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의 열정과 활기 넘치는 '혁명의 나라'

UPI뉴스 / 2019-03-27 11:13:39
[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③]
쿠바 아바나(Havana)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 아바나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말레콘 [셔터스톡]

1999년 독일 감독 빔 벤더스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먼 나라 쿠바의 일상, 낯설기만 했던 미지(未知)의 세계가 조금은 아는 것이 생긴 기지(旣知)의 세계로 훅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놀랐던 장면은 자전거를 타고 말레콘 옆을 지나가며 웃던 남자의 피어싱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래, 저곳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곳이구나! 바보 같은 자각과 함께 아직 한국과 수교도 맺지 않은 나라, 쿠바는 그렇게 다가왔다. 


쿠바는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당히 큰 섬 하나에 작은 섬이 몇 개 있는 섬나라로 크기는 남한과 비슷하다. 수도 아바나는 그 자체가 쿠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의 중심지다.

카리브해의 사나운 물결 막아주는 말레콘


아바나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단연 말레콘이다. 카리브해의 사나운 물결을 막아내기 위해 바다를 따라 길게 만든 제방으로 대략 7km에 걸쳐 도심을 둘러싸고 있다. 그 앞에는 자동차도로가 조성돼 있고, 도로 건너편 주택들은 식민지 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해풍에 바래고 시간에 부식돼 낡은 채 도시의 풍경이 되어 서 있다. 그러나 바다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어 파도 또한 그대로 들이친다. 바람이 강한 날에는 제방을 넘겨 솟구치는 파도가 지나가는 차에 물벼락을 뿌리기 때문에 사람과 차량은 접근하지 못한다. 자칫 휩쓸려갈 수도 있을 만큼 물기둥이 위력적이다. 말레콘은 시내 어디서나 조금만 걸으면 갈 수 있기에 아바나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관광객들이 그들과 자연스럽게 부딪치고 일상을 공유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선입견이 무색할 만큼 그들은 외국인에게 개방적이다. 특히 젊은 남자들은 동양 여성들이 지나가면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고 치근대기도 한다. 대꾸를 하지 않으면 귀찮게 하진 않는다. 


말레콘의 해넘이는 오래 간직할 추억이 된다.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드넓게 펼쳐진 카리브해로 온전히 가라앉는 해는 어쩐지 한결 부드럽게 느껴지는데, 확 트인 바다에 남은 햇살이 어둠의 기운이 내려앉는 것을 늦추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건너편 해안에 우뚝 솟은 망루가 돋보이는 모로 요새도 아바나의 풍경을 독특하게 만드는 곳이다. 카리브해의 해적을 막기 위해 스페인이 건설한 것으로 당시 사용했던 대포와 포탄들이 녹슨 채 전시돼 있다. 매일 저녁 9시에 열리는 포격식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아바나는 옛 시가지인 아바나 비에하(Habana Vieja)와 신시가지 베다도(Vedado) 지역으로 나뉜다. 특정한 경계는 없지만 건물을 비롯한 주변 환경과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나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구시가지에는 미국 국회의사당을 그대로 옮겨온 카피톨리오 건물과 아바나 대극장, 고급 호텔 등 스페인 식민지 시대와 친미 바티스타 정권 때 세워진 건물이 고풍스런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오비스포 거리에서 연주하는 악사들

그곳에서 반드시 찾아갈 곳은 오비스포(Obispo) 거리다. 박물관, 각종 가게, 식당, 호텔 등이 죽 이어져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치는 것은 물론 곳곳에서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든다. 


특히 아바나와 인연이 깊었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가 즐겨 다녔던 카페 ‘라 플로리디타’를 비롯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던 암보스 문도스 호텔과 단골 술집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등이 근처에 있다. 또한 아바나 외곽의 한적한 어촌마을 코히마르는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곳으로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그가 살던 저택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단장해 손님을 맞고 있다. 


