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는 시범만 반복...10년째 제자리
중국은 5000km 원격수술 등 이미 상용화
한국 의료 수출 산업으로 키울 5대 전략은
미국과 중국이 과학기술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는 지구촌 춘추전국 시대에 우리나라의 숨 쉴 구멍은 어디일까. 생존 가능한 틈새 발전전략을 어떻게 펼쳐야 할까. 오래된 선현의 말씀에 힌트가 있다. "精益求精(정익구정,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熟能生巧 (숙능생교, 능숙함에서 묘함으로)"는 못하는 것을 버리고 특기에 더 주력하라는 충고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잘 하는 게 뭔가. 세계 1위 수준에 올라와있는 산업은 무엇 무엇이 있을까. 피지컬 AI(인공지능)는 한국의 세계정상급 반도체와 스마트폰, 자동차 등 제조업 생산기술의 장기를 살리는 선택이다. 컨텐츠 대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음악, 드라마 등 K-컬처로 문화수출 산업군(群)을 일구자는 포부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메디컬 코리아'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공계 우등생들이 의대로 몰려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의료진이 두텁다. 여기에 전 국민 건강보험으로 축적된 의료 디지털 데이터도 풍부하다. 명동과 강남에서 러시아, 중동, 동남아시아로부터 온 의료 관광객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인정받는 고급 인력과 물적 인프라를 구비한 대한민국에서 원격진료와 디지털 헬스케어는 10년 넘게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이웃 중국은 원격진료를 넘어, 5000km 떨어진 인도의 환자를 중국 현지의사가 수술하는 원격수술 기록을 벌써 수백 건씩 쌓아가고 있다. 손재주 좋은 한국 의사가 미국제 다빈치 수술로봇의 능숙한 작동에서 멈춰 있는 동안, 경쟁국들은 디지털 의료 시스템으로 의사 인력 부족과 인프라 쏠림 현상을 개선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메디컬 코리아 세계 1위 등극을 가로막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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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중국의 원격의료 현실을 설명하는 이미지. [챗GPT 생성] |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이해관계·지불구조 때문에 디지털 의료가 묶여 있다고 외치고 있다. 원격진료·디지털 헬스가 수년째 '시범–연장–논쟁'만 반복되는 이유를 먼저 살펴보고, 다음에 한국 의료 인프라를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 전략을 제시해보겠다. 한국에서 의료의 디지털 전환이 정체된 핵심적 배경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계의 구조적 반대와 직역(職域) 갈등이다. 의료계 반대 이유는 단순하다. 동네 의원의 환자 이탈 가능성, 그리고 의료 서비스 시장이 대형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자영업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의 질·책임 소재를 집요하게 문제 삼으며 의료 행위의 상업화 가속 현상도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는 민간 병·의원이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구조라서 이해관계자가 많고 분절돼 있어 합의가 매우 어렵다. 결과적으로 정책이 '전면 허용'이 아니라 한시적·부분적 허용에 머무는 배경이다.
둘째, 법·제도가 의료행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 의료법 체계는 기본적으로 '대면진료=표준' vs '비대면=예외' 구조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디지털 의료가 단순 진료가 아니라 모니터링-상담-생활관리-데이터 기반 예측-AI 보조 판단 같은 연속 서비스 모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법체계는 이를 "의료행위냐 아니냐" "진단이냐 상담이냐"의 이분법으로만 나눈다. 그래서 신기술이 들어오면 항상 규제 해석부터 충돌이 발생하는 구조이다.
셋째,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디지털 의료에 잘 맞지 않는다. 한국 의료의 실제 운영 언어는 법이 아니라 수가(보험 보상)이다. 문제는 보험에서 원격 모니터링과 예방·관리형 모델, 데이터 기반 진료의 보상이 부족하고, 디지털 관리 서비스 수가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의사 입장에서 디지털 진료는 더 많은 노력과 책임이 들지만 보상은 더 적어서 확산이 어렵게 된다.
넷째, 개인정보·데이터 규제가 의료 분야에서 특히 강하다는 점이다. 의료 분야에서 데이터 보호가 매우 엄격해 디지털 헬스 산업에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의료 데이터 2차 활용 제한과 병원 간 데이터 이동 어려움, 클라우드 활용 규제 부담, AI 학습 데이터 확보 난항, 익명화 기준 불명확이 문제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데이터는 많은데 산업은 못 만드는 역설이 생긴다.
