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이제야 그 마을에 닿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06-21 16:52:04
시집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 펴낸 김용택
오래전 파일에서 발견한 '삿되지 않고 깨끗한' 시편들
시, 산문, 사진으로 꾸려낸 '진메마을'의 '고귀한 가난'
"한 마을이 나타났다, 이제 비로소 내 문학이 완성됐다"

세월이 사람들을 마을로 데려다주고 다른 세월이 와서 그들을 뒷산으로 데려가버린다./ 사는 일이 바람 같구나. 나도 어느 날 훌쩍 그들을 따라 갈 것이다./ 그들이 저세상 어느 산골, 우리 마을 닮은 강가에 모여 마을을 만들어 살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마을이, 복사꽃 배꽃 필 때, 배고프지 않은 이 마을이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_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 부분 

 

▲그동안 쉼없이 걸어들어온 섬진강변 '진메마을'을 이제야 비로소 완성했다는 김용택 시인. [김용택 제공]   

 

시인 김용택의 한가운데를 내내 흘러온 것은 섬진강이었다. 1982년 등단한 이래 42년 동안 그의 시에서 그가 나고 자란 섬진강변 '진메마을'의 정서가 빠져 나간 적이 없다. 그가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맥락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의 시를 추동해온 진메마을을 이제 '완성'했다. 오래전 어딘가 저장해놓았던 마을사람들 이야기 파일을 발견하면서 그는 탄성을 질렀다, 마을이 나타났다고.

그 마을이 열네 번째 시집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마음산책)에 오롯이 담겼다. 이번 시집에는 지난시절 진메마을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가 '그늘이 환하게 웃던 날' '그리운 사람들' '색 바랜 사진' '꽃, 등에 지고 서 있네' '그해, 그 배꽃' '서울' 등 6부에 걸쳐 62편의 시, 산문 2편, 시인이 오래전부터 찍어온 마을 풍경 사진 15컷으로 구성됐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오래 전에 써놓은 것들이야. 어느날 USB를 봤더니 '마을이야기'라는 파일이 있더라고. 너무 깜짝 놀랐어. 거기에 한 마을이 있었어. 이 어마어마한 자본의 세계에 한 마을이 나타난 거지. 시집을 만들 때는 잘 몰랐어. 옛날에 이런 마을, 그러니까 사람을 섬기는 고귀한 가난이 있었던 거야. 가난함 속에서도 인간을 섬겼던 거지. 가난하다고 무시하거나, 가난하다고 잘못 살았다거나 이게 아니야. 가난함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이 있었던 거지.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사는 삶이 그 속에 있었던 거야. 요새 가난을 얼마나 무시해 버려. 그런 의미로 보면 옛날에 그 가난은 고귀했다는 거지."

특별한 시집을 냈다고 전화를 걸어왔던 시인에게 출장길에서 돌아와 전화를 걸었다. 1990년대 초부터 진메마을을 방문해 만난 이래 오래 인연을 맺어온 시인은 동네 형님처럼 허물없이 말한다. 초등학교 교사로 내내 봉직했던 그의 말투에도 어울리는 형식이다. 그는 전화 속에서 이번 시집을 내고 얼마나 마음이 순정해지는지, 거듭 반복해서 말했다.

"깨끗한 거지, 삿됨이 전혀 없고. 내가 처음으로 시집을 내놓고 기뻤어. 요즘 시 보면 복잡하잖아. 복잡하지만 사람이 없어 그 시 속에. 살아가는 모습이 잘 안 보이는데, 이 시들은 어찌 보면 문학적이지 않고 시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속에는 맑고 밝은 바람과 햇살이 있는 그때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거지. 그런 시야. 너무 좋아서 이 시집을 안 냈으면 큰일날 뻔했다, 그랬어. 나도 드디어 정말 깨끗한 시집을 한 번 갖게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어." 

