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상 시상식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되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기자회견에서 깜짝 계엄을 언급하며 한국 시민의 용기를 칭송한 바로 그 자리이다. 그런데 지난 7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시상식에서 올해 수상자들은 '인공지능(AI)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이 기술의 선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모아 강한 어조로 신속한 규제를 요구했다.
이들은 인간을 넘어서는 초지능(ASI)이 5~20년 안에 나올 것이라며, 무기 등 나쁜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시민 사회의 민첩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조차 AI의 양극화 효과를 지적하며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과학자들이 자기가 낳은 아기를 두고 남들에게 버릇 좀 고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자칫 자가당착처럼 보이는 묘한 아이러니는 AI의 눈부신 발전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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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
현대적 AI는 1956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 모인 몇 명의 천재들이 처음 연구에 착수해 50여 년 동안 두 차례의 침체기를 겪다가 2000년 전후 들어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 정보처리를 모방한 딥러닝이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면서부터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 대학 교수는 끈질긴 연구 끝에 2012년 딥러닝 방식으로 시각 AI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그의 제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2016년 한국에 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2010년대에 제1차 AI 혁명이 터졌다. 모든 과학과 산업기술 연구에 AI가 들어갔다. 그리고 2022년 오픈 AI사(社)가 생성 AI '챗GPT'를 내놓으며 제2차 AI 혁명이 일어났다. 최초의 출발부터 계산해도 불과 70년, 1차 혁명에서는 10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다. 내년부터는 제3차 혁명인 'AI 에이전트(agent)'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리인이란 뜻의 에이전트는 인간 대신 자율적으로 일련의 작업을 끊김 없이 수행하는 AI 조수를 말한다. 지금까지 AI는 부분적, 파편적으로 우리의 추론과 예측을 도와주고, 글·이미지·소리 등을 생성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에이전트는 "배고파" 한마디만 해도 인간 주인의 의도와 과거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식재료 주문, 조리기구 조작, 요리, 식탁 차리기 등을 물 흐르듯 해치운다. 이 모든 것은 생성 AI가 인간처럼 말하고 글 쓰는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코딩도 포함된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외부에 표현할 때 언어를 사용한다. 고도로 발달한 언어가 다른 동물과 인류를 구분 짓는 특징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AI 챗봇은 다른 소프트웨어들에게 언어로 지시하고, 필요하면 코딩까지 새로 한다. 최고 사령부에 앉아있는 기계 사령관처럼 내 컴퓨터를 종합적으로 통제하며 폭넓게 쓴다.
위에 든 예를 자세히 보자. 에이전트가 주인의 '배고파' 명령을 음성으로 인식하면 쿠팡에 접속해 식재료 주문 후 은행 계좌에서 결제까지 한다. 도착해 벨이 울리면 현관 도어 락을 열고 홈 로봇을 보내 집어온다. 테슬라의 옵티머스처럼 생긴 휴머노이드가 재료를 꺼내 주방 기구에서 내 평소 취향에 맞춘 요리를 한다. 그리고 식탁에 불을 켜고 예쁘게 음식을 차린 다음 나를 호출한다. 연속적인 이 작업을 에이전트는 여러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가전, 로봇 등 기계를 제어하며 완수한다. 인간이 갖가지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흐름과 같다. 다만, 전체 과정을 AI 에이전트가 대신할 뿐이다.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인간의 모든 활동으로 확대해보자.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교통·숙박 예약 등 휴가 준비도 해준다. 의료나 군사 분야로 가면 의사와 군인의 진단·수술, 작전·전투를 대신하는 고맙고도 무서운 조수가 된다.
오픈 AI는 지난 4일 군사용 드론(drone) 소프트웨어 산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 무기가 최신 러시아 탱크를 무력화시키는 전과가 확인되고 나서다. 이를 위해 '군사 및 전쟁 금지'란 서비스 약관까지 고쳤다. 공격용 드론을 잡는데 수십억 원짜리 미사일보다 값싼 요격 드론이 더 경제적인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오픈 AI가 군수 분야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새로운 성장산업일 뿐 아니라, 수백~수천 대의 드론을 동시에 운용하는데 AI 에이전트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벌떼같이 드론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이를 떨어뜨리는 드론 편대를 일일이 사람이 조정할 수 없다. 상대 드론의 움직임과 적절한 요격 포인트를 AI 스스로 판단해 신속·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자율형 무기체계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벤처 1세대 '페이팔 마피아'의 피터 틸이 2003년 설립한 AI 데이터 업체 팔란티어는 미 국방부와 CIA, FBI 등 정보기관에 지능형 무기 및 운영체제를 납품하며 지난해 첫 흑자를 기록한 후 올 9월 S&P 500에도 편입됐다. 가상현실(VR) 헤드셋 '오큘러스'를 처음 제작해 메타(옛 페이스북)에 매각한 창업자 팔머 러키는 군사용 드론 스타트업 '안두릴'을 2017년 창업했다. 안두릴에 납품할 AI 소프트웨어를 오픈 AI가 개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단짝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도 대당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전투기 생산을 당장 중단하고 드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빅테크들은 말릴 새도 없이 AI 무기 산업으로 뛰어가고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더 늦기 전에 AI를 맨 처음 만든 노벨상 수상자들의 심각한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당장 AI 군수 통제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늦으면 미래 세대는 기계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자녀를 위험에 방치하는 부모는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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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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