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민주주의 교정' 필요 보여주는 미 대선 드라마

조홍균 논설위원 / 2024-07-22 10:50:54
요동하는 美대선, 비이성적 군집행동‧집단사고 오류 국면
현대정치 어두운 그림자···'양화 구축 악화' 청산소 전락하나
비선출 현자그룹 역할 제도화 등 민주주의 교정 모색할 때

미국 대선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지난 3주간 대선 TV토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총격,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가 이어지면서 요동하는 미 대선 드라마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 모두가 보여주고 있는 비정상적인 모습은 민주주의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비이성적 군집행동(irrational herd behavior)이자 집단사고 오류(group-thinking bias)의 전형을 보는 듯한 국면의 미 대선 드라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전 대통령 [KPI뉴스 자료사진]

 

과연 드라마의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공화당이 바라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공화당은 바이든의 후보 사퇴에 반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바이든이 선거에 끝까지 완주해야만 트럼프가 승리하는 데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양당 모두에게 이번 대선이 난국(難局)일 수 있으며 미국 민주주의, 21세기 민주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복합적으로 시사하는 매우 착잡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윈스턴 처칠이 말했다는 '헛되게 총격을 받는 것처럼 기분을 돋우어 주는 일은 없다(Nothing in life is so exhilarating as to be shot at without result)'는 다소 우려스러운 정치인의 어록도 있지만 대선 후보가 제거 시도에서 살아남으면 지지자들의 결집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총격 직후 열린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확인된 트럼프 지지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처칠의 말대로 고무된 그들은 트럼프를 마치 '그들만의 신'이 선택했다는 샤머니즘적 과다확신 오류(hubris bias)에마저 도취해 있는 듯하다. 21세기 세계 문명을 선도한다는 미국의 건전한 시민의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잘 알려진 대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맹목적인 데다 트럼프가 많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를 영웅시한다.

 

다른 한편에서 정치평론가들은 트럼프가 매우 양극화된 지지 기반의 인물인 만큼 절대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수백만 명이 넘는 유권자들이 지지자로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일부 민주당원들이 선거가 이제 끝났다고 한탄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운명론적 모습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부동층 유권자 그룹은 작은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트럼프에 대한 총격 사실이 그가 2020년 대선 결과를 전복시키려는 시도가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며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 의사당을 습격한 사건을 언급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도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의회 의사당 습격과 그간 트럼프의 여러 행위들에 관해 마음을 이미 정했고 총격 사실이 그러한 판단을 바꾸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불과 3주 만에 대선 판도가 크게 흔들리는 작금의 상황을 볼 때 100일 넘게 남아 있는 대선 일정에서 앞으로도 어떤 요인들이 어떻게 요동하며 선거에 작용할지를 정확히 내다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비교적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정치와 현대 정치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인구 3억3000만이 넘는 핵심 선진국의 대선 라운드에 트럼프와 바이든보다 나은 후보 인물들이 왜 없겠는가. 정치의 필드를 선택하는 좋은 사람들의 절대 수가 적어지고 있는 정황증거는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가 다른 분야에서 그럴듯한 지위를 얻지 못했지만 그런 지위와 함께 대중의 관심을 끌기를 갈망하는 썩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청산소(clearing house)로 전락하고 있을 위험성이다. 

 

물론 정치인의 자질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확립된 조사방법론은 없으며 정치인의 자질이 과거보다 떨어지고 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도 없다. 또 높은 보편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 정치의 영역에서 성공적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증거도 없다. 보다 중요한 요소는 정치권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선량함(good faith)'이다. 선량한 사람들이 정치인의 역할을 선호하지 않게 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 drive out)'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정치에도 작동하게 된다. 정치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정치를 선택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적어지고 그에 따라 정치 거버넌스가 악화하면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이익과 사회 복리(social welfare)의 질 또한 떨어질 것이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 혐오감, 적대감을 더 품게 되고 선량한 사람들은 정치인이 되기를 더 기피하는 악순환이 초래될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교정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요동하는 미 대선 드라마는 그 이유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집필한 정치철학서 '정치학(Politics)'에서 대중의 의지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는 의문을 품었다. 이를 선동정치 또는 다수에 의한 폭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특정한 어느 날짜에 투표하는 것으로 표출되는 대중의 의지가 이후 만능의 전가보도와 같은 의사결정수단이 되는 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제도는 다수에 의한 폭정으로 향하는 길이며 국민투표제 독재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수에 의해 어떤 법률이나 정책이 채택되더라도 그것이 자유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날 경우 최고 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려 무효화 하는 것과 같이 다수에 대해서도 적법한 헌법적 제약을 가하는 것은 반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 장치다.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리인(agent)에게 자유 민주주의 공동체의 모든 운명을 제약 없이 내맡기려는 오류를 반복하기보다는 선출되지 않은 현자그룹의 역할을 공식 제도화(formal institutionalization)하는 등 21세기 인류문명에 적합한 정치 거버넌스와 민주주의 교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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