할아버지 이름을 모른다./ 호가 서춘이다./ 나는 서춘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서춘 할아버지가 심은 마을 앞 느티나무 100년하고 50년도 더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 그 그늘로 자랐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여 잠자던 여름 한낮이면 홀로 깬/ 서춘 할아버지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크게 외우다/ 동네 사람들 잠 깨운다며 핀잔 들었습니다./ (…) / 어린 자라들이 자라/ 큰 바위 위로 올라와 놀 때/ 서춘 할아버지 일 점 자식 하나 없이/ 그 느티나무 강가에 세워두고/ 홀로/ 죽었습니다./ 그날 밤,/ 사람들은 느티나무가 나무아미타불 하며/ 크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_ '서춘 할아버지 느티나무'

시인은 "서쪽 봄날이라는 아름다운 호를 가졌던 서춘 西春(사실은, 서쪽 마을이란 뜻의 서촌西村인지, 서쪽 냇가라는 서천西川인지, 그도 아니면 서쪽 하늘이라는 서천西天이었는지는 모른다) 할아버지가 심으셨다는 마을 앞 강 언덕 느티나무는 봄이면 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새로운 시를 써준다"면서 " 자연이 하는 말을 알아들으며 같이 먹고 일하면서 노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일러주는 말을 나는 받아 적었고 그것이 시였다"고 시집 머리에 적었다.

진메 마을 뒤 암재에서 이사왔다고 해서 '암재댁'으로 불리는 할머니는 하나 마나 이문도 없는 사탕 장사를 했고, 머리 허연 덕수할아버지와 빠꾸 할아버지 하고도 연애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암재 할머니와 스캔달 있었던 '빠꾸 하나씨'는 '벙거지 쓰고/ 쇠 잡고/ 농악 마당에 들어서면/ 굿쟁이들은 꼼짝 못 하고/ 동네 사람들 모두 숨죽이며 긴장'한 '우리 동네 굿선생'이었다.

 

'일촌一村 어른'의 피리는 동네 사람들의 고단한 노동을 위무했다. 한 뼘이 될까 말까 한, 새끼손가락 굵기만한 피리를 늘 삼베 조끼 윗주머니에 꽃고 다녔다. '양반다리를 하고 마루에 높이 앉아/ 흘러가는 강물 쪽으로/ 피리를 불었다./ 슬픈 피리 소리 멀리멀리 퍼져갔다./ 땅만 보며 일하던 사람들이/ 피리 소리 끝나면 허리 펴고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멀리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골짜기 퍼지는 피리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하다가 피리가 딱 그치면 일어나서 쉬었다. '아롱이 양반'은 성난 황소를 제압한 인물이다. 모래가 튀고 장딴지가 꿈틀거리며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그 과정이 생생하게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소가 뒷발질을 하며 훌훌 요동을 한다./ 뒤잽이다./ 서로 밀리지 않는다./ 소가 밀고 들어오자/ 아롱이 양반 끙 힘을 쓰더니,/ 보자보자 했더니, 이것이 시방 니가 나를 깐봐! 장딴지에 지렁이 같은 퍼런 핏줄들이 꿈틀거리며/ 두 발이 땅을 파고들 때, 끙 힘을 쓰니,/ 집채 같은 황소 벌러덩 쿵 쓰러진다./ 동네 사람들 일제히 일어서며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 소리 산을 울린다./ 아롱이 양반 두 눈이 풀린 소 코뚜레 잡고/ 천천히 소 일으키니,/ 둘 다 땀범벅이 되어 식식거리다/ 땀으로 온몸이 번들거린다./ 소 얌전하게 고개 숙이고 강변에 서 있다./ 아롱이 양반 소고삐 잡고 강물로 들어가/ 소 등에 물 끼얹으며/ 애썼다, 따독따독/ 소 등 두드려준다. _ '아롱이 양반' 부분 

 

▲이번 시집에는 시인이 찍어온 진메마을 사진들이 함께 실렸다. 이 마을 멧새들은 헛청 시래기를 쪼아먹고 '푸른 똥'을 싼다. [김용택 제공]

 

