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슬픔도 고통도 좋다, 영이별만 아니라면"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05-03 09:16:08
시업 60년 맞아 새 시집 '마음의 집' 펴낸 김초혜 시인
세월 비례해 생각은 깊어지지만 언어 표현은 짧아져
선시풍 106편에 담은 인간사와 울음, 촌철 같은 깨달음
"나이가 많다는 건 욕심을 벗어 놓고 반성만 하라는 것"

김초혜 시인이 시업 60년을 맞아 새 시집 '마음의 집'(시와시학사)을 펴냈다. 196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사랑굿'의 시인으로 각광받았고, 이후로도 꾸준히 수행하듯 경작해온 결정체들이 고여 있다. 짧은 시들 106편에다 '시인의 말'과 해설을 합친 108 꼭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인간사 백팔번뇌를 성찰하고 깨달음을 향해 가는 언어의 탑이기도 하다. 

 

▲시업 60년을 맞아 새 시집을 펴낸 김초혜 시인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거나 시를 생각하지 않으면 부쩍 늙는 것 같다"고 말한다. [김초혜 제공]

 

시인에게 만남을 청했지만 말의 허망한 속성을 경계한 시인은 대신 서면으로 답변하겠노라고 했다. 정갈한 손글씨로 하룻만에 돌아온 그의 답변들은 시인의 성정을 반영하듯 단아하고 논리적이며, 울림을 주는 산문시처럼 다가온다. 

김 시인은 "호미를 매일 쓰면 반짝반짝 빛이 나고 벽에 걸어두면 녹이 슨다"면서 "6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원시적 노동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나이 많다고 더 지혜롭거나 시를 잘 쓰는 건 아니다"면서 "나이가 많다는 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자기 반성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 덩이 눈물은 생명의 닻이기도 하고 강력한 신성(神性)이며 시인의 정신이자 생명"이라며 "그리움은 삶의 또다른 희망이고, 우리네 삶의 빛"이라고 말했다.

-시업 60년에 이른 소회는 어떠신지요?
"막상 시를 쓴 세월 60년을 맞이하고 보니 그 60년은 자연 나이 60년과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인생 60년은 이룬 것도 없이 바쁘게만 산 것 같은데, 시업 60년은 시집들이 있어서 한결 알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는 삶이었습니다. 방법이 아니고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시는 내 소유물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소유물이어야 했기에 어둠 속에서도 빛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짦은 선시풍으로 채워진 시들이 특징입니다. 특별히 이번 시집에 부여하는 의미는 어떠할까요?
"승려들이 도 닦은 세월이 길어지고 도력이 깊어질수록 인생에 대해서 할 말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시 작업이라는 것이 삶과 인생에 대한 또다른 탐구이고 종교적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시를 쓴 세월이 길어지니까 인생에 대한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런데 언어 표현은 반대로 짧아지게 되는군요. 그 정신의 방황과 궤적이 쌓여 있는 시집이, 이번 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삼천배도// 한 덩이// 뜨거운 눈물이다_'영겁'

-맨 앞에 배치한 저 '영겁'의 울림이 큽니다. 간절함을 상징하는, 한 덩이 뜨거운 눈물이야말로 모든 것을 용해시키는 큰 사랑일까요?
"그렇습니다. 열락의 세계는 종교의 세계를 벗어나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면 또 다른 형태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 덩이 눈물은 생명의 닻이기도 하고, 강력한 신성(神性)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정신이고 생명이었습니다. 나의 힘이었고 능력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시인은 박제된 사슴에서도/ 심장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매미 알에서 한낮의 더위를/ 뻐꾸기 알에서도 뻐꾸기 울음소리를/ 기러기 알에서도 가을날의 적막함을/ 풀꽃에서는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_'시인'
내 안에 산다// 내 안에서/ 희로애락, 오욕칠정/ 품고 있다// 부화될 날을 기다린다 _'나의 시에게'

-시와 시인을 성찰한 시편들이 눈에 띕니다. 시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시는 내 삶의 결과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호미를 매일 쓰면 반짝반짝 빛이 나고 벽에 걸어두면 녹이 슨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생활철학은 모든 예술가들이 어떻게 예술활동을 영위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처음 시인이 되었을때나 6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저의 문학적 재능에 점수를 박하게 줍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저의 재능을 시적 생산에서 빛나게 하기 위하여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원시적 노동을 끊임없이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가슴은 언제나 맑고 고요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정이 깃들고 울음이 깃들고 시심이 깃드는 것입니다. 감정과 감정이 서로 섞여서 그 감정의 물결이 언제나 마음에서 일고 있어야 시인 아닐까요. 복잡한 생각과 냉철한 이성과 정확한 논리의 틀 속에 갇히면 울음이 숨어 버립니다. 모든 것을 벗어버린 울음의 너울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너울로 연결되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 본질은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슬픔도 좋다/ 괴로움도 좋다/ 아픔도 좋다/ 고통도 좋다// 모두 좋다// 영이별만 아니라면 _'좋다'
 
