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깜짝 계엄과 대한민국 경제

KPI뉴스 / 2024-12-05 10:08:10

3시간 동안의 깜짝 계엄. 3일 밤 10시 24분 헌정사 45년 만에 벼락 선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국회 해제 의결에 이어 4일 새벽 국무회의 심의로 스스로 철회됐다. 대통령과 소수 각료의 독단으로 자행된 이 돌발 사태에 대한 헌법적·법률적 문책과 후속 조치는 앞으로 정치권과 입법·사법·행정 3부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 같은 다이내믹 이벤트에도 흔들리지 않을 대한민국 경제의 회복 탄성(resilience)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 코스피가 전 거래일(2464.00)보다 7.45포인트(0.30%) 상승한 2471.45에 개장한 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한국 금융 및 실물 시장은 '서울의 밤' 하루 만에 곧 원상을 회복하는 모양새다. 암호 화폐와 증권시장은 잠시 요동쳤지만 즉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기업들의 경영 활동도 별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어떤 상황인가.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 유세 과정에서 '암호화폐 대통령'을 선언한 그가 당선된 직후부터 치솟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시장가격이 우리나라 가상자산 과세를 2년 추가로 유예시켰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전화통화에서 한국 조선소에 미국 군함의 MRO(유지 보수)를 맡기겠다는 발언이 소개되자 국내 주식 시장에서 조선업체들의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 정도는 미풍에 불과하다. 정식으로 집무를 시작하는 내년 1월 20일부터 트럼프 경제 폭풍은 관세 인상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불어 닥칠 것이다.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정책 중 하나는 대중국 봉쇄이다. 반도체 금수(禁輸)부터 출발해 중국의 산업 및 금융 패권 확대를 억제할 카드가 차례차례 공개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한 북한의 안보 위협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미 동맹 결속력을 강화해야겠지만, 한편으로 한·중 경제교류에서의 큰 흐름을 이어나가야 할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까지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에 맞서고,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으로 낙수 혜택을 입을 아세안(ASEAN) 시장도 개척해야 한다.

 

"중국은 10년 전에 한국 회사의 메모리칩을 수입해서 썼다. 지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현지공장과 자국 메모리 공장이 필요한 칩을 직접 생산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이 중국산 칩을 사게 될 수도 있다." 베스트셀러 '칩스 워(반도체 전쟁)'를 쓴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의 섬뜩한 예언이다. 현재 인공지능(AI) 반도체 칩의 80% 이상을 독점 공급 중인 엔비디아와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대중국 수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다. 메모리와 HBM을 미국 기업들에 납품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곧 영향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IT 산업의 쌀인 반도체 수급에 목을 졸리게 되자 중국은 반도체 자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 TSMC와는 5년 정도, 엔비디아와는 더 큰 격차가 있지만 전기자동차, 드론, 스마트폰 등에서 보여준 산업기술 굴기를 되풀이하기 위해 도전 중이다. 중국은 이미 보급형 전기자동차와 드론에서 세계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나라가 솟아날 구멍은 어디일까. 전통적인 제조업의 AX(인공지능 전환)와 무형의 IP(지식재산) 산업 육성, 두 가지를 모두 제안한다. 제조업은 우리나라의 뿌리 산업이다. 1960년대 섬유 등 경공업에서 시작해 1980년대 중화학공업으로, 이후 반도체 등 첨단산업으로 국민을 먹여 살려왔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안 된다. 중국이 섬유부터 시작해 중화학, 첨단 산업까지 야금야금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이 최근 잠실 월드타워를 매각대상에 올린 이유는 주력사인 롯데케미컬의 부진이 큰 몫을 차지했다. 폴리에틸렌, 에틸렌글리콜 등 범용 화학제품의 단가가 중국산 제품에 밀려 공장을 계속 돌리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렸다. 조선 산업 역시 일부 특수선을 제외하곤 중국이 세계 2위로 바짝 추격해온지 오래다. 자동차도 전통 강호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전기차 1위에 등극했다. 반도체는 턱 아래까지 치고 올라왔다. 전통 제조업으론 대적하기 어렵다. 

 

제조업 무인화로 AX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미국도 제조업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동안 금융, IT 등 서비스 산업으로 고도화했던 산업구조를 자율 제조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트럼프의 구호는 일자리 창출 일등공신 제조업을 다시 살리겠다는 뜻이다. 미국과 궤를 맞춰 제조업을 AI로 자율생산 체계화하는 대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한류 열풍을 지속적으로 수출 상품화하는 것이다. IP는 과학기술과 산업에서도 나오지만 문화예술체육에서 저작권 수출의 형태로 큰돈을 번다. '연기 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업, 컨벤션 산업처럼 게임, 음악, 영화와 드라마, 웹툰, 패션디자인 등 문화상품 수출대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하드 파워 아닌 문화력의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휘어잡아야 한다. 과학기술 및 산업 특허, 그리고 문화 저작권은 미래 MZ 세대에게 새로운 노동시장을 열어줄 블루오션이다. 청년이 3D 제조업을 외면 한다 탓하지 말고 이들이 관심 갖고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문화 IP 산업의 생태계를 키워주면 된다. 게임·음악·영화·웹툰 분야의 유니콘과 콘텐츠 거래 플랫폼 육성, 그리고 수출지원 시스템까지 무형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21세기 주류 수출품으로 내세우는 정책을 만들어보라. 산업화 시대의 엄숙한 '땀내' 노동윤리로 젊은 문화 노동자의 '놀자' 소질을 꺾으면 안 된다. 부모 세대에게 익숙한 제조는 과학기술과 산업 IP로 인공지능 자율화, 고도화하면 된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자녀 세대는 문화예술 IP로 즐겁게 돈을 벌도록 하라. 몸으로 돈 벌기보다 지식으로 돈 버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는 음주가무 축제를 즐기며 신명과 흥이 충만한 민족이다. 한국인의 DNA에는 '끼'가 있다. 끼는 일본과 독일 제조 민족이 따라올 수 없는 귀중한 정신적 유산이자 우리만의 고유 자산이다. 백범이 예언한 '문화대국'은 지금 개화(開花)를 앞두고 있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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