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기후위기 대응 흔드는 사법과 정치

조홍균 논설위원 / 2024-07-10 15:26:46
美대법원, 40년 '쉐브론 판례' 파기···기후위기 대응 위기
기후·환경·보건·인공지능 등 과학 영역일수록 전문 역량 중요
사법 정치화 배격, 입법 통찰력 긴요···거버넌스 혁신 모색해야

탄소 배출 세계 2위인 미국의 최고법원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이 행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에 긴요하며 지난 40년간 유지되어 온 확립된 룰 '쉐브론(Chevron) 판례'를 지난달 말 파기했다. 1930년대 이후 최대 보수 우위 구도라고 평가받고 있는 6대 3 대법관 구도와 무관치 않다. 기후위기 대응에 반대하며 파리기후협약(Paris Climate Accord)에서도 탈퇴한 바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10월 긴즈버그 전 대법관 후임으로 배럿 현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미 연방대법원 구성은 압도적 보수 우위가 되었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미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의 탄소 배출 규제 등 기후위기 대응 권한을 크게 제한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심대하다고 하겠다.

 

▲ 미 연방 대법원 [AP뉴시스]

 

1984년 미 연방대법원은 석유회사 쉐브론과 관련한 이 판례를 통해 특정 이슈에 관한 법률적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 당해 행정기관의 해석이 합리적(reasonable)이거나 허용가능(permissible)하다는 전제하에 사법부는 행정기관의 해석을 존중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행정법에서는 이를 '쉐브론 테스트'로 일컫는다. 지난 40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고 연방대법원과 각급 법원에서 수천 번 인용되었다. 수많은 행정법 케이스들이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든 '쉐브론 테스트'에 의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현대 행정국가의 그야말로 날줄과 씨줄과도 같은 역할을 해 왔고 현대 행정법의 핵심 원리로 작동해 왔기에 이의 폐기는 만감을 교차하게 한다. 행정부의 전문적 판단이 코너에 몰리며 기후위기 대응도 위기에 처한 듯 우려를 금할 수 없게 한다.

 

미 의회는 아직까지 기후변화 대응법안을 통과시킨 적이 없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기후변화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 훨씬 전인 1970년에 만들어진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을 적용하여 그 해석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해 왔다. 대기오염방지법은 온실가스 배출이나 기후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해당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래서 환경보호청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쉐브론 테스트'에 따라 동 법률의 여러 조항을 해석하며 운용해 왔다. 연방대법원이 이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로 인해 기후위기 대응이 일대 위기에 처할 국면이다. 기후위기와 같은 첨단 과학 영역에 관련되는 이슈와 정책에 대해 모호하거나 침묵하고 있는 법률의 해석을 전문성을 지닌 당해 행정기관에 맡기지 않고 법원에 맡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현대 사회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이슈는 점점 더 복잡·고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담당하는 전문적인 행정기관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의 역주행이라는 측면이 큰 문제다. 미국 판사들 중 로스쿨 J.D.(Juris Doctor) 과정 이상의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미국 로스쿨에서 J.D. 과정을 포함하여 학업을 마친 바 있기에 정형적인 법률과목 실무교육 훈련에 중점을 두고 짜인 3년 J.D. 과정의 장점과 한계를 알고 있는 편이다. 기후, 환경, 보건, 인공지능 등 첨단 과학이 요구되는 영역의 이슈에서 관련 법률이 모호하거나 침묵할 때 법원이 환경기후당국, 보건당국, 과학기술 당국보다 높은 전문성과 현실 적합성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과학자가 아닌 판사가 예컨대 바이오 제품의 규제와 관련하여 무엇이 단백질에 해당하는지와 같은 고도로 기술적인 문제와 밤새워 씨름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학기술 분야의 법적 모호성을 해석할 때조차 전문 행정기관에 있는 과학자의 의견이 더 이상 최고로 존중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과학진흥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과학적 요소가 필수적인 정부 정책의 결정에 교란이 야기될 수 있고 인공지능 등 규제와 관련하여 대중의 안전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행정부의 전문 역량이 위축되고 약화될 수 있고 이는 공공이익의 위협으로 다가올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난제를 풀어나갈 해법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쉐브론 테스트'가 법적 공백과 모호성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전문가에 관한 룰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 가지 해법은 의회가 법원이 따라야 할 보다 명확한 법률을 제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더 극명하게 목도하고 있듯이 미국 정치의 분열적 당파주의, 그리고 기후변화와 같은 과학적 문제마저 이념적 정쟁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입법부에 당장 그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혁신을 수용하고 촉진하는 데에는 명확한 법률보다 유연한 법률이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포인트다. 따라서 입법 정책에는 고도의 균형적 판단과 종합적 통찰력이 요청된다. 이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정치 거버넌스의 혁신이 중요한 이유다. 아울러 사법의 정치화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공공이익을 추구하는 인센티브보다 정치적 인센티브가 크게 작용하는 사법 거버넌스라면 혁신이 필요하다. 행정, 입법, 사법의 본분은 공공이익을 위한 대리인(agent)임을 새삼 인식하면서 해법을 향한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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