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편견으로 두려움 자라 마음의 빗장
먼저 인사하는 씩씩한 아들보고 '해방 열쇠'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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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일 오전 샛강다리에서 본 서울의 아침 풍경. [김윤주 기자] |
▶상경(上京)의 첫 느낌은 '생경(生硬)'이었다. 팔자에도 없던 '서울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대전 촌사람이 살기에 서울은 너무 넓고 복잡했다. 눈 한번 깜빡하면 잘못된 길에 서있곤 했다. 지하철에선 사람에 떠밀려 타고 휩쓸려 내리기 일쑤였다. 버스 '뒷문 승차객'은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됐다. 점심시간은 늘 피난 행렬을 방불케 했다. 맛집이 아니어도 줄을 섰고 맛집이면 더 줄을 섰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사실 가장 어려운 건 '사람'이었다. 내 상상 속 '서울시민'은 늘 도도한 깍쟁이였다. 왠지 다들 남 일에 관심 없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할 거 같았다. 이런 '편견'들이 뭉치니 두려움을 불렀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자라 내 마음의 빗장이 됐다. '온정' 속 화초로 살던 난 상처 받을 것이 분명했다. 남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을 냉정함으로 오인할 게 뻔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까칠해지기로 했다. 서울 한정 'T(이성적) 성향 인간'이 되기로 했다.
▶둔갑은 쉽지 않았다. '상처받지 말자'던 다짐은 사소한 것에도 무너지곤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무심코 인사를 건네고 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 참으로 씁쓸했다. 그저 사람·상황 문제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론 괜스레 '서울 탓'을 했다. 몇 번 상처를 받고 나니 인사를 잘 안 하게 됐다. 그렇게 입을 닫아 마음을 지켰다. 마음 다칠 일이 사라졌건만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작은 감옥' 같았다.
▶'해방의 열쇠'는 '의외'의 사람에게 있었다. 6살 아들은 거침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굴 마주치든 큰 소리로 인사했다. 받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다. 유치원 가는 길, 마주치는 모든 어르신들께도 씩씩하게 인사했다. 이따금씩 반응이 없으면 아들을 말릴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게 참 아이러니했다. 아이에게 "어른을 만나면 인사해라"라고 실컷 가르쳐놓고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겼다. 다행히 그 씩씩함은 '변화'로 돌아왔다. 동네에서 아들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어쩌면 서울 생활에 가장 빨리 적응한 건 이 꼬마가 아닐까. 이렇게 아이에게 배운다. 새로운 시작에서 필요한 건 '두려움으로 무장한 방패'가 아니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였다. 앞으로의 내 서울 생활, 그리고 새 독자들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안녕하세요!"
KPI뉴스 / 김윤주 기자 maybe0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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