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목사와 연결된 개신교 극우, 저소득 노인층 많아"
"2000년 전후 취약 계층 노년층, 이념적 극우로 이동"
"양극화 심화, 극우 확산 첫 경로…민주주의 변화해야"
근래 극우 세력의 폐해가 심각하다. 그 세력의 중요한 한 축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극우다.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와 관련해 사랑제일교회 특임 전도사 2명이 체포되고 전 목사는 내란 선동 혐의로 입건됐다.
KPI뉴스는 개신교 극우 문제 등을 오랫동안 연구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에게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인터뷰는 6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선교교육원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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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가 6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선교교육원에서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ㅡ막말 등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킨 전 목사를 따르는 개신교 극우는 주로 어떤 계층인가.
"전 목사와 깊이 연결된 개신교 극우 중엔 저소득 노인층이 많은 것 같다. 박근혜 탄핵 때 태극기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분들이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 현대 국가가 만들어질 때부터 개신교 정치 신학은 기독교 국가론이었다.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인 극우 성향 한경직 목사의 영향력이 막강해 개신교의 문화적 유전자는 극우적으로 형성됐다.
그래서 개신교 안에 계층과 관계없이 극우 성향 인사가 많이 있게 됐는데 근래 목사들은 전과 달리 정치 발언을 잘 안 한다. 이를 불편해하는 극우 성향 교인들에게 전 목사가 대안으로 다가온 것이다. 여러 계층의 극우 인사가 전 목사 주변에 모여들었다."
ㅡ개신교 극우의 부상은 양극화 심화 등 사회 구조 변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개신교는 1970~1980년대 비약적으로 규모가 커졌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까지는 전체 신자 규모가 정체되거나 감소하지만 서울 강남권에 집중적으로 대형 교회가 등장했다.
2000년 전후 개신교의 변화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과정과 엮여 있는 현상이었다. 경제 대란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많던 때 아니었나.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 궁핍, 결여 등에 대한 얘기가 생략된 강남권 대형 교회의 성공 담론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면서 개신교 내에서 거대한 이동이 발생했다. 하나는 풍요에 대한 욕망을 좇아 대형 교회로 옮겨간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취약 계층의 이동이었는데, 그중 청년층은 대대적으로 신천지로 갔다. 그와 달리 노년층은 이념적 극우를 선택한 경우가 많다."
ㅡ한국 개신교 극우만의 특징이 근래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나.
"개신교에는 극우 단체가 많은데, 몇몇 선교 단체에서 청년들에게 미디어 선교라는 것을 하게 했다. 극우 담론을 만들어 유포하는 댓글 부대 활동이었다.
플랫폼 선교라는 것도 나왔다. 조직적으로 움직인 미디어 선교와 달리 각자 움직이면서 일상에서 대상을 찾아내 '○○충(벌레)'이라고 공격하며 낄낄거리는 식이었다. 플랫폼 선교가 이뤄진 온라인 공간은 근대적 종교성과는 다른 감수성을 지닌 이들이 노는 공간이 됐다.
거기서 움직인 청년들의 속성은 전 목사의 속성과 유사한 점이 있다. '전광훈 현상'을 가지고 전 목사를 보면 교회보다는 아스팔트 우파와 더 엮여 있다. 전 목사는 신을 모욕하는 등 탈교리적 모습으로 오프라인에서 기묘하게 온라인 환경과 유사한 방식의 종교성을 보여줬다.
그런 것들이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의 감수성과 엮이는 부분이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이 발달한 가운데 플랫폼에서 혐오 활동을 하던 이들이 법원 난동 때처럼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오면서 일시적 연대를 이루는 과정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사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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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 [이상훈 선임기자] |
ㅡ전 목사는 과거의 개신교 극우 지도자와는 여러모로 다른 유형이다.
"예전에는 개신교 중심에서 개신교 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극우를 이끌었다. 전 목사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다. 개신교는 인맥, 혈맥, 지연을 중시하고 엘리트 선호, 학벌 집착이 매우 강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전 목사는 완전히 아웃사이더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극우 엘리트들이 태극기 집회를 이끈 전 목사를 메시아처럼 지지했다. 전 목사는 극우의 상징으로 부상해 심지어 대표적 보수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힘까지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개신교 엘리트들은 전 목사와 얽히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다.
언론에서 전 목사를 통해 개신교를 바라볼 때가 많은데 그렇게 해서는 개신교를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 전 목사는 개신교 안에서 자라난 괴물이지만 탈개신교적 양상을 드러내 왔다."
ㅡ개신교 극우를 비롯한 극우 세력 전반의 발호를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까지 전 목사에 대한 교단의 질책이나 비판이 많았지만 다 실패했다. 전 목사는 그럴수록 살아났다. 교단에서 축출되면 자신이 교단을 만드는 유형이다.
결국 극우가 전 목사의 힘이라면 시민 사회에서 극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과제다. 극우 확산의 첫 번째 경로가 양극화 심화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건 전 세계적인 양상이다.
복지를 촘촘하게 하는 것에 더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이후 사람들의 욕망의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다. 한국의 87년 체제를 비롯한 근대 국가의 민주적 제도는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전 세계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변화해야 한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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