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부작용 중 가장 크고 즉각적인 현안은 'AI 실업'이다. AI가 인간의 노동, 특히 정신노동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면서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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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
알파고 같은 추론형 AI가 탄생한 2010년대 말에는 변호사, 의사, 금융전문가 같은 고급 지식노동자의 밥그릇이 흔들린다는 공포가 잠시 퍼졌었다. 그러다가 2년 전 챗GPT를 필두로 한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인간 창조성의 마지막 보루라던 글쓰기, 음악, 미술 등 예술 직업군이 타격을 받았다. 실제 미국 헐리웃에서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 제작자협회의 AI 남용에 반대하는 파업을 수개월 벌인 끝에 극적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다. AI 실업은 정신노동에 그치지 않고 휴머노이드(AI 탑재 로봇)의 양산으로 육체노동자도 위협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개원 36주년 기념으로 대대적으로 개최한 'AI 시대의 노동' 세미나는 이런 시대 상황에서 매우 적절하고 깊이 있는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연구원은 3명의 발제자 발표를 통해 아직 AI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현상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과업(task)의 변화로 직무(job)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인간의 말(자연어)을 알아듣고 할 줄 아는 LLM 때문에 누구나 생성형 AI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숙련도 차이를 좁혀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 중 AI를 도입한 비율은 5%정도에 불과하지만,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40%에 달했다. AI의 도입에 필요한 초기 투자가 저렴하고 사용자, 근로자 만족도 역시 높아 더 광범위하고 깊숙하게 보급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아직 AI 도입 초기이고 긴급한 인력조정도 쉽지 않아 발생하지 않고 있는 AI 실업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연구자들은 △ 사업체 생산성 향상의 노동자 배분 △ 기업 주도형 근로자 AI 재교육 △ AI 실업의 영향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앞으로 검토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한 안젤리카 살비 델 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 자문관 역시 "현재 AI가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으며, 오히려 근로자의 성과와 일자리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근로자 재훈련과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연구원의 이번 조사 결과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과 대부분 일치한다. AI가 일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실제 실업으로 나타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또 과업과 직무의 성격에 따라 AI 보조를 받아 생산성이 올라가거나 일하기 쉬워졌다는 'AI 증강(augmentation)'의 경향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아직 AI 혁명이 초기 단계란 점을 감안해 해석해야 한다. 발표자들은 직무 전체는 아니지만 과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바꾸고 숙련·미숙련 간 격차를 줄여 큰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을 인정하는 편이었다. 결론의 추천안대로 근로자에게 AI와 함께 능률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기업 주도로 재교육하고, 정부는 근로자 간 형평이 달성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인간의 노동은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변했지만 이번 변화는 이전과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경고이다.
한편, 연구원이 전국 20~29세 구직자 1055명을 상대로 따로 조사한 AI 채용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7.7%는 기존 채용 방식을 선호하며, AI 채용을 선호한다는 답은 32.3%에 그쳤다. 그 이유는 "사람 아닌 존재가 사람을 평가한다는데 불만"(30.9%), "AI가 주재하는 채용 과정을 신뢰하지 못해"(28.8%)가 절반을 넘었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53.9%가 AI 채용이 더 공정할 것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더 공정한 이유는 57.7%가 인간의 선입견과 편견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조사는 AI 면접의 알고리즘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응답자들에 의해 결론이 잘못 유도됐을 우려가 있다. 합격과 불합격이 어떤 기준으로 갈렸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불투명 알고리즘은 결코 투명한 잣대가 아니다. 기계의 투명성과 공정은 마치 숫자로 이뤄진 통계의 마법처럼 원칙이 잘 지켜졌을 때만 의미가 있다. 통계 조작으로 분식회계나 성장률 부풀리기가 획책되는 전례를 보라. 유럽연합(EU)은 AI의 적용 위험도를 4단계로 나누고, 공공기관에서 사회적 평가 목적으로 AI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가장 높은 '허용 불가' 등급을 매겼다.
생명과 재산, 인간다운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AI는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은행의 대출 심사, 취업 면접 등 개인의 기본권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판단을 기계에게 100% 맡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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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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