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조에는 인도적 구호, 장기적 개발 등 복합 요소 포함
美입법부, 오랜 소프트 파워 유실 막을 초당파적 노력 긴요
지난 5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제원조(foreign aid) 동결 요청을 기각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그동안 도모한 국제원조 동결 조치를 자랑한 직후에 내린 결정이다. 연방대법원의 6 대 3 보수 우위 구도에도 불구하고 5 대 4의 판결이다. 보수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3명의 진보 대법관들에게 합류한 결과다. 트럼프의 이번 의회 연설이 자유주의적(libertarian)이지도 정통 보수적(cons
ervative)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순수 트럼프적 개인주의(Trumpian personalism)였다는 평가를 받은 데 비해 미 최고 법원은 구성원들의 개인적 성향이 아닌 본연의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 2.0에 제동을 건 사법부의 판단으로 국제 원조에도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적용됨을 새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사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계기로 국제 원조를 올바르게 재조명하는 국면이 전개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국제 원조는 트럼프가 단견적이고 피상적으로 바라보듯이 세금과 예산을 낭비하는 자선사업일 뿐인가.
국제 원조에는 인도적 구호(humanitarian relief), 장기적 개발(long-term development), 권력적 역학(power projection) 등 여러 복합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보편타당하다. 빈곤 완화에 관한 연구로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MIT 아브히지트 바네르지는 모든 원조가 효과적인 것은 아니지만 소액의 돈이 엄청난 양의 좋은 일을 한 사례가 많다고 했다.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하루 2.1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심한 빈곤(extreme poverty)에 처한 세계 인구의 비율은 1990년 38%에서 2024년 8.5%로 감소했다. 그동안의 국제 원조 노력 등에 힘입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 소장 제프리 삭스는 원조의 문제는 원조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니고 너무 적다는 것이라면서 빈곤국들은 진정한 경제적 이륙(take-off)을 가능케 하도록 설계된 수준이 아닌 최소한의 원조만을 받았다고 말한다. 예컨대 말라리아 통제와 어린이 교육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를 묻는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의 저자이자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대 제임스 로빈슨은 원조가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빈곤층에게 별안간 원조를 중단하면 그들은 더욱 절박해지고 불안정성을 부추길 가능성이 커질 것이 자명함을 우려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GDP의 3%를 국제 원조에 할당했는데 이는 현재 지출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그중 많은 부분이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의 산업과 인프라 재건 등에 사용되었다. 1980~1990년대에 서구 국가들은 개발도상국, 특히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아프리카 국가들의 시장 친화적 개혁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 원조를 활용했고 이 정책 목표는 구소련 붕괴 후 동유럽으로 확산되었다.
국제 원조 중단은 미국이 세계 리더로서 쌓아온 소프트 파워를 잃게 할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음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국제 원조 담당 연방 행정조직인 미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를 창설했을 때 이를 냉전 외교(cold war diplomacy)의 도구로 구상했다. 케네디는 USAID 창설 멤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자유가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지역에 미군을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을 보낸다(As we do not want to send American troops to a great many areas where freedom may be under attack, we send you).' 오랜 기간 USAID가 쌓아온 소프트 파워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하루아침에 유실될 위기에 처한 형국에서 미 사법부가 먼저 제동을 건 것이다.
국제 원조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겠지만 다각적 측면과 경로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미 상원의원 크리스 쿤스는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은 미국의 지위와 안보에도 해롭다고 강조한다.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적 보건 프로그램은 최빈국들이 에볼라 등과 같은 전염병을 다루는 데 도움을 주어 질병의 전세계적 확산을 방지한다고 말한다. 또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NGO는 취약 계층의 젊은이들이 테러나 범죄 조직에 빠지는 위험성을 줄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시장에 돌을 던질 때는 조심하라. 맞을 사람이 자신의 친척일 수도 있으니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제 원조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되새겨 들어야 할 격언이다. 트럼프 2.0에 제동을 건 미 사법부의 올바른 결정을 계기로 국제 원조에 대한 올바른 재조명이 이뤄져야 한다. 국제 원조에는 인도적 구호, 장기적 개발 등 복합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소프트 파워를 쌓기는 어려워도 유실되는 것은 하루아침일 수도 있음을 미 입법부는 여야를 떠나 치열하게 고민할 시기다. 트럼프의 이번 의회 연설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던 미국의 초당파적(bipartisan)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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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현재 고려대 특임교수
KPI뉴스 / 조홍균 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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