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사 제작한 유일한 전통 칠보 혼례복도 선보여
다음달 3일부터 15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
영친왕 이은과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대한제국의 굴곡진 운명과 함께 정략결혼의 굴레로 불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부부다. 영친왕이 사망한 뒤 홀로 창덕궁 낙선재에서 오랜 세월 기거했던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30여 년 동안 이방자 여사의 작품과 유품을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고은당(대표 정하근)이 오는 10월 3일부터 15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작품전’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하근 대표는 “이방자 여사는 역사적으로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분의 헌신적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그 정신과 삶을 많은 국민에게 알리고자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특히 "이번 전시회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한일 근대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계기로 비운의 황태자비로 살면서 소외된 약자를 위해 헌신한 여사의 정신이 역사에 길이 남길 바라며, 한일간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역사가 열리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전시의도를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이 여사의 작품을 일본에도 소개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방자 여사는 일본 메이지 천황의 조카이자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왕(梨本宮 守正王)의 장녀인 마사코(方子)다. 1920년 4월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 이은과 일본에서 정략결혼으로 그의 아내가 되었다.
영친왕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며 순종의 이복동생이다. 1907년 11세의 나이로 덕수궁에서 황태자로 책봉됐으나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제국 없는 황태자’가 됐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 머물게 된다.

1945년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다가 1963년 돌아와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창덕궁(昌德宮) 낙선재에 기거했다. 이 여사는 1971년 수원시에 정신지체아 교육시설인 자혜학교와 1982년 광명시에 신체장애아 교육시설 명혜학교를 세웠고, 사회사업에도 헌신하는 등 평생을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았다. 1989년 4월 30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이 여사는 일본에서 배운 칠보 기술로 서울칠보연구소를 설립해 신체장애인의 재활과 가난한 한국 젊은이의 자립을 위해 기술을 전수했다. 어려서부터 예술적 감성이 뛰어나 서예와 회화, 자수와 칠보 작품에 이르기까지 평론가들로부터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회화 50점, 서예 18점, 도자 34점, 칠보 32점 등과 여러 기념물이 공개되고 있다. 특히 이 여사가 1년에 걸쳐 손수 제작한 유일한 전통 칠보 혼례복도 선보인다.
K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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