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이성보다 감정···파토스가 지배한 美대선

조홍균 논설위원 / 2024-11-07 11:17:26
美대선, 트럼프 파시즘보다 식료품 가격서 느끼는 파토스가 좌우
파토스가 지배하는 선거, 통합보다 분열, 존중보다 경멸 부추겨
밀물·썰물처럼 흐르는 역사 진보···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성찰의 시기

미국 대선을 지배한 것은 파토스(pathos), 감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修辭學, rhetoric)에서 말한 설득의 3원칙인 에토스(ethos, 신뢰), 로고스(logos, 이성), 파토스 중에서 파토스가 유권자들을 지배했다. 정치 양극화(polarization)의 수준을 넘어서는 적대감(hostility)이 선거 과정에서 줄곧 힘을 발휘했다. 미 대선 레이스는 유권자들에게 감정의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감정으로 좌우되고 감정으로 가득한 과정이었다. 

 

▲ 6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개표를 지켜보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신뢰와 이성을 갖춘 오바마주의(Obamaism)는 감정을 앞세운 트럼프주의(Trumpism)에 의해 압도되었음을 선거 결과는 말해준다. 우려된 트럼프의 파시즘보다 높아진 식료품 가격이 유권자들에게 느껴지는 파토스에 어필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선거 슬로건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치열한 사회적 고민 없이 그 자체로 사람들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꽂혔다. 파토스가 미국 현대 정치를 지배하고 로고스와 에토스는 기껏해야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처럼 파토스가 지배하는 선거에서는 찬성보다는 반대를, 통합보다는 분열을, 존중보다는 경멸을 부추기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기 마련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클레온이 페리클레스를 비방한 이후로 정치인들은 종종 상대방을 폄하하는 파토스 전략을 써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선거 승리만을 도모하려는 정치인들의 약품은 남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파토스가 지배한 선거 결과가 발표될 때면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매우 크다. 그 스트레스는 미래에 대해 불현듯 밀려오는 두려움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미국 심리학회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성인의 77%에게 가장 심각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미 대선이 주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을 듯하다.

 

파토스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유권자들 간에도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비이성적이고 인종 차별적이며 성 차별적이라며 반대편 지지자들이 비판하려고 할 수 있다. 양측 유권자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두 대선 후보에 대해서 열광하지는 않더라도 반대편에 대해서는 격분하고 그들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쓸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이 노동당에 대한 사랑보다는 보수당에 대한 적대감으로 정치 현실을 바라보며 접근하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행태는 공감하지 않는 반대편 사람들에 대한 강한 거부이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내부 연대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분히 감정에서 비롯된 파토스다.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처럼 반대편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다른 정당의 지지자들이 편협하고 부정직하며 부도덕하다고 믿는 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권자들의 파토스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행태가 심각하게 변화하고 있는 이러한 흐름은 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파토스와 로고스는 따로 분리되어 움직인다기보다는 혼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는 이성과 감정의 경계선이 깔끔하게 정렬되지 않는 생생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이성적인 잔류주의자들(Remainers)과 감정적인 브렉시트주의자들(Brexiters) 간 논쟁 중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막상 승리했을 때 영국이 EU를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는 파토스와 로고스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음을 보여준다. 선택할 수 있는 당위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실존이다.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이성에는 다양한 감정이 함께 내재할 수 있다. 그래서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 대한 설명에서 설득의 3원칙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인에 대한 실망 내지 신뢰 저하는 에토스의 위기를 뜻한다. 에토스 위기는 다시 정치 시스템 자체에 대한 회의와 냉소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지만 투표용지와 투표함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이러한 유권자들은 선거제도가 애당초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파토스에 영향 받아 브렉시트에 투표하거나 트럼프에 투표하게 될 수도 있다. 선거의 한계이자 민주주의의 좌절일 수 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어야 하고 지금 무엇을 가져다주어야 하며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거제도와 정치 시스템이 현대 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형국이다.

 

늘 선거 결과가 발표되면 사람들이 느끼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교차하는 복합적 감정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겼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

 

'역사의 진보는 밀물과 썰물처럼 흐른다.','철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성찰하며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의 조화로운 완성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야 한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 논설위원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