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봄 학기부터 교육 현장에 처음으로 인공지능(AI) 교과서가 도입된다. 초등 3·4, 중 1, 고 1학년에서 영어와 수학, 정보 과목을 시작으로 2026년에는 초 5·6과 중 2, 2027년에는 중 3까지 대상이 확대되고 과목도 추가될 예정이다. 이제 몇 달 후면 아이들은 기존의 종이 교과서와 병행해서 펜 터치 기능이 들어간 태블릿 형태의 AI 교과서로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국내 최초의 AI 교과서 보급을 앞두고 여전히 찬반 여론이 격돌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필두로 한 찬성론자는 시대의 추세에 맞춘 디지털 융합 교육의 장점을 들고 있다. 일부 교육학자와 교사, 학부모 등 반대론자들은 디지털 기기가 아동의 사고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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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교과서 관련 이미지 [KPI뉴스] |
나는 AI 교과서 도입에 대해 '원칙적 찬성, 그러나 실시 중 보완'을 요구한다.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은 "수업 중 휴대전화 금지가 보편화한 마당에 태블릿을 켜고 수업하는 것은 집중력을 약화시키는 모순적 정책" "디지털 기기로 글을 읽히고 나중에 질문하면 답을 못할 정도로 금방 휘발 된다" "외국에서도 도입하다가 중단한 디지털 수업을 왜 우리가 다시 하나"며 항변하고 있다. 여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미래를 살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트북(태블릿)과 스마트폰, AI를 접하는 과학기술 원주민이다.
예를 들어보자. 부모들은 차로 이동할 때 아이에게 스마트 기기를 손에 쥐어주며 만화영화나 게임에 몰두하게 한다. 말썽 없이 조용하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다. 디지털 기기가 집중력을 훼손한다거나 콘텐츠 침투력이 약해 휘발한다는 주장은 아날로그 세대의 억측이다. 만약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디지털 기기의 사용법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세기 구텐베르크 활자가 처음 대중화할 때도 구전(口傳) 시절의 암기력이 떨어질 거란 우려가 나왔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저(名著)가 공개되면 독실한 신앙심을 훼손할 것이란 노(老) 수도승의 집착어린 연쇄살인을 소재로 했다. 과거는 미래에게 자리를 내주는 게 맞다. 시대를 거스르는 수구(守舊)는 어리석고 헛된 몸짓에 불과하다. 계산자나 주판처럼 AI 교과서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는 인간의 사고력을 보조하고 증강하는 도구일 뿐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활용 방법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디지털 키즈에게 디지털 학습 도구를 활용토록 지도하는 교육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AI 교과서 도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도입 후 적어도 10년 동안 쉼 없는 보완조정을 해야 한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시범 수업 중인 선도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우선, 태블릿 등 AI 교과서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수준이다. "터치가 작동 안 한다" "꺼졌다 켜졌다 한다" 등 품질에 관한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 보편 의무교육 체제 아래 전국 교육청에서 지급될 AI 교과서가 관급 최저가 입찰처럼 수준 낮은 하향평준화 제품으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 군대급식 비리처럼 건더기 없는 맹탕 국물이 일선 병사들에게 주어져선 안 된다.
더 큰 걱정은 기기에 담긴 AI 소프트웨어다. 과목별로 검정 교과서 선정절차를 거쳤지만 디지털 교육은 민간업계에서도 아직 보급 초기라서 방법론이 다양하다. 원격 영상수업조차 코로나19 격리 수년을 겪고서야 어느 정도 표준화됐을 정도다. AI 교과서에 고·저 숙련자 별로 최적화된 개인 맞춤형 학습 콘텐츠가 제공된다고는 하지만, 과연 선생님의 개입 없이 기계와 상호작용하며 자기주도형 공부가 가능할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은 교사와 학부모의 적응 교육이다. 아이들의 보호자부터 AI 교과서를 잘 쓰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들의 반감을 줄이고 이해력을 높여놔야 아이를 바른 학습으로 이끌 수 있다. AI 교과서의 공급·운영업체인 민간 기업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상당부분 책임져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부의 일관된 정책 집행이다. 초기에 잡음이 다소 날 수 있지만 장관과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밀고 나갈 만큼 교육 철학이 확고했으면 좋겠다. 어렵사리 첫 발을 뗀 만큼 디지털 교육 분야에서도 'K-교육'의 전설을 한 번 더 쓰길 바란다.
사실 디지털 교과서 실험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먼저 시작했었다. 시행 결과, 너무 어린 나이에 디지털 기기에 노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교육은 중단하고 있다. 우리가 초교 3학년부터 AI 교과서 활용을 시작하게 한 것도 이런 앞선 경험을 반영한 조치다. 한국인의 남다른 창의력과 성취욕구가 21세기 교육 현장에 어떤 이정표를 남길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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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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