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은 '법의 지배'로 달성···기존 미시적 토대 규제 한계 노정
금융본질은 리버럴리즘 인식과정···거시금융안정 규제 길 열어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의 끝은 어디인가. 이번 가을 금융시장을 달군 이 이슈는 여전히 첨예하게 진행 중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타깃으로 공개매수(tender offer) 시동을 건 MBK파트너스에 비판이 먼저 제기되었다. 투기자본의 착취적 금융이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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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 철회' 등과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이러한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 시도에 대응해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에 나섰고 MBK파트너스가 가처분 신청 등으로 저지하려는 대결 양상이 이어졌다. 이번엔 자사주 매입에 소요된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를 전격적으로 추진한 고려아연에 착취적 경영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비판이 비등하자 유상증자 추진은 결국 철회했다. 한국거래소는 유상증자 공시를 번복한 고려아연을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할 것임을 예고했다.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가 공개매수 과정 중에 가처분 신청에 따른 시장상황 등을 조장하여 저가 매수 부정거래를 했다며 감독당국에 조사를 요청했다.
한편 MBK파트너스가 공개매수 계획을 발표하기 전 고려아연 주식은 3거래일 연속 상당 폭 상승한 가운데 발표 전 2거래일 간 평균 거래량은 직전 1주일 간 평균 거래량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공개매수 가격은 통상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설정된다. 따라서 공개매수 정보를 미리 아는 것은 주가가 오른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과 같다. 중요한 미공개 정보(material non-public information)를 활용한 거래, 즉 내부자거래(insider trading)의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고려아연 사태는 우리나라 사모펀드와 기업경영, 자본시장의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일련의 현상이다. 여기서 키워드를 뽑으라면 '착취(exploitation)'라는 단어로 집약될 것이다.
이번 가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말한 착취적 국가, 그리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말한 착취적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착취적 금융, 착취적 경영, 착취적 시장의 단면을 2024년 가을 한국 자본시장에서 생생하게 접하고 있는 형국이다.
착취의 반대는 '포용(inclusion)'이다. 성공하는 국가가 지니는 요소다. 포용은 금년 가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핵심적 요소로 포함한다.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을 둘러싸고 전개된 제반 금융거래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포용적 금융, 포용적 경영, 포용적 시장의 면모는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플레이어의 탐욕이 지배하는 착취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사기(fraud), 기만(deception), 조작(manipulation)과 같은 행태를 금융거래에서 착취라고 말한다.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의 분쟁은 당초 시장과 국민이 기대했던 모범적인 플레이어로의 역할이 아닌 착취적 행태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현실로 전개되어 왔다. 착취가 아닌 포용이 자리할 수 있는 규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2024년 가을이다.
이번 케이스에서 포용은 사모펀드, 기업경영, 자본시장에 대한 '법의 지배'로 달성될 수 있다. 이러한 '법의 지배'를 어떻게 설계하고 구현해 나가는가가 중대 과제다. 이제 사모펀드 규제 철학은 어느 행정기관이나 법원에서 단번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률적 원리(one-size-fits-all doctrine)에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그 보다는 경제적, 사회적 성과 제고의 균형 있는 관점에서 지혜를 모으는 논의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최근 미국 사법부는 사모펀드 경영자의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투자자로 확대하려는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룰에 제동을 걸었다. 경영자의 신인의무는 사모펀드 자체(fund itself)에 있고 투자자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독립된 법적 실체(separate legal entity)인 사모펀드에 대한 경영자의 종합적인 경영판단을 중시하는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미 행정부와 사법부 간에 금융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 가운데에도 무엇인가 빈 공간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사모펀드 경영자와 사모펀드 자체의 관계 및 투자자의 관계 등 기존 미시적 토대(micro-foundation) 위주의 사모펀드 규제 체계가 갖는 한계라고 여겨진다.
금융시장에서 주요 M&A 거래 등을 주도하며 사모펀드가 수행하는 핵심적 플레이어의 역할은 거시금융안정(macro-financial stability) 관점에서의 규제 및 경영 철학에 대한 당위성과 긴요성을 키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옥스퍼드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전 세계 사모펀드 경영자들이 금융거래를 통해 투자자 몫이 아닌 자신들의 몫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1조 달러를 상회한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회사인 블랙스톤의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몫으로 336억 달러를 벌었다. M&A 등을 무대로 폭넓은 경영판단 자율과 성과를 누리는 사모펀드 경영자들이 금융시장 핵심 플레이어로서의 위상에 부응하는 책무를 지는 룰은 합당하다.
금융의 본질은 리버럴리즘을 바라보는 인식의 과정이라고 할 때 어느 정도의 리버럴리즘을 부여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정부 개입과 규제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가 늘 금융에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짙은 가을 낙엽을 바라보며 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에서 진정한 리버럴은 특정한 편향에 기울어 있지 않으며 현실에 대한 넓은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균형 있는 접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함을 시사했다.
짙은 2024년 가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모펀드 규제 철학에 대해 성찰할 때다. 진정한 리버럴은 거시금융안정 규제의 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가을 낙엽 하나에서도 착취가 아닌 포용으로 가는 규제 철학의 단초를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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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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