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문·전문 영역 짙어가는 근본적 우려
15년 경로의존성 바꿀 인센티브 해법 긴요
전국 법학교수들의 모임인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이번 달 열렸다. 이 학술대회에 윤석열 대통령, 조희대 대법원장,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참석했다. 행정, 사법, 입법 3부(府)를 대표하는 요인들이 함께 자리한 것은 여느 학술대회에서 쉽게 보기 어려울 법한 이례적인 장면이다.
윤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법을 다루는 실무가들은 법의 본질과 사회적 사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며 단순히 법조문 자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되고 자유, 공정, 인권과 같은 근본 가치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법학의 소양이 견고해야 하며 기초법학이 소외되고 약화하면 정의와 공정성, 사회적 신뢰의 기반까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한국 로스쿨이 설립 취지와는 달리 변호사 시험 준비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비롯해 법학자 및 법학을 이어갈 후속 학문세대의 양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헌법재판소장은 헌재가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 헌법에 부합하는 충실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법학자들의 부단한 학문적 연구 성과에 기댄 바가 크다며 학문 연구가 흔들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주 국회부의장은 법학의 위기는 곧 법치주의의 위기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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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이미지뱅크] |
이날 학술대회에 온 3부 요인들이 한목소리로 걱정한 것은 한국에서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해온 지난 15년에 대한 심각한 평가에 다름 아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15년'이 되어버린 한국 로스쿨의 실상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1895년 법관양성소 설립으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법학교육의 역사는 어언 130년에 이르고 있다. 130년 중 최근 15년을 바라볼 때 면면히 이어져 오며 축적된 법학교육의 기반과 자산을 업그레이드하기는커녕 와해시킨 시간이 된 '잃어버린 15년'이라면 지금 철저한 반성과 함께 대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 국회부의장이 말한 대로 법학의 위기를 넘어 법치주의의 위기와 대한민국의 위기로 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법학 및 법학교육의 현실이 필설(筆舌,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토로했다. 법학논문과 법학박사학위 취득자가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으며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 준비를 위한 정보와 요령을 전달하는 학원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또 법의 본질적인 문제와 기본 원리를 탐구하는 기초법학은 철저하게 외면된 채 아예 폐강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로스쿨이 총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다.
이를 여실히 보여 주듯 현재 전국 25개 로스쿨에 남아있는 기초법학 교수는 30명에 불과한 실정이며 더욱이 지난 10년간 신규 임용된 법철학 교수는 단 1명뿐이다. 기초법학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음을 극명히 시사한다. 학생들은 시험에 나오는 1만2000개에 달하는 판례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다가 졸업함에 따라 로스쿨이 균형 있는 통찰력을 갖춘 미래인재는 고사하고 곧 시장에서 사라질 저(低)사양 기능형 로봇을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노동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정확하다. 로스쿨 졸업생들이 행정기관 6~7급 주무관으로 채용되기 위해 치열한 자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험에 안 나오는 전문법학 교육도 사정은 비슷하다. 금융회사 등 전문적 수요에 부합하는 졸업생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이라는 전문학위 타이틀이 무색할 지경이다. 3년 내내 시험 준비에만 전념하는 로스쿨은 지구상 어디에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것은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스쿨의 교육, 학문, 전문 영역에 짙어가는 근본적인 우려가 드리워져 있다.
미국 로스쿨을 벤치마킹하며 도입한 로스쿨 제도의 취지는 이런 것이 아니었기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필자는 20년 전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한 바 있다. 실무와 이론이 함께 하는 학문적 메트로폴리탄 역할을 하며 각계 전문가와 리더를 배출하는 미국 로스쿨이 한국 로스쿨의 롤 모델이었다. 필자는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의 법경제학을 로스쿨에서 접했다. 한국 로스쿨에 왜 이와 같은 학제적 접근(interdisciplinary approach)의 기회가 교육과 학문과 전문 영역에서 보기 어려운 것인가. 제도가 도입 취지와 다르게 변질하는 특유의 토양과 환경 탓인가. 그런 면에서 귤이 탱자가 된 곳이 한국에서 비단 로스쿨뿐만은 아니리라 본다. 정치 현실 또한 당초 지향하고자 한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공선보다 탐욕이 지배하는 듯한 한국 정치의 거버넌스 행태는 '귤화위지'의 또 다른 반면교사 아닌가.
제도는 마음이 만드는 구조물(constructs of the human mind)이며 그 제도가 인센티브를 형성한다는 노스의 제도관을 생각해 본다. 한국 로스쿨에 기초법학과 전문법학을 육성하는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면 그것을 확충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정치경제학자 하이에크, 프리드먼, 뷰캐넌 3인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도 인센티브 문제다. 예컨대 헤겔 철학을 포함한 법철학을 연구하고 로마법을 포함한 세계법제사를 공부함으로써 인간과 역사를 보는 안목과 통찰력을 길렀을 때 법조계를 넘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인센티브가 제도로 마련되어 있다면 기초법학이 고사 위기에 처하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3부 요인이 학술대회에 와서 축사만 할 것이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그러한 인센티브를 만들 수 있는 생태계와 제도변화를 모색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재정·행정·고용 등 인센티브는 하나의 예다. 로스쿨이 그간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으로 인해 '잃어버린 15년'에 그치지 않고 '잃어버린 20년, 30년'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이제 변화에 나서야 한다. 로스쿨의 변화를 유인하는 인센티브를 만들려고 한다면 제도변화는 다양한 각도와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의 변화 또한 공공선에 매진토록 하는 여러 인센티브를 필요로 한다. 공공선은 로스쿨이 추구하고 가꾸어 나갈 중요 가치이기도 하다. 무릇 해법은 인센티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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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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