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자산 중심 경제금융혁신, 지식·교육혁신 긴요
'당파성'이 아니라 '생산성' 높이는 정치혁신 필수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작년 말 발표한 논문 '한국경제 80년(1970-2050) 및 미래 성장전략'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0~2022년 연평균 6.4%였다. 이를 10년 단위로 분석해 보면 1970년대 8.7%에서 1980년대에 9.5%로 최고치를 달성한 이후 10년마다 2~2.5%포인트씩 하락하여 2010년대에는 2.9%로 둔화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겪은 2020~2022년 중에는 성장률이 2.1%로 더욱 낮아졌다.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 노동과 자본의 직접적 기여분을 제외한 나머지 생산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한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잠재력을 나타내는 지표)을 기준으로 향후 30년을 전망해 보면 2020년대 2.1%, 2030년대 0.6%, 2040년대에는 -0.1% 성장률을 기록하며 초 저성장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이번 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위 한은 논문 등을 인용하면서 한국경제가 이룬 '한강의 기적'이 이제 끝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를 나타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구조개혁 성과가 미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교육비 지출 과다와 교육 문제, 연금·주택·의료 개혁의 정체 등과 함께 대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서울을 국제 금융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거의 진전이 없다고 했다. 이번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면서 향후 성장 모델의 돌파구를 만들어나가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 것으로 보았다.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정책 추진 동력이 시험대에 서 있는 와중에 나온 해외 언론의 쓴소리가 무겁게 다가온다.
한국이 값싼 에너지와 노동력에 의존하는 낡은 경제성장 모델의 기둥은 이미 삐걱거리고 있었다고 보는 관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한국 제조업체에 사실상 막대한 산업 보조금을 제공하는 국영 에너지 독점 기업인 한전의 누적 부채는 1500억 달러에 달할 정도이고 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보다 노동 생산성이 낮은 나라는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인 점 등도 그러한 현실을 말해준다. 낡아 보이는 성장 모델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의 추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좌파 야당이 장악한 입법부와 인기 없는 보수 행정부로 양분되어 있고 2027년 차기 대선까지 3년의 교착상태가 이어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관련 반도체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미국 텍사스에 45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에 HBM 반도체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한국 용인에는 SK와 삼성이 참여하는 47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공사가 정부 지원 하에 추진되고 있다. 인간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훈련된 인공지능인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에 필요한 D램 반도체를 포함하여 향후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데에 따른 투자다.
한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최첨단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인공지능의 미래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투자가 필요하다. 다만 제조업과 대기업 위주의 전통적인 한국경제 성장 모델을 개혁하고자 하는 모멘텀은 당장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는 2019년 발표되었으나 현장 물 공급 등 문제로 인해 수년간 지연된 바 있다. 2027년 첫 번째 클러스터가 완성되어도 자격을 갖춘 노동력의 부족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우려되는 데다 재생 에너지의 충분한 공급이 어렵고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대한 여야 초당적인 합의가 없다면 클러스터에 전력이 어떻게 공급될지도 불확실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당장 이렇게 직면하고 있는 여러 현실적 한계와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한국경제 80년을 바라보는 성장전략은 무엇일까. 외신의 우려대로 '한강의 기적'이 끝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서두에 언급한 한은 논문의 통찰력 있는 제언을 일부 인용해 본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미래 성장동력 확충과 디지털 대전환 및 기후위기 대응 탈탄소 에너지 전략 추진이다. 향후에도 주도산업은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므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긴요하다. 4차 산업혁명 진전과 함께 경제와 산업 패러다임이 데이터, 네트워크, 브랜드 가치 등 무형자산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무형자산 투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지식과 아이디어가 성장의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 S&P500 기업 시장가치의 90%가 무형자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조사가 있다. 무형자산 중심 경제로의 이행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성장의 필수조건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 무형자산 중심 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금융의 혁신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오늘날 지식은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및 일자리 창출의 추동력이자 세계시장 경쟁력의 원천이다. 아울러 세계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말하듯 디지털 대전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변화하는 현실 속의 다양한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전문 역량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교육이 이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교육의 혁신은 우리 경제가 앞으로 생산성 중심의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과제다. 이와 관련한 혁신 제고를 위해 서비스업, 중소기업, 대학 등의 연구역량 확충, 대학교육의 재원확보 및 고학력 수요에의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 모색 등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제언에 더하여 정치의 혁신이 긴요하다. '한강의 기적'이 끝나지 않으려면 '당파성'이 아닌 '생산성'을 높이는 정치 혁신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좌우 극한적 이념 대결에 사로잡힌 기계적인 다수결 지상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파괴하는 지름길이다. 그러한 정치는 다원성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21세기 대전환의 시대를 사는 시민의 삶과 복리(welfare)를 위기로 몰아넣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막는 걸림돌일 뿐이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국경제 80년을 조망하고 내다보는 통찰력을 갖추기 위하여 정치인들이 더 공부하고 성찰하며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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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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