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혁신으로 경제성장 이루려면

조홍균 논설위원 / 2024-05-30 14:26:03
韓경제 생산성 큰 향상 없으면 2040년대 역성장 전망
혁신 양보다 질···기초연구·혁신자금·혁신창업가 긴요

혁신이란 무엇인가. 연구개발(R&D) 등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련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혁신은 기술진보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이번 달 발표한 논문 '혁신과 경제성장 – 우리나라 기업의 혁신활동 분석 및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R&D 지출 규모는 GDP 대비 4.1%로 세계 2위다. 미국 특허청에 출원한 특허 건수는 세계 4위다. 미국은 전 세계 기업이 경쟁하는 시장이기에 미국에의 특허출원건수는 글로벌 경쟁력을 지니는 혁신실적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특허출원건수가 세계 1, 2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괄목할만한 혁신활동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2020년에는 0.5%로 크게 낮아졌다. 기업의 생산성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경제의 성장동력은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한국경제는 생산성의 큰 폭 향상 등 획기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 2040년대에 마이너스 성장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되었다.

 

▲ 산업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양적인 혁신활동지표가 호조인 데 비해 생산성은 부진한 이유가 무엇일까. 질적인 혁신활동에 문제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은 논문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국이 미국에 출원한 특허건수 가운데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5%에 달하여 대기업이 양적 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질적 혁신지표인 특허 피인용건수(출원 후 5년 이내 기준)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 피인용건수는 후속 혁신에 대한 파급력과 중요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혁신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허 피인용건수가 높은 기업일수록 지식자본스톡이 늘어나 기업밸류 또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2011∼2015년 중 한국의 특허 건당 피인용건수는 1.4건에 그쳐 미국 5.0건, 네덜란드 3.7건, 스위스 2.8건에 비해 크게 낮은 상황이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R&D 투자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질이 미흡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산성 증가세가 둔화했음을 시사한다. 기업의 질적 혁신 부족은 2010년대 들어 R&D 지출에서 기초연구 지출 비중이 축소된 데도 기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단기성과 추구성향 강화 등으로 제품 상용화를 위한 응용연구에 집중하면서 기초연구 비중을 줄인 때문이다.

 

중소기업 상황을 보면 2010년대 들어 R&D 지출 증가폭이 축소되었으며 특히 종업원 수 300명 미만 기업의 경우 감소세를 나타냈다. 중소기업에의 혁신자금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R&D 지출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2010년대 들어 벤처캐피탈에 대한 기업 접근성이 낮아진 점을 반영한다. 한국의 벤처캐피탈 투자규모는 GDP 대비 0.16%로 OECD 회원국 중 5위지만 세계경제포럼이 산출하는 '벤처캐피탈 접근성 지표(venture capital availability)'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하락하여 OECD 회원국 중 24위다. 혁신잠재력을 갖춘 신생기업의 진입이 줄어들면서 중소기업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중 설립 후 8년 내에 미국 특허를 출원한 신생기업의 비중은 2010년대 들어 감소세를 지속하여 10%를 하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업력은 2001년 1.6세에서 2020년 12.5세로 높아졌다. 혁신역량을 갖추어 생산성 제고 속도가 빠른 신생기업의 진입이 감소한 점이 2010년대 이후 중소기업의 생산성 정체로 이어졌다.

 

혁신잠재력이 있는 신생기업 진입이 줄어든 것은 창조적 파괴를 주도할 수 있는 혁신창업가가 제대로 육성되지 못한 탓이다. 미국의 경우 혁신창업가가 끊임없이 양성되고 이들이 1990년대 이후 창업한 아마존, 구글, 테슬라 등이 시가총액 10위권 기업으로 성장하여 고부가가치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시가총액 상위기업은 1990년대 이전 설립된 제조업 대기업이 대부분이다. 미국 혁신창업가는 대체로 학창시절 인지능력이 우수하며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이단아(maverick) 기질이 강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똑똑한 이단아'가 교육환경이나 사회여건으로 인해 혁신창업가로 육성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OECD는 우리나라 청년이 전문직, 대기업, 공공부문 등의 일자리에 안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상을 황금티켓증후군(golden ticket syndrome)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사회경력 초반의 성과가 인생 전체 소득수준, 고용안정성 등을 결정하는 단일기회방식으로 사회구조가 형성된 점을 지목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직시하면서도 혁신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은 논문의 통찰력 있는 제언을 일부 인용해 본다.

 

혁신창업가를 육성하기 위한 사회 및 교육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다원기회로의 유연한 사회구조 변화를 통해 실패 리스크를 줄여주고 혁신활동을 장려하는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혁신을 이끌어갈 수 있는 과학·기술·공학·수학(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ematics, STEM)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STEM 직업에 대한 경험 확대와 같은 교육여건 확충이 긴요하다.

 

후속 혁신 파급력, 범용성, 독창성 등 혁신의 질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기초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의 경우 내부기초연구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다. 내부기초연구 수행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산학협력 확대, 혁신클러스터 활성화 등 기초연구 성과를 흡수·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의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

 

혁신기술 평가에 전문성을 갖춘 벤처캐피탈의 혁신자금 공급기능을 개선해야 한다. 혁신역량을 갖춘 중소기업이 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벤처캐피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투자자금 중간 회수가 원활하도록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혁신 투자유인을 늘릴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제언에 더하여 정치의 혁신 또한 긴요하다. '당파성'이 아닌 '생산성'을 높이는 정치혁신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제22대 국회가 30일 시작됐다. 혁신과 경제성장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추기 위해 정치인들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초당적으로 노력해야 할 때다. '사회, 교육, 연구, 금융, 정치의 혁신'이 총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 혁신의 중요성을 다시 조명한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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