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업무·놀이의 80% 보조…감동과 행복의 20%는 인간 몫
저작권·초상권 넘어 디지털 인간의 허용 범위 사회적 합의 필요
미국 할리우드에서 인공지능(AI) 여배우 틸리 노우드가 최초로 장편영화 출연을 앞두고 있어 찬반 논란이 거세다.
비판자들은 제작사가 인간 여배우들의 외모와 목소리, 움직임을 무단으로 대량 학습시켜 AI 배우를 창조했다며, 저작권과 초상권 위반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제작회사는 "인간 배우가 하기 힘든 위험하고 어려운 연기를 대신하기 위함"이라며, "대체가 아니라 영화 표현의 연기 폭을 넓혀줄 것"이라고 해명했다. 뉴욕타임스지(紙)는 매거진 커버스토리로 이 가상 여배우와의 인터뷰 기사도 실었다.
틸리는 20대 초반의 예쁘장한 얼굴에 주근깨와 보조개까지 갖춘, 이웃집 소녀만큼 친근한 이미지로 섬세한 표정과 거침없는 동작을 선보이며 연기를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미소녀의 모습과 음성이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그 어딘가의 전자적(電子的) 합성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과연 관객은 인간 없는 영화에 돈을 낼 것인가.
대중은 이미 플레이브 같은 3D 합성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을 구매해 현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스크린 상에서 뛰노는 가상 소년, 소녀들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AI 복제인간이 이성과 감정의 장벽을 넘어 친구로, 연인으로, 셀럽으로 다가왔다. 20세기말 포스트모던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예언한 '시뮬라시옹(simulation)'이 실제로 등장한 것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즉 환상과 기호(symbol)가 현실을 압도하며 대체하기에 이르는 단계에 왔다. 머지않아 진짜 인간은 밀려나고 가짜 이미지 인간이 대신 일하고 노래하는 세상이 될 것인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크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자기 대신 회의에 참석해줄 AI 클론을 만들고 있다는 해외 소식도 큰 화제였다. 저크버그 AI 클론은 그의 말투와 몸짓을 복제하는 것은 물론, 평소 발언과 사고방식까지 학습(!)해 바쁜 회장님의 일정을 일부 대신해준다는 목표를 갖고 설계 중이라고 한다. 과연 저크버그 AI가 회의에서 얼마나 그의 권한을 대리해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도 실제로 차량 공유기업 우버는 회사 차원에서 다라 코스로샤히 CEO의 AI 아바타를 만들어 대면보고 직전에 예행연습을 할 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미국과 유럽의 여러 선구 기업들이 AI 복제인간으로 신입사원 교육을 하거나 다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을 시도 중이다. 아직 용어도 AI 클론, AI 아바타 등 여러 가지로 혼용되고 있는걸 보면 등장한지 얼마 안 되는 초기의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나 대신 힘든 일을 해줄 조수 같은 존재를 찾는 건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욕망이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상상형 오토마타(자동인형)들이 등장하곤 했다. 디즈니 영화 '팬터지아'에는 마법사의 제자인 미키 마우스가 빗자루에 주문을 걸어 대신 일을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동양에서도 손오공이 자기 털을 뽑아 요술로 후하고 숨을 불어넣으면 수백수천의 작은 손오공 분신이 튀어나온다. 현대 로봇의 용어적 기원이 되는 체코 소설 제목 '로보타'는 일꾼이라는 의미이다. 할리우드 배우 브루스 윌리스는 SF영화 '서로게이트'에서 관처럼 생긴 의식(意識) 이동 기계에 들어가서 자기와 똑같이 닮은 대리로봇을 원격 조종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컴퓨터와 정보기술(IT)이 보편화하면서 디지털 조수, 아니 도전자는 화면상에서 먼저 구현되었다. 최신영화 미션임파서블에서 주인공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초지능 AI 악당에 맞서 세상을 구한다.
