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기업 밸류업 관건은 '이사 주주충실 의무'보다 '기업가정신'

조홍균 논설위원 / 2024-09-06 15:51:25
회사법 이사충실의무, 회사에 대한 충실이 본질
법개정안, 신축경영·주주보호 균형 위협 검토해야
경영판단원칙 등 기업가정신 창달 제도변화 긴요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가치 제고, 이른바 기업 밸류업 방안으로서 경영자, 즉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忠實)의무를 신설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이 이에 강력히 반대의견을 제시하면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필자는 8년 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이와 관련 있는 선진경영환경 모색을 주제로 기업인 대상 강의를 한 바 있기에 이번 논쟁이 더욱 관심을 끈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사회적 토의를 거치는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 

 

▲ 경영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현대 회사법은 회사를 주인-대리인 구도(principal-agent paradigm)로 개념화하고 대리인에 해당하는 이사에게 합리적이고 사려 깊게 판단하며 행동해야 할 신인(信認)의무(fiduciary duty)를 부여하고 있다. 신인의무는 다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실의무(duty of loyalty)로 구성된다. 

 

미국법률협회(American Law Institute, ALI)가 제정한 기업지배구조원칙(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에 따르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는 회사에 최선이라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이익을 위해 유사한 상황의 유사한 지위에서 보통의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주의를 기울일 의무로 설명된다. 아울러 충실의무는 이사가 '개인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corporation's interests over personal interests)' 충실을 다할 의무로 설명된다. 일반적으로 충실의무의 본질은 이사의 이기적인 행동(selfish actions)을 방지하고 회사에 대한 충실을 기하도록 하는 데 있음을 말해준다.

 

지금 상법 개정의 핵심 논쟁 대상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현행 상법 제382조의3에 규정되어 있는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에 더하여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도 신설하자는 정치권 및 정부 일각의 제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평가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시각이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신설하는 상법 개정안들이 제22대 국회에 6월 이미 발의되어 있다.

 

회사법의 일반원리에 비추어 이사의 신인의무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법적 실체(separate legal entity)인 회사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으며 주주 또한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신인의무를 구성하는 주의의무와 충실의무 또한 기본적으로 회사에 대한 의무이며 주주는 그로부터 당연히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만 이사가 주주에게 직접적으로 신인의무를 지게 되는 상황 또한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지배주주와 이사가 동일인인 기업(closely-held corporations)이라면 지배주주인 이사가 다른 주주에게 직접 신인의무를 질 수 있다.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경영이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인수합병(M&A)을 위한 거래에서 이사가 주주로부터 주식을 취득할 경우 등에도 이사는 주주 간의 대우가 공평하게 이루어지도록 주주에게 직접 신인의무를 져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사의 신인의무와 이를 구성하는 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바라봄에 있어서는 회사 경영의 신축성과 다양성 및 주주 보호 간에 균형을 도모하는 고도의 종합적 경영판단이 중요함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사가 종합적 경영판단을 함에 있어 법적 의무가 상충될 소지가 있을 개연성은 방지 내지 최소화하는 제도설계가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논쟁 중인 상법 개정안에 신축적 경영, 주주 보호 등 균형과 종합적 경영판단이라는 핵심적인 가치들을 흔들거나 위협하는 요소는 없는지 면밀하게 검토하며 토의해야 한다. 

 

정치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2012년 집필한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에서 국가의 성패는 제도에 달렸다고 보았다. 국가의 번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포용적 경제제도임을 강조했다. 그러한 제도에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창달하는 룰이 포함된다. 경영자,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권한 내의 행위를 했다면 그 경영판단을 존중해 사후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 BJR)은 기업가정신의 창달에 부합하는 포용적 경제제도라 할 수 있다. 경영자가 기업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한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면책하는 룰이다. 

 

우리 기업문화에서 창업 1세대의 과감한 패기와 도전정신이 사라진 상황에서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가정신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하나가 바로 경영판단원칙이라는 점을 필자는 8년 전 대한상공회의소 강의에서 강조한 바 있다. 동 제도는 기업 밸류업이 초미의 관심사인 지금 한층 긴요하다고 본다. 

 

주주의 이해관계는 다양하며 주주 간에도 상충될 수 있다. 배당을 선호하는 주주가 있는가 하면 배당보다 투자를 통한 중장기적 성장에 관심 있는 주주가 있다. 경영자는 다양한 주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 독립된 법적 실체인 기업에 최선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신축적이고 종합적인 경영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신설보다 기업가정신의 창달을 위한 제도변화가 경제적 성과 제고에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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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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