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올해 노벨문학·경제학상 키워드 '국가실패'

조홍균 논설위원 / 2024-10-18 11:12:07
노벨문학상이 다룬 5·18 광주의 국가폭력, 노벨경제학상의 국가실패 사례
국가폭력의 인간파괴 韓현대사 트라우마 직시···세계인 공감이 수상 가져와
국가실패 귀결되는 착취적 정치·경제·사회 여전···포용적 사회로 전환해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한국에 가져온 한강 작가의 2014년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다뤘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이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 국가에 의한 폭력이 시민들을 무참히 살상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데 동원되었다. 필자는 1980년 5월, 그 비극의 현장에 있었고 이를 생생히 목격했던 광주의 소년이었다. 5·18 광주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자 국가에 의한 인간 파괴의 참담한 현장이었다.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책 판매량이 100만 부를 돌파한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한강의 책을 고르고 있다.[뉴시스]

 

이러한 국가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용기 있게 직시한 문학의 진정한 힘과 높은 가치가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걸출한 문학가와 한국에 안겨준 것이다. 이번 수상은 온 국민이 기뻐하는 기념비적인 큰 경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착잡한 심경이 교차하게 됨은 5·18 광주의 소년이었던 필자만의 느낌인 것일까.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케 한 저서는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2012년 집필한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이다. 필자의 애독서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의 현장에서 필자에게 불현듯 떠올랐던 단어가 국가 실패였다. 노벨경제학상이 말하는 국가 실패의 극명한 사례를 노벨문학상이 다루는 다소 기묘하고 착잡한 상황이다. 전형적으로 실패한 국가의 과거 모습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는 격이다. 

 

여기서 실패한 국가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착취적 국가를 말한다.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착취는 포용의 반대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한 국가의 성패는 그 국가가 지니고 있는 포용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1980년 5월의 한국이 포용적 국가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포용적이 아닌 착취적 국가였기에 국가에 의한 폭력이 광주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착취적 국가였음에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상황은 노벨경제학상의 뜻하지 않은 역설처럼 비쳐진다. 한강 작가와 '소년이 온다'가 과거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당국의 검열 대상으로 관리된 점도 포용적이지 않은 착취적 국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지금 잔치를 하거나 즐길 상황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더 냉철해져야 한다는 뜻을 전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러면 5·18 광주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한국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에 이른 지금은 국가 폭력에 의한 인간 경시와 국가의 착취적 요소는 사라졌는가. 노벨경제학상이 말하는 성공하는 유형의 국가가 되었는가. 그렇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3년 전 10월의 어느 화창한 가을날 필자의 여동생이 집 근처에서 초록색 신호등의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강타한 대중교통 버스에 의해 사망 수준의 상해를 입었다. 버스의 중과실이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한 것이다. 두개골 절개 수술을 포함한 참담한 치료 과정을 지나며 현재까지도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는 기약 없는 고통의 세월을 이어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필자는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 운영되는 대중교통 버스의 사고처리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공적기관이 담당한다. 피해자의 보호자인 필자가 지난 3년 간 느껴온 것은 여러 각도에서 가해지는 착취라는 단어다. 피해자인 국민들이 그동안 착취의 대상으로 취급받았을 개연성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한편 일부 병원의 경우에도 금전적 수지를 더 맞추는 것이 생명의 가치보다 중요한 듯한 착취적 행태를 보였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공적기관과 연계된 가해자보다 약자이기 쉬운 피해자를 손쉽게 대하는 듯 보였다. 착취는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음을 절절히 실감했다.

 

착취의 목적이나 인센티브가 금전적이든 5·18 광주처럼 권력적이든 그 본질은 인간에 대한 착취라는 점에서 같다. 인간에 대한 착취가 공권력에 의해, 국가에 의해 행해진다면 국가 폭력에 의한 처절한 인간 파괴가 된다. 착취적 사회, 착취적 국가는 포용적이지 않음으로 해서 노벨경제학상이 말하는 실패하는 국가가 된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인간에 대한 착취를 그 참담한 고통의 트라우마로 직시함으로써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는 착취적 요소를 줄이고 포용적 요소를 늘려야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메시지와 더불어 세계인에게 큰 울림을 준다. 

 

착취적 정치, 착취적 경제, 착취적 사회가 아직 지배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그리고 세계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올해 노벨문학상과 노벨경제학상이 마련해주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미래를 위한 통찰력을 얻을 것인가. 마침 독서의 계절이자 최고의 계절 한가운데에 와 있다. 10월의 짙어가는 가을과 함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기념비적 작품을 밤새워 읽으며 더 사색에 잠겨보고자 한다. 문학이 착취적 정치, 경제, 사회를 포용적 정치, 경제, 사회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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