AI 복제인간이 화면을 넘어 이제 현실의 인간 세상에서도 활개 치려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피지컬 AI로 불리는 휴머노이드는 육체까지 갖고 곧 공장과 가정에서 노동자나 주부의 일을 덜어줄 전망이다. AI 아바타와 클론, 로봇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나의 전망은 이렇다. AI 복제물은 인간의 업무와 놀이 80% 정도를 보조할 것이다. 기계의 인간 복제율이 갈수록 높아지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근사치(近似値), 즉 '비슷하게'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충 먹는 편의점 도시락 수준이다. 한 끼를 '때울' 수는 있지만, 맛있게 '먹을' 수는 없다. 먹는다는 동물적 행위는 나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포만감도 채워주기 때문이다. 때움은 허기의 공백을 공간적으로만 메운다는 의미다. 하지만 먹음은 시청각의 즐거움과 더불어 먹는 감정 교류로 인해 '행복'을 증진시켜준다. 맛집에서 느끼는 먹는 행복 말이다.
AI는 편의점 수준의 업무 처리로 8할의 일을 대강 신속하게 처리해주리라. 그러나 2할의 정교함과 행복은 인간이 채워야한다. 놀이도 마찬가지다. AI 배우와 가수는 시간 죽이기 범용 콘텐츠에 그칠 것이다. 정말 감동과 행복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예술인의 시간과 서사(徐事, storytelling)를 요구한다.
앞서 소개한 NYT의 AI 여배우 틸리 노우드 인터뷰 기사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독자들은 우선 전자적 합성 캐릭터에 불과한 AI 복제물에 '여배우'란 명칭을 붙여주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비난했다. AI 아바타는 사전에 대량으로 학습된 인간 여배우들의 표정과 동작, 음성 중 지시된 상황에 맞는 평균값을 '합성'할뿐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는 그럴듯한 표정과 정확한 발음의 목소리를 내는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과 내면, 상처, 타인과의 관계를 녹여 등장인물을 해석해내는 창조행위다. 같은 대본이라도 배우마다 다른 연기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해석 과정 때문이다. AI 캐릭터는 어린 시절도, 가족도, 실패한 연애도 없다. 우리가 순간 공감한 아바타의 감정은 직접 느낀 게 아니라 합성된 데이터이다. 이런 존재를 배우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디지털 특수효과라 불러야 할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또 유력지가 AI 제작사 마케팅에 넘어가 논란의 존재에 커버스토리를 할애하는 게 맞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물론, 인터뷰 기자는 화면상 가상 이미지에 불과한 AI를 대상으로 인간 배우에게 하는 것처럼 질문했으나 아무 통찰도 건질 수 없었다고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런 인터뷰 기회 자체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의인화된 상업주의라고 다시 비판받았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쟁점은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정당한 보상 문제였다. 배우조합은 '훔친 연기'의 산물이라고 AI를 공격했다. 배우들은 자신의 작품이 AI 모델의 학습에 사용되는 데 동의했는지, 그 결과 만들어진 합성 배우가 상업영화에 등장할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AI 캐릭터가 인간 배우 전체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영화 속 괴물이나 우주인, 역사적 인물, 위험한 액션 장면처럼 원래부터 시각효과가 많이 사용되던 영역에서 AI가 제작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한다. 제작비가 부족한 독립영화 제작자에게 AI는 상상력을 화면에 구현할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들이 우려하는 것은 톱스타의 일자리만이 아니다. 단역, 엑스트라, 스턴트 배우, 대역, 아역 배우, 광고 모델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배역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합성 배우는 촬영시간 제한이 없고, 노조 규정이나 휴식시간도 필요 없으며, 스캔들에 휘말리거나 출연료 인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외모와 나이, 언어를 얼마든지 바꿔 여러 작품에 사용할 수 있다.
AI 배우의 진짜 경제적 가치는 연기력보다 이러한 '통제 가능성'에 있다. 영화사가 배우의 신체와 시간을 고용하는 대신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인간의 일자리를 소프트웨어 자산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내 발을 대신해주는 포르쉐 자동차와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는 나를 대체하진 않는다. 하지만 AI 배우의 영화 등장은 인간 배우의 출연 조건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저작권, 초상권 등 전통적인 지식재산권뿐 아니라 새로운 권리보호 장치를 요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세상에 접목하는 제도 설계와 사회화의 단계를 거쳐야 영화계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AI 복제 인간의 한계는 결국 우리 인간들의 합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 되고, 어디는 안 되는지 철학자와 인문학자, 법학자, 기업인, 정치인이 망라된 논의기구가 필요하다. 긴 대화와 공개 토론을 거쳐야 서서히 한계를 정하는 기준선이 윤곽을 잡으리라. 이 선을 먼저 만드는 AI 선진국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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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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