오비스포 거리가 끝나는 곳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에는 중고서적을 파는 노점이 있는데, 표지가 낡은 이념 서적들이 잠깐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 광장을 돌면 아바나 대성당, 비에하 광장, 산프란시스코 교회 등 전통을 간직한 유적들이 이어지고 초콜릿 박물관, 럼 박물관, 산호세 공예품 시장 등 들러야 할 곳도 계속 나타난다. 


올드카의 화려한 색깔에 도시도 피어나고


또 다른 볼거리로는 중앙공원 부근에 세워둔 분홍, 주황, 녹색, 하늘색 등 다양한 색깔의 올드카가 있다. 칙칙한 색깔의 건물들 사이로 형광색의 차들이 색다른 매력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아바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올드카는 특히 부부나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그들 모두 화려한 색깔만큼 환한 웃음으로 비싼 값을 치르고 기분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거리를 누빈다. 그러나 낡은 차에서 나오는 시커먼 색의 매연은 길을 걷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말레콘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면 도시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베다도 지역이다. 과거 미국과 쿠바의 부자들, 바티스타 정권 관리들을 위한 고급 주택지였던 곳으로 도로도 넓고 현대식 고층 빌딩에 값 비싼 호텔도 많다. 특히 아바나 대학 앞은 젊음의 거리라고 불리는 만큼 길거리 음식 가게와 맛집도 많아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그중에서 코펠리아는 빠뜨리지 않는 곳인데, 아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매우 싸게 먹을 수 있다. 세 덩어리가 담긴 접시가 우리 돈으로 200원 정도다. 다만 때에 따라 관광객들은 따로 줄을 세우는데, 그땐 꼼짝없이 쿡(CUC : Cuban Convertible Peso)으로 지불해야 한다. 쿠바인들은 모네다라고 부르는 쿱(CUP : Cuban Peso Nacional)을 쓰고, 외국인들은 쿡을 사용한다. 1쿡은 25모네다이니 결국 25배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는 것이다. 


아바나에서 음악과 춤을 뺄 수 있을까. 이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알려졌듯이 열정 가득한 살사 춤과 호소력 짙은 노래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내세운 공연은 호텔 나시오날(Nacional)에서 하지만 이제 원년 멤버가 하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비싸 그다지 인기가 높진 않다. 그러나 괜찮은 연주를 하는 재즈클럽이 많이 있어 한 번쯤 즐길 곳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 밤 10시에 시작해서 2시간 정도 공연한다. 또한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중장년층의 밴드가 등장해 음악을 들려주고, 식당이나 술집에서도 반드시 악단이 직접 나와 연주를 하는 곳이 많다.

아멜 거리의 룸바 공연에 저절로 어깨 들썩 


길거리 공연으로는 아멜 거리의 룸바 공연이 단연 으뜸이다. 주말이면 자그마한 거리가 사람들로 꽉 찬다. 어디를 헤집고 들어가야 할지 모를 정도다. 공연 자체도 놀랍다. 라틴댄스의 원조로 여겨지는 흑인 노예들의 격렬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몸짓은 원색의 열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감정을 토해내듯 부르는 노래가 더해지면 가만히 서 있던 사람도 어느덧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왔던 굴곡진 삶의 애환이 담겼기 때문일까. 격렬한 움직임에 진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난장은 활기로 가득 찬다. 

 

▲ 혁명광장에 있는 체 게바라

쿠바의 역사를 담고 있는 현장으로는 ‘혁명 광장’이 있다. 휑하게 펼쳐진 광장에는 스페인에 항거한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Jose Marti)의 동상과 기념탑, 자료관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체 게바라(Che Guevara)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의 얼굴을 새긴 철골 구조물 부조다. 각각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와 ‘피델 잘하고 있어(Vas Bien Fidel)’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광장은 통치에 어떤 역할을 할까. 누구는 광활한 규모에 압도된 개인이 스스로 왜소함을 느껴 통치권자에게 무릎을 꿇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지난 2015년에는 미국과 다시 수교하기에 이르렀고, 한 해 뒤에는 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도 이 세상을 떠났다. 앞으로 겪을 변화가 궁금하지만 현재의 또 다른 모습도 조금 더 찾아보자.

 

글·사진 남인복(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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