 따르면, 오시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오시치 이야기는 가부키 등으로 만들어져 방방곡곡으로 퍼졌다.

그 후 수백 년이 지나면서 '병오년 미신'도 확산됐다. 그런데 이 미신의 여성상과 소설 속 오시치 모습은 적잖은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 작가는 오시치를 나쁘게 그리지만은 않았다. 부모 몰래 연애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강화되던 주자학적 도덕률에 맞춰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미혼 남녀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부분은 동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남편을 잡아먹는다'며 여성을 부당하게 몰아세우는 '병오년 미신'과는 다른 느낌이다. 오시치 사건 후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사회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병오년 출생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여성상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병오년 미신'은 일본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 지난번 병오년인 1966년 임신 기피 등으로 인한 출산율 급감이 주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그해 태어난 신생아 수는 약 136만 명으로 전년(1965년, 약 182만 명)보다 25%, 이듬해(1967년, 약 193만 명)보다 30% 정도 적었다.

재미있는 것은 1966년생 일본인들이 1965·1967년생들에 비해 대입에서 유리한 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입시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병오년 미신'이 초래한 역설이다.

말띠 여성에 대한 편견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20세기 이래 말띠 해에 출산율이 낮아지거나 신생아에서 여아 비율이 줄어드는 현상이 몇 차례 나타났다. 다만 한국에서는 붉은 말의 해(병오년)보다는 다른 색깔 말의 해에 주로 문제가 발생했다.

대표적 사례가 하얀 말의 해로 불린 1990년이다. 이해 출생 성비는 116.5(여아 100명당 남아 116.5명이 태어났다는 뜻)에 달했다. 10년 단위 인구주택총조사를 시작한 1970년 이후 최고치였다. 특히 대구(129.7), 경북(130.7)에서는 성비 불균형이 훨씬 심했다. 이는 '백말띠 해에 태어난 여성은 팔자가 사납고 드세다'는 미신이 퍼져 여아 선별 낙태 및 출산 기피가 성행한 것과 관련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학계에서는 말띠 여성에 대한 미신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조선 시대까지는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여러 명이 말띠였다. 말띠 여성 관련 미신이 있었다면 생기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직전 말띠 해였던 2014년 출생 성비는 105.3으로 정상 성비 수준을 유지했다. 말띠 여성을 겨냥한 미신이 힘을 쓰지 못했다는 얘기다.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말띠 여성 관련 미신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주요 참조=윤혜영 논문(「에도시대 일화가 漱石와 鴎外 문학에 미친 영향 고찰 - '야채가게 오시치(お七)' 사건을 중심으로 - 」, 『日本文化學報』 52, 2012), 이충호 논문(「『호색오인녀』(好色五人女)의 여성관」, 『일본연구』 2, 2003)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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