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8군 사령관…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의회서 칭송
상찬 일색 한국 사회…균형 잡힌 평가와 거리 멀어
일본의 독도 강변에 적극 활용된 밴 플리트 보고서
4월혁명 폄훼한 것도 평가에서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국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군이 2명 있다. 한 사람은 대위에 불과했지만 국군 창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제임스 하우스만(1918~1996)이다. 하우스만은 1948년 여순사건 후 남로당 프락치임이 드러나 생사의 기로에 선 박정희 소령을 구명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다른 한 사람은 한국전쟁 때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1892~1992)다. 1954년 7월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상·하원 연설에서 밴 플리트를 '한국군의 아버지'로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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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컬러 사진으로 복원된 밴 플리트 모습. 국가보훈부가 2023년 7월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서 개최한 '6·25전쟁영웅 특별사진전'에 전시됐다. [국가보훈부 제공] |
두 미군 중 오늘날 더 많이 기억되는 사람은 단연 밴 플리트다. '한국전쟁 영웅'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며 밴 플리트를 추앙하는 목소리가 보수 성향 인사들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는다. 성역화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상찬 일색이다.
균형 잡힌 평가일까. 편향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 8군 사령관 시기만이 아니라 1953년 퇴역 후 활동을 포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퇴역 후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안이 독도 문제와 1960년 4월혁명 시기에 보인 모습이다.
독도 관련 검토 대상은 밴 플리트 사절단 보고서(이하 '보고서')다. 군사 원조 규모 조정 문제를 비롯한 동아시아 냉전 전략을 재검토하기 위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1954년에 파견한 특별 사절단이 생산한 문서다.
아이젠하워는 사절단 최고 책임자로 육사 동기인 밴 플리트를 임명했다. 사절단은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을 방문한 후 그해 9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문제는 보고서에 미국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본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일 간의 독도 논란에 개입하는 것을 피해 왔고 이 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는 게 적절하다는 대목도 있다.
한마디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시에 보고서 관련 논란은 일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밀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았고, 2006년에야 국내 언론에 내용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보고서를 적극 활용했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가 자국령이라고 강변하는 자료를 10개 국어로 만들어 국제 사회에 홍보했는데, 보고서 내용도 비중 있게 인용했다. 일본 행태는 이 보고서 건이 중시돼야 하는 사안임을 말해준다.
반면 보고서 내용은 독도에 대한 미국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보고서에 한국 쪽 주장('독도는 한국 땅')도 실린 것에 주목하며 이는 밴 플리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마무리하고 넘어가기에는 보고서가 독도 문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커 보인다. 우선 이 보고서는 미국 대통령이 보낸 사절단의 공식 문서다. 기존 방침을 확인하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개별 관료의 사견이 담긴 자료 같은 것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사절단이 독도 이외의 사안에서는 미국 정부의 기대에 어긋나는 내용을 보고서에 적잖게 담은 부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육군 증강 규모 등에 대해 한국의 과도한 요구를 대폭 반영해 아이젠하워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도 그중 하나다. 이처럼 다른 목소리를 낼 여지가 있었음에도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책임자가 밴 플리트라는 것이 일본으로서는 쾌재를 부를 만한 대목이라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칭송하는 밴 플리트가 이끈 사절단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정했다'며 일본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밴 플리트 의지가 반영돼 한국 쪽 주장이 병기됐음을 입증할 자료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 자료가 제시된다 하더라도, 독도를 일본 땅으로 본다는 핵심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규정에 밴 플리트가 반대했지만 보고서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밴 플리트는 독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근래 일본의 독도 관련 도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판국에 보고서의 독도 관련 사항을 망각하고 밴 플리트 상찬 일색 분위기를 지속한다면 일본 우익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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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5일 동해 상공에서 바라본 독도 서·동도 모습. [뉴시스] |
균형 잡힌 평가를 위해서는 4월혁명 문제도 간과해선 안 된다. 1960년 밴 플리트는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자유를 다루는 데 무능한 결과"라며 4월혁명을 폄훼했다.
밴 플리트는 이 대통령과 사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퇴역 후에는 미국과 자신의 주요 활동 지역이던 한국, 그리스 등을 오가며 민간 투자 중개인으로 일했는데, 이 대통령과의 끈끈한 관계는 사업가 밴 플리트의 중요한 자산이기도 했다.
그런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쫓겨나자, 한국 시민들을 탓하며 4월혁명을 깎아내린 것이다. 이듬해인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밴 플리트는 발 빠르게 쿠데타 지지를 선언하며 군사 정권과 밀착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돼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 항쟁이 대한민국 정체성의 기본임을 분명히 한 구절이다.
밴 플리트 평가에서 이제는 그가 4·19 즉 4월혁명을 폄훼했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다. 4월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헌법 정신을 우습게 여기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주요 참조=이동원 논문(「1954년 밴 플리트 사절단의 동아시아 냉전 구상과 한미 관계의 구성」, 『군사』 120, 2021), 이동원 논문(「'전쟁영웅'의 이면, 밴 플리트의 대한 민간 투자 유치 활동」, 『역사비평』 125, 2018), 조성훈 논문(「1954년 밴 플리트 사절단 보고서와 미국의 독도 인식」, 『동양학』 46, 2009), 조성훈 논문(「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대일 전략과 독도 귀속 문제」, 『국제지역연구』 17-2, 2008)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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