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홍두깨,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대통령 윤석열이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북한이 쳐들어오기라도 했나. 2024년 12월3일 밤 대한민국은 수십년전 과거로 돌아갔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보던 광경이 일순간 펼쳐졌다. 자유민주주의가 수십년 뿌리내린 나라에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휴대폰이 울려댔다. "미친 거 아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이구동성이었다. "그렇지. 미친 게 아니고서야." 필자와 똑같은 질량으로 고향 친구, 대학 동기, IT기업 임원의 목소리엔 분노가 실려 있었다. 대통령은 "구국의 결단"이라는데, 국민들은 그 결단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분노하는 밤이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그 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판사 겁박, 검사 탄핵, 예산 삭감, 입법 독재… 온갖 이유를 끌어다 댔지만 어느것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그 무엇도 비상계엄의 당위를 설명하지 못했다.
윤석열 검찰이 공정하지 않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대통령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비리엔 눈 감고 제1야당 대표 이재명 김혜경 부부는 3년째 탈탈 터는 검찰이다. 정권 감싸는 감사원, 언론에 재갈 물리는 방송통신위, 인권을 짓밟는 인권위, 여사님 부패엔 눈감는 권익위(반부패총괄기관)도 다를 게 없다. 정의,공정,상식은 지금 윤석열 정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국회가 그런 검사, 그런 감사원장(최재해)을 탄핵하는 것이 비상계엄의 이유일 수는 없다. 혈세가 허투루 쓰이는 예산을 삭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 합법적 권한 행사일 뿐인데, 그 걸 막겠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하다니, 이거야말로 위법이고 위헌이다.
여지없이 반복된, 실체를 알 수 없는 거칠고 황당한 레퍼토리는 설상가상이었다. 국회를 향해 "자유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난타했다.
이렇게 잽을 날리다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이라고 다시 어퍼컷을 날리더니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결정타를 꽂았다.
황당하기로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결의에 찬 대목도 빼놓을 수 없겠다. 윤 대통령은 기회 있는대로 이 무시무시한 레토릭을 애용하고 있지만 정작 근거를 제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실이라면 계엄이 아니라 진작에 수사해 처벌했어야 할 중대범죄 아닌가.
거꾸로 됐다. 윤 대통령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눈을 응시한 채 레퍼토리를 읊어보시라. 헌정질서를 짓밟고,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누구인가. 정작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자가 누구인가. 양심이란 게 있다면 눈동자가 흔들릴 것이다.
한동훈 여당 대표조차 즉각 "위법·위헌적 계엄 선포"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정치적 자해"라고 했다. 보수진영조차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은 다행히 세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무효가 됐다. 야당과 여당 일부 의원(한동훈계)들이 계엄군 군홧발을 피해 속전속결 이룬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엉성한 '친위 쿠데타'(self-coup)는 그렇게 실패했다. 이제 남은 건 대통령의 잔혹한 시간이다. 윤 대통령은 제 발로 탄핵열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선택지는 좁아졌다. 끌려 내려오느냐, 스스로 물러나느냐 둘 중 하나다. 탄핵만이 아니라 내란죄(내란수괴)로 처벌되는 초유의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르겠다. 헌법상 대통령은 재임기간 형사소추를 받지 않지만, 즉 죄를 지어도 재판받을 일이 없지만 내란죄, 외환죄는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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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순열 편집인 |
KPI뉴스 / 류순열 편집인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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