다섯째, 의료 전달체계가 이미 접근성 과잉 상태에 있다. 병원 밀도가 높아 대기시간이 짧고 비용도 낮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원격진료가 급한 나라는 의료 공백과 의사 부족, 고비용 국가인데 우리는 반대다. 그래서 정책 동력이 약한 편이다. "불편하지 않은데 왜 바꾸냐"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공욕선기사 필선리기,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도구를 먼저 갈아야 한다)'고 갈파했다. 우리가 잘하는 일을 더 잘하려면 준비와 수단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우수한 의료 인프라를 수출 산업으로 키우려면 제도적 개선이 선결과제이다. 중국은 거침없는 개혁으로 원격진료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원격수술의 실적을 쌓고 있다.
인도 언론은 지난해 12월 30일 '상하이 외과 의사, 5000㎞ 거리의 뭄바이 환자 수술'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중국 상하이의 비뇨의학과 의사가 현지에서 원격으로 인도 병원의 의료 로봇을 조종해 전립샘 암 환자와 신장병 환자를 수술했다는 내용이다. 뉴스에서 소개된 중국의 '투마이(Toumai)' 수술 로봇은 한국에 널리 퍼진 다빈치와 흡사하지만 훨씬 싸고 실적도 대단하다. 로봇을 만든 마이크로 포트사는 2022년 이후 9개국에서 승인받고 800건의 원격수술을 했다고 발표했다.
상하이-쿠웨이트, 상하이-모로코, 상하이-브라질 등 대륙을 가로지르는 원격 수술의 경우 지연속도가 생명이다. 통신 끊김이나 지연이 없어야 수술 사고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 지체가 0.19초 이하라야 수술이 가능하다. 연간 350대 생산되는 투마이 로봇의 70%는 미국·유럽 등 40개국에 수출된다고 한다. 미국 인튜이티브의 다빈치는 아직 원격수술을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 인프라 부익부빈익빈의 현실은 원격수술을 머지않아 지구촌 표준기술로 만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이 이렇게 의료굴기로 달려가고 있는데도 한국이 메디컬 서비스 시장에서 틈새 1등을 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한국 의료는 강력한 수출 상품이 될 잠재력이 매우 크다. 한국 의료의 진짜 경쟁력은 초고속 진료 시스템, IT 친화 병원, 높은 전문의 밀도, 검사·영상·정밀진단 역량, 전자의료기록(EMR) 보급률 세계 최고 수준, 대형 병원 운영 노하우, 전국적 건강검진 시스템, 암·심혈관 치료 성과 등 수많은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문제는 이 보석을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 경험'으로만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의료 인프라의 글로벌 산업화 전략을 5대 축으로 설명하겠다. 첫째, 병원 운영 모델(Hospital OS) 수출이다. 한국 대형 병원의 강점은 환자 동선의 최적화와 초고속 검사 체계, 당일 진단과 디지털 예약·접수·검사의 원활한 흐름이다. 이를 '스마트 병원 운영 패키지'로 수출해야 한다. 패키지는 EMR과 환자 동선 AI, 검사 자동화 및 병상 운영 알고리즘, 응급실 트리아지(triage, 환자분류 체계) 같은 병원 운영 소프트웨어와 프로토콜 수출 모델로 구성한다.
둘째,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한국의 건강검진 모델을 글로벌화하는 것이다. 중동, 동남아, 중앙아시아, 남미 등지에 국가검진 시스템을 설계해주고, 검진센터도 설립한다. AI 판독 시스템과 원격 판독 허브까지 꾸려 K-건강검진을 수출 패키지화한다.
셋째, K-Digital Care 플랫폼을 수출상품화한다.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과 노인 케어를 IT 기술로 원격 모니터링하는 관리 기술이다. 웨어러블 기기와 앱, 의사의 삼각 연계 모델을 구성해 플랫폼 라이선스와 서비스 모델로 수출한다.
넷째, 의료 AI 공동개발 센터를 해외에 설립한다. 한국의 강점인 영상의학, 병리, 암 진단, 내시경 등을 해외 병원들과 함께 데이터 랩으로 구축한 후 AI 학습 모델을 공동 개발해 알고리즘 라이선스 공유로 윈윈하는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의료+교육' 결합 모델도 수출 가능하다. 단순 진료가 아니라 의사 연수와 병원 운영 교육, 디지털 병원 구축 컨설팅, 간호 인력 교육 등 현지 인프라 육성 패키지를 의료 정부개발원조(ODA) 및 산업 진출 결합 모델로 파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한국 디지털 의료가 정체된 이유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제도·보상·이해관계 같은 구조적 문제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의료는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 전환 준비가 된 시스템'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건 제한적 허용이 아니라 단계적 전면 설계와 수가 개편, 데이터 활용 기준의 명확화, 병원 운영 모델 산업화의 단계별 발전 청사진을 국가 최우선 전략 산업으로 지정, 육성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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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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