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platform)은 원래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에서 비롯된 말이다. 출발과 도착 기차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오가는 기능에 주목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컴퓨터 시스템 환경의 기반이 되는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 구조를 지칭하는 용어로 그 뜻이 확장됐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정류장처럼 공급자와 구매자의 교류 장(場)을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 중계 사업이다. 과거에는 시장, 유통망으로 불렀다. 지금은 온라인 장터 역할을 하는 일체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웹과 앱 기반에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기능한다.
예를 들면 구글은 검색 플랫폼이다. 쿠팡은 전자 상거래 플랫폼이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이동 서비스 플랫폼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아날로그 경제에서 거대한 물량의 상품과 고객이 집결하는 대형 장터, 백화점, 유통 허브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제조 자본에 대해 유통 자본이 갖는 지배력을 자연스레 발휘한다. 유통 재벌 백화점이 소규모 입점업체에 대해 매대(賣臺)의 위치, 매출 수수료, 본점 협찬 등 거의 모든 세부사항을 갑의 위치에서 압박할 수 있는 행태와 유사하다. 백화점의 요구 사항을 듣지 않는 입점업체는 매장에서 축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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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플랫폼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
21세기 전환기에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중후장대 산업의 다국적 기업이 포천 100대 기업 명단에서 빠지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메타, 틱톡, 아마존, 테슬라 등 IT 플랫폼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플랫폼 기업은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다. 실물 경제에서 가상 경제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플랫폼 기업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분출됐다. 소비자 맞춤형 마이크로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고객의 편의가 대폭 향상된 점은 좋은 변화이다.
그러나 자동화와 공간 절약으로 고용이 크게 줄어 AI 실업이 발생한 것은 나쁜 변화라 할 수 있다. 플랫폼 경제의 역기능을 보완하는 의무는 정부의 몫이다. 위에 말한 AI 실업을 보완할 로봇 또는 AI세(稅), 기본소득 등은 현재 이론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는 우선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을 정상화하는 '플랫폼 책임주의'에 관해 짚어보고 싶다.
플랫폼 경제의 특징은 '1등만 살아남는다(Winner takes it all)'는 독점 현상이다. 초기 인터넷 경제에서 무료 혜택으로 2등을 죽이고 단독 플랫폼으로 살아남은 후 유료화 전환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 일반화됐다. 검색 시장에서 야후 등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압도적인 보편 서비스가 된 구글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과점 시장 지배자가 된 플랫폼은 공급 망(網)과 소비 망의 양쪽에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장터에 입점하는 공급 기업에 대해 과도한 수수료를 떼어가는 갑질은 상생 경제 생태계를 파괴한다. 구글과 애플이 우리나라에서 앱 장터로 입점하는 앱 개발사에게 최대 30%의 수수료를 징수하는 '인 앱(In App) 결제'는 오래전부터 원성의 대상이 돼왔다. 구글 플레이나 애플 스토어에서 앱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계산할 때 구글과 애플의 자체 결제 시스템만 사용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등 해외 당국자들은 이를 불공정행위로 심판해 소비자가 결제 시스템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개선했다. 우리도 2021년 인 앱 결제 강제를 금지하고 앱 개발사의 결제 시스템을 보장하는 '제3자 결제'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여기에도 다시 고율의 수수료를 부과해 무력화시켰다. 최근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공청회에 따르면 한국 게임회사들이 지난 4년간 부당하게 납부한 피해 금액만도 9조 원에 달한다.
플랫폼의 횡포는 공급자에게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마약과 무기 거래, 페이크 포르노, 사이버 폭력 등 넘쳐나는 유해 콘텐츠를 관리하지 않는 직무유기의 무책임이다. 특히 젊은 층에 인기 높은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과 왓츠앱, X(옛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플랫폼이 수익에만 혈안이 돼 자정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들은 이용자에게 사이버 공간만 제공했을 뿐, 표현의 자유를 간섭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청소년의 정신건강 악화와 자살, 범죄 방조 등 여론 공세가 강해지자 관리자 책임을 지겠다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생성형 AI 등장 이후 불거진 저작권과 개인정보 침해 문제도 마찬가지다. 언어 AI 학습에서 뉴스, 출판물 등 저작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크롤링(데이터 수집)하던 해적 행위를 멈추고 저작권자와 정당한 지식재산(IP) 가격 협상에 나서는 일이 늘고 있다. '제값받기'는 과거 공짜 다운로드로 개발 원가조차 건지지 못하고 파산하던 소프트웨어(SW) 업계의 운동이었지만, 이제는 글·그림·소리·영상·안무·건축 등 창작 문화예술인의 제1과제가 됐다.
이처럼 공급 망과 소비 망을 독점한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있다. AI 규율 제도화의 선봉에 선 EU는 플랫폼의 시장질서 정상화를 위해 올 3월 디지털시장법(DMA, Digital Market Act)을 시행했다. 소셜 미디어의 콘텐츠 자정 의무를 규정한 디지털서비스법(DSA)에 이은 2탄이다. 앞서 EU는 플랫폼의 국제 이중 비과세를 차단하는 디지털세, 일명 구글세를 발효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 법인세 혜택을 부여하는 국가 간 세제의 허점을 악용해 교묘하게 정당한 세금 납부를 회피하는 플랫폼의 탈세에 대응한 조치였다. 이에 의거, EU 최고법원은 9월 10일 애플에 19조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정부도 9월 9일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을 밝혔다. 시장 지배적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차단할 목적으로 지배적 사업자 사전 지정보다 한발 나간 '사후 추정' 방식을 도입했다. 사업자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고, 반경쟁 행위 임시중지 제도로 엄격하고 신속한 시정이 가능토록 법적 수단도 확보한 것이다. 미국·인도 등 디지털 선진국은 아직 제도를 정비 중이고, 디지털 후발주자인 EU·영국·일본 등은 법규를 완비했다. 인터넷 강국에 이어 AI 대국을 노리는 우리나라가 플랫폼 독과점 방지 분야에서도 글로벌 제도의 표준 확립을 주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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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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