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적 당파주의' 정치···정책실패와 민주주의 위기 우려
현대민주주의 교정, 동반주의 정치 거버넌스 역할 긴요
여당의 총선 참패는 국정의 동력 상실을 의미한다. 나라밖 시선도 그렇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민의힘의 4·10 총선 참패로 정책 추진동력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야당의 반대로 최악의 경우 대통령이 국내 전선(home front)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수 있는데, 비난할 사람과 구실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정책 실패를 야당 탓으로 돌리며 한미동맹 강화, 일본과의 관계 개선 등 외교 분야에 보다 집중할 가능성을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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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본투표가 지난 10일 오전 6시부터 전국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된 가운데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러한 한국정치의 특징을 '극한적 당파주의(vicious partisanship)'로 평가했다. 실제로 여당 일각은 야당의 반대자를 전체주의 옹호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야당 일각 또한 현 정권을 독재 정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체주의자, 독재자와 같은 표현이 나타내는 극도의 공격성은 일반적인 보수와 진보 내지는 좌파와 우파의 구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통적으로 좌와 우의 구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바라보는 정책의 차이 또는 접근방법의 차이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이와는 크게 다르다. 언제부턴가 한국 정치에서는 이러한 전통적 구분을 적용하기 힘들게 되었다. 양대 정치 진영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감정에 치우친 파벌의식과 냉소에 가까운 적대의식은 그동안 극한적 당파주의를 증폭시켰고 그것이 이번 총선 과정과 결과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미국이 정부 부채한도 협상을 놓고 여야 간 벼랑 끝까지 가는 대치 끝에 디폴트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지만 결국에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간 것은 정치 거버넌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반면교사였다. 미국 디폴트 위기를 목전에 두고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벌인 당파 싸움이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초래한 것이다. AAA에서 AA+로 신용등급을 내린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의 하향 조정 근거는 미국 정치 거버넌스 파열음에 따른 재정정책의 신뢰성 손상이었다. 13년 전인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AAA→AA+)할 때에도 정치 거버넌스 문제가 신용등급 강등의 배경이었다. 이러한 정치 거버넌스의 핵심에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제정책 영역에서 전문역량은 부족한데 정치 양극화 구조에서 당파성 높은 선출직 정치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지배적인 데서 초래된 정책실패 사례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양극화를 넘어 극한적 당파주의 양상마저 띠는 한국 정치의 거버넌스가 이번 총선으로 더 취약한 구조로 치닫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대로 총선 이후 정치 거버넌스 문제가 국내정책 추진의 동력을 위기로 몰아간다면 이는 정책실패와 민주주의 위기를 예고하는 것이다.
인식·지식의 한계 문제 지배(knowledge problem dominance)에서 자유롭지 않은 정치인에게 사회적 복리(social welfare)를 추구해야 하는 인센티브가 당파적 인센티브에 비해 충분하지 않거나 오히려 당파적 인센티브 요인이 큰 경우 이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실패를 가져올 소지가 크다. 근본적으로 사회적 복리 추구에 매진하지 않아도 된다는 한국 정치의 인센티브 구조가 문제이며 이는 정치 거버넌스 문제의 본질이 된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교정(how to fix democracy)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선출직 권력의 지배(elected power dominance)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이 선출직 권력에 전제 군주의 권한을 준 것이 아니다.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대리인(agent) 책무를 선출직 권력에 일부 부여한 것이다. 이에 방점을 두는 정치 거버넌스의 디자인이 당면 과제가 된다. 고도의 전문성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21세기 대전환기의 정책 영역에서 정치적 책임성(political accountability)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현실적 접근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인센티브 구조가 취약한 선출직 권력에 국민의 삶과 운명을 모두 맡김으로써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의 결함을 자초하는 오류를 되풀이하기보다는 선출되지 않는 중립적 현자 그룹에 정치 거버넌스를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건 어떤가. 사회적 복리 추구를 위한 현대 민주주의의 교정과 보완을 정치철학·헌법적 관점에서 모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 거버넌스의 리스크가 클수록 포퓰리즘과 정치 이념에 흔들리지 않는 행정부의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역량 또한 한층 더 중요성이 커진다. 이번 총선 이후 우려되는 한국 정치 거버넌스 문제는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난제(難題)다. 각별한 사회적 지혜와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미국의 초당파 싱크 탱크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최근 조사에서 정치를 한 단어로 정의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다수 미국인의 응답은 분열적이고(divisive) 부패하고(corrupt) 지저분하고(messy) 나쁘다는(bad) 것이었다. 미국인의 이러한 정치인식은 당파성 높은 한국의 정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특정 이념에 편향되지 않은 초당파적 정치 혁신이 긴요함을 일깨워 준다.
한국 정치 생태계가 당파주의의 덫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한다면 산적한 정책 과제를 추진할 이니셔티브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헌법이 정한 5년 단임 대통령 임기로 인해 한국은 올바르고 정확하며 빠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칫 5년을 허비할 수도 있는 나라다. 지금 당파주의(partisanship)가 아닌 동반주의(partnership)를 만드는 정치 거버넌스의 디자인이 긴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이념에 고정되지 않으며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 속에서 균형 있고 통찰력 있는 접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와 현자의 역할 또한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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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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