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살' 노상원 수첩 닮은꼴, '김수환·노무현 등 체포' 청명계획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4-12-27 11:14:19
[김덕련의 역사산책 11] 예비 검속의 망령
수첩에 각계 인사를 '수거 대상'으로 명시
1989년 보안사가 세운 계획 떠오르게 해
청명계획, 학살 부른 예비 검속 성격 지녀
노상원 수첩,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돼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등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수첩에는 '국회 봉쇄',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각계 인사 처리 관련 사항이다. 수첩에는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판사, 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으로 명시한 표현은 물론 '사살'이라는 섬뜩한 용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뉴시스]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에서 작성한 계엄 문건이 이번 계엄 사태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았는데, 거기엔 구체적인 각계 인사 처리 방침이 담겨 있지 않다. 그에 관한 내용은 35년 전인 1989년 기무사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세운 청명계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명계획은 계엄령이 발동되면 주요 인사 923명을 즉시 검거·처벌한다는 작전이었다. 보안사는 대상자들의 인적 사항, 예상 도주로·은신처, 체포조 등이 기재된 청명카드(일명 '체포 카드')를 작성했다. 그해 을지훈련 기간엔 8개 부대를 선정해 도상 훈련도 실시했다.


923명은 A·B·C급으로 나뉘었는데 정치인, 언론인, 사회 운동가, 종교인 등 각계 인사가 망라돼 있었다. A급 인사는 야당 정치인 노무현·이해찬 의원과 학생 운동가 임종석 등 109명이었다.


한승헌 변호사 등 315명은 B급으로 분류됐다. C급 인사 499명에는 군사 정권 시절 독재를 비판한 김수환 추기경과 박형규 목사,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을 폭로한 김승훈 신부 등이 포함됐다.


청명계획의 밑바탕에는 집권 세력의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1980년 광주 학살과 5공 비리 진상 규명, 민주주의 확대 요구가 각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1988년 총선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조성돼 노태우 정권은 야권 공세에 직면했다.

노태우 정권은 상황 타개책으로 1989년 공안 정국을 조성했다. 정권 버팀목 구실을 한 건 김기춘 총장이 이끄는 검찰이었다. 군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흐름을 뒤엎을 것이라는 소문도 일각에서 돌았다.

청명계획이 수립된 배경이다. 그러나 실행되지는 않았다. 계엄령이 발동되지 않아서다. 집권 세력이 공안 정국 조성을 통해 수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 위험 부담이 큰 계엄 선포와 친위 쿠데타를 감행할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안사는 실행되지 않은 청명계획 자료를 묵히지 않았다. 그 자료를 토대로 민간인 사찰을 확대 실시했다. 사찰 대상자는 1300여 명에 이르렀다. 민간인에 대한 불법 사찰 실상은 1990년 10월 보안사 이병 윤석양의 양심선언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을 모티브로 2011년 만들어진 영화 '모비딕'의 한 장면. [쇼박스]

 

청명계획에 노상원 수첩의 '사살' 표현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실행됐다면 '사살' 참극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것처럼 청명계획은 예비 검속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비 검속은 일부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자들'이라는 낙인을 찍고 범죄 예방 명목으로 미리 잡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인에게 시행한 조치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데, 광복 후에도 법적 근거 없이 여러 차례 실시됐다.

예비 검속은 불법 체포, 구금, 고문 등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를 다수 발생시켰다. 학살을 부른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 시기 각지에서 자행된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예비 검속과 집단 학살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상원 수첩은 청명계획까지 이어진 무시무시한 예비 검속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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