-슬픔도, 괴로움도, 아픔도, 고통도, 살아 있으니 감수해야 하는 것들 맞습니다. 영이별보다는 나은 것이라는 말씀이 절절합니다. '영이별'이란 결국 죽음일 텐데… 어찌할까요?
"죽음의 가장 절실함은 하나뿐인 생명, 그 생명이 접하고 있는 이 세상 만상과의 영원한 결별입니다. 모든 것을 죽음과 연결지어 생각한다면 아무리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것은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는 또다른 환희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항상 생각하며 인생살이를 해나간다면 나날이 의미 깊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이나 슬픔, 괴로움 앞에서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일면이고 인간적인 한계입니다."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있다 _'내생'
평소 섬기던/ 큰스님께// 내세가 있습니까// 긴 침묵 끝에// 없다 _'없다'

-'내생'이 사람들 가슴에 있다는 말은 지금 이곳에서 사랑을 완성하라는 의미일까요?
"내세의 존재유무는 생각 나름입니다.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습니다. 그것이 종교가 존재하게 하는 세계입니다. 저는 사람으로 시인으로 그 내세를 주제로 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 세계는 실존하면서 실존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자손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육체의 소멸과 함께 영혼도 소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지나온 날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합니다. 그것이 곧 내세라고 생각합니다."

열 살의 내가 꿈을 꾸듯 오는구나/ 스무 살의 내가 새봄에 취해서 오는구나/ 서른 살의 내가 피곤에 지쳐 오는구나/ 마흔 살의 내가 속으로 울고 겉으로는 웃고 오는구나/ 쉰 살의 내가 웃고 오는구나/ 예순 살의 내가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오는구나/ 일흔 살의 내가 고요함과 평정심을 친구 삼아 오는구나/ 여든 살의 내가 웃으며 가고 있구나 _'고개 고개 넘어'

-'여든 살 고개'는 웃으며 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떠신지요?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80이 넘어 세상을 떠나는 분들에 대해서는, 섭섭하지만 오래 사셨다고 반응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죽음과 맞닿아 있는 나이가 80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80에는 모든 욕망도, 욕심도, 괴로움도, 슬픔도, 걱정도 다 벗어나야만 하는 나이입니다. 오직 하나 다가오는 죽음을 향하여 그것이 고통스럽지 않고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 들여서 웃음으로 맞을 때 그 사람은 삶을 가장 참되게 알차게 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설가 조정래와 더불어 한 생을 수행하듯 글 속에서 살아온 김초혜 시인은 "모란은 내가 갈구하는 내 모습"이라며 "지금도 여전히 봉오리로 있다"고 말한다. [김초혜 제공]

 

나이 많다고/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나이 많다고/ 시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다고/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다고/ 인품이 있는 것도 아니라네 _'나이 많다고'

-그렇다면 나이가 많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나이 많다는 건,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는 얘기입니다. 욕심을 벗어놓고, 자기 반성만 하라는 것입니다."

아지랑이마다/ 지난 일들이/ 피어난다// 그것이 가슴을 에는/ 고통일지라도/ 그립다// 머물다가 간/ 무심한 그 바람도/ 그립_'그리움'

-지독한 그리움은 고통이 수반되는 일종의 질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가슴을 에는 고통일지라도' 그리움이 소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움은 또다른 삶의 희망입니다. 지금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그 나름의 희망을 갖지 않으면 좌절하고, 그 좌절이 병이 되어 죽고 맙니다. 그리움은 인간의 삶을 추동해 나가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요. 인생의 길목길목마다에서 만나게 되는 그리움은 우리네 삶의 빛입니다."

모란을 심은 줄 알고/ 모란을 기다렸는데/ 모란은 피지 않아/ 봄꿈을 접었습니다/ 이제 더 기다릴/ 세월이 없어서 _'저무는 날에'

-생의 모란은 끝내 피지 않을까요?
"아직도 모란을 기다립니다. 모란은 내가 갈구하는 내 모습입니다. 지금도 봉오리로 있습니다. 그 봉오리가 만개할 날을 지금도 기다립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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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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