'앞산도 길고 뒷산도 길고 산 따라 마을도 길어서 긴 뫼가 진메'된 마을의 풍경들도 싱그럽다. '한 사나흘 눈 오면/ 볏이 노란 멧새들이 마을로 내려온다./ 헛청 시래기에 매달려/ 시래기를 쪼아 먹는다./ 눈 위에다가/ 아주 작은/ 푸른 똥 싼다.'('멧새') 달걀을 삼키는 구렁이도 보았다. '달걀을 다 삼키고/ 배가 볼록한 구렁이가/ 기둥에 칭칭 감고/ 꿈틀꿈틀 힘을 쓰는 것을 보았다.'('구렁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옛날 어떤 할아버지가 논에 갔다가 구렁이를 삼치창으로 찔러 죽였는데 붕어를 잡아다가 끓인 후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 삶아져 있더란다. 어떤 할머니는 엄지손가락보다 더 큰 연두색 깨벌레를 잡아 죽였더니 역시 붕어를 끓인 냄비 속에 연두색 깨벌레들이 오글오글 삶아져 있더란다. 시인은 "생명들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는 외경심이 구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융자해준 돈으로 오리를 키웠지만 망한 뒤 서울로 향했던 저간의 사정이 담긴 '서울' 시편들은 역설적으로 진메마을을 더 환하게 밝힌다.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먼 고향으로부터 배가 고파온다./ 오늘밤은 달이 높이 뜰 것이다.' 시집 말미에 이르면 '부르면 한없이 따라 나오는 그 그리운 이름들을' 모두 호명한다. 

 

진메, 장산, 진뫼, 새몰, 일구지, 물우리, 중전, 무당밭골, 새몰 벼락바위, 하산길, 꽃밭등, 벼락바위, 두루바위, 자라 바위, 까마귀바위, 작은 두루바위, 절골, 평밭, 살바위, 수두렁책이, 작은골, 큰골, 찬샘, 도롱꽃, 삼긋배미, 우골, 연단이골 (…) 작대기, 애기지게, 대패, 짜구, 꼴, 암반, 쟁기, 깍쟁기, 벌통바위, 복두네 샘, 갓쟁이 양반, 용환이 양반, 순창 양반, 철환이 양반, 양쇠 양반, 송새완, 명렬이 양반 (…) 도굿대, 확독, 풋독, 디딜방아, 징, 장구, 북, 소고, 부낭, 똥장군, 전짓다리, 삼 품앗이, 지팡이, 담뱃대, 부지깽이, 소두업, 별똥, 여물, 여물통, 코뚜레, 헛청, 외양간, 횃대, 해치깡, 소쩍새 (…) 뽕나무버섯, 박달나무, 발기, 물꼬, 철귀, 못줄, 가물치, 지에무시, 무구덩이, 잉애, 베틀, 빨치산, 보루대, 딱꿍총, 인절미, 조청, 콩과자, 창호지, 닥나무, 초가집, 이엉, 돌담, 샛길, 샛거리, 능구렁이… _ '그리운 그 이름들' 부분

"이 이름들을 새벽에 일어나 쓰면서 울었어. 슬퍼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거지. 가난한 삶 속에서도 인간을 잃지 않고 지켰던 아름다움 때문이었어. 이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린 세상이잖아. 지금 우리 사는 걸 봐. 어디에 아름다움이 있어. 그때 그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고 이름들을 다 써가는데 눈물이 났어." 

 

▲ 100살 넘은 '서춘 할아버지 느티나무' 아래 김용택 시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은 어찌 해볼 도리 없이 소멸돼가는 그 마을을 이제 시집으로 살려낸 셈이다. 그는 "나의 공부는 끊임없이 돌아오는 것, 마을로 걸어들어오는 과정이었다"면서 "이제야 그 마을에 닿았다"고 말한다. 시인이 '남방' 하나만 걸치고 '꼬추 덜렁덜렁 하면서' 아버지 손 잡고 느티나무 아래를 가던 날.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았어./ 아가, 더 자랐구나./ 강 건너 나무들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 느티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며 웃었어./ 저놈 봐!/ 저놈이 웃네./ 모든 오늘이 느티나무 아래로/ 모여들어 나를 보며/ 다 같이 환하게 웃었어. _ '그늘이 환하게 웃던 날'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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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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