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고등학교에서 학생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지난 7일 밝혔다. 2014년 이후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라는 진정 300여 건을 모두 '인권침해 행위'라고 인정했으나 10년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인권위는 이날 오후 전원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3월 제기된 '고등학교 교칙에 따라 일과 시간에 학생 휴대전화를 수거·보관하는 일은 인권침해'라는 진정을 8대2로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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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전화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
과거 인권위는 휴대전화를 강제로 수거해 보관하다가 일과가 종료될 때 돌려주는 학칙이 헌법상 행복추구권이 포괄하는 행동 및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또 휴대전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휴대전화가 단순한 통신 기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돕는 긍정적인 면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함으로써 수업 불법 촬영 등으로 인한 교권 침해로 발생하는 인권침해가 단순 수거로 인한 인권침해보다 더 크다고 결정했다.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한 갈등·징계 논란으로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학습권 침해 피해가 휴대전화 사용 허용으로 인한 인권 보장보다 크다고 본 것이다. 학생들이 휴대전화에 과(過)몰입하는 탓에 다른 학생과 제대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의 결정은 청소년 정신건강을 지키려는 세계적인 공통 추세에 발맞춘 올바른 조치이지만 뒤늦은 감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유럽연합(EU), 미국 일부 지방에서는 휴대전화를 술이나 담배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으며 실제로 여러 가지 제한이 가해지고 있다. 프랑스는 최근 중학교 200곳을 시범 대상으로 지정,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뉴질랜드도 지난 5월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4세 미만 휴대전화 소유 금지'와 '16세 미만 소셜미디어(SNS) 계정 개설 금지'를 골자로 한 온라인 청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플로리다 주(州)가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 이래, 로스앤젤레스(LA) 교육위원회는 내년부터 모든 공립학교에서 같은 조치를 결의했고, 캘리포니아 주 역시 유사한 내용의 법을 제정했다. 뉴욕타임즈는 7월까지 최소 8개 주에서 휴대전화를 규제하는 법이나 행정명령을 제정했고, 앞으로 같은 조치를 취하는 주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권위가 휴대전화 수거를 긍정했지만 아직 경기도 등 일부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와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원의 학생 생활 지도에 관한 고시'를 마련하고 수업 중 휴대전화를 수거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은 소지품, 사적 기록물 등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이 침해되거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학생인권조례와 상충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도 학생인권조례의 지속적 시행을 공약으로 내건 진보 진영의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혼선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법적 성인이 되기 이전 연령의 청소년에게 휴대전화 사용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진보나 보수 이념과 무관한 교육적 선택이다.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는 현대 문명의 이기이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남용·오용할 우려가 있다. 술과 담배 같은 기호품, 수면제 등 약물, 성적·폭력적 내용이 담긴 콘텐츠 접근에 연령 제한을 두는 제도와 비슷한 취지이다. 부모의 권리와 책임으로 자녀에게 보호막을 쳐주는 행위는 청소년의 인권 박탈이 아니라 오히려 인권 보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최근 AI의 새로운 부작용으로 '중독'이 주목받고 있다. 초기에 지적돼온 편향, 프라이버시 침해, 할루시네이션(거짓말)과는 다른 역기능이다. 중독적 지능(Addictive Intelligence)은 낯선 말이지만 이제 익숙해져야 한다. AI에 과도한 정서적 의존을 하게 되는 AI 중독 현상을 말한다.
중독에는 AI가 사용자에게 듣고 싶어 하는 대답만 골라 해주는 AI 아첨 현상이 바탕에 깔려있다. AI 챗봇과 대화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AI 챗봇은 통계적 최적화에 의해 주인이 원하는 답에 가까운 근사치를 제시해주는 추론 머신이자 언어 모델이다. 마치 넷플릭스나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내 평소 취향과 가장 가까운 추천작과 글, 사진을 골라 보여주듯 말이다.
여기 길들여지면 에코 챔버 방에 갇히게 된다. 야호~ 하고 소리치면 비슷한 목소리가 따라서 야호~ 하고 만다. 주고받는 상호작용(interaction) 없이 따라 하기 추종 바둑의 수법에 포위돼 되돌이표 안을 맴돌게 된다. 결국 비판과 수정의 답변을 통해 내 견해를 정정해갈 기회를 잃고, "내가 최고"의 우물 안 개구리 아집에 사로잡힌다. 이게 AI 아첨에 의한 디지털 고립의 위험이다.
두 번째 중독의 위험은 이 같은 찬성과 칭찬 일변도의 AI 반응에 길들여지면 다른 사람과의 진짜 사회적 교류에서 멀어지면서 AI에만 집착하게 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건 AI 밖에 없다며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다. 이게 AI 친구 중독이다.
편향과 양극화에 따른 실업, 할루시네이션, 페이크 정보 등 AI의 사회적 위험을 방지하는 노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위에 지적한 새로운 정서적 위험은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조명되고 연구돼야 할 주제다. 디지털 디톡스의 원칙 중 하나는 AI를 지나치게 의인화하지 않기이다. 마치 산 사람처럼 반응하지만, 어디까지나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그 성향과 한계를 잘 알고 필요한 만큼만 쓰는 AI 리터러시가 긴요하다. 어른이 먼저 배워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자.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21세기의 새로운 독성 중독물로부터 보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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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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