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 캐릭터로 나누어 남자의 심리를 기술하면서
시간이라는 반역자가 훼손하고 마는 결혼·사랑 주목
"현명하게 파국 피할 '마법의 띠' 찾아보면 있을 것" '반역자의 이름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치밀했다. 순서대로, 간격을 두고, 정확히 하나씩 허물었다. …반역자의 농간으로 수많은 결혼과 사랑이 원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사랑이, 결혼이 던진 그물에 갇혀 영원히 버둥대다 죽어버리는 일은 흔했다. 나는 어느 순간 시간이 신의 반역자가 아니라 동역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가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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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 들어 창작집과 장편을 연달아 펴내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심아진. 소설가 이기호는 "이 작가는 지금 '전력투구' 중"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너를 이루는 모든 너를 사랑해!' 이렇게 말한 남자가 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놀랍도록 순수한 이 감정은 '말의 진액'으로 고였고, 여자를 충분히 감동시켰다. 재열과 윤서는 결혼했고, 이제 육년 만에 헤어지려 한다. 심아진의 새 장편 '프레너미'(강)는 왜, 어쩌다, 어떻게 그들의 사랑은 분열되고 왜곡됐는지 그 전말을 세밀한 심리 곡선을 따라 전개한다. 남자의 분열된 캐릭터들을 따라가는 내밀한 심리가 작가 특유의 찰진 문체에 실려 흘러간다.
우울과 고독, 자존감 결여에 함몰되곤 하던 재열. 사랑은 많은 걸 잊게 해줬다. '윤서와 결혼을 결심한 건, 윤서와 함께라면 우울도 고독도 자존감 결여도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변치 않을 대상을 바깥에서 구하는 이런 전제는 안타깝게도 이미 파국을 예상케 하는 오류였다.
네 명의 분신이 재열을 따라다닌다. 꼬마, 어머니, 파넬, 예나. 이 중에서도 아버지에게 학대 당하며 변비에 시달리다 치매까지 찾아와 자살한 어머니는 우울과 고독의 가장 깊은 뿌리일 터이다. 이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명약은 사랑뿐이라고 믿는데, 서글프게도 그 사랑은 변한다. 재열이 유효기간이 지난 사랑을 밀어내고 다시 사랑을 찾으려는 몸짓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재열과 윤서는 더블린 유학시절에 만났다. 재열은 블랙사파이어처럼 도도한 그 도시의 피닉스 파크에서 윤서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들이 거닐었던 공원은 사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곳으로 유명한 공간이다. 영화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에서 줄리앤 무어가 아일랜드를 오가며 활약했던 이름이 '오드리'였다. 함께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재열이 오드리라고 불렀던 더블린 시절의 윤서. 그녀 오드리는 그때 분명 한 마리 사슴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한 마리이면서도 여러 마리로 보이는 사슴 그림을 좋아했던 재열이 윤서에게서 한 마리의 사슴만을 보았던 때, 그 또한 자신 안에 깃든 여러 사슴 중 하나만이 전면에 나섰을 때였다. 시간이라는 '반역자'는 여러 사슴을 준동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오드리를 되찾기 위해 오랜만에 더블린을 방문했던 재열은 되돌릴 수 없는 씁쓸한 추억만 안은 채 파넬이라는 남자를 데리고 돌아온다. 아일랜드 독립 영웅으로 영국과 선봉에서 싸웠던 찰스 스튜어트 파넬(1846~1891)은 말년에 영국인 유부녀 캐서린과의 염문으로 아일랜드 민족진영 내에서의 입지는 물론 그간 쌓아온 모든 명성을 잃고 말았다. 파넬은 "내 삶은 아일랜드를 위해 바치지만 내 사랑은 캐서린에게 바친다"면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재열이 파넬이라는 분신을 데리고 온 배경에는, 그 자신 또한 파넬 같은 지순한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은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정념일 것이라는 감정이 공존하고 있다.

'나는 내가 데려온 파넬을 조롱함으로써 우리의 결혼도 조롱했다. 나는 파넬이 캐서린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단지 '착각'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을 오가면서 산재한 정치적 현안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파넬이 캐서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도 했다. 나는 파넬을, 그러니까 윤서를 자극했다.'
삼촌의 어린 시절 형상인 '꼬마'의 철없는 자유분방함과, '몸'은 지극히 맞았지만 늘 싸웠던 대상인 '예나'까지 그를 따라다닌다. 이 여러 마리의 사슴은, 윤서가 다른 남자들을 만난다고 재열이 분통을 터뜨리지만 정작 자신이야말로 윤서를 밀어낸 방증일 터이다.
'윤서의 책임 또한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주위를 배회하는 자들의 책임인가?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도 꼬마도 예나도 파넬도 결코 내가 불러들인 자들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그들이 실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부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눈썹처럼 우습게 뜯겨나간 시간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아진이 근년에 써 온 일련의 소설에는 공통으로 이런 분신들이 따라다닌다. '신의 한수'에서는 여신들이, '후예들'에서는 아예 작가의 분신이 등장해 나레이션을 맡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기척하는 존재들을 심아진은 느낀다고 했다. 재열을 따라다니는 어머니는 '행복해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재열은 찾고 싶었다. 그는 아직 너무 젋어서 허무와 냉소로 가득한 채, 우울하고 고독한 채 남은 생을 다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윤서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이제, 다 해어져 속이 훤히 보이는 가면을 멀리 던져버려야 할 때였다. 여러 겹으로 내 몸을 감쌌던 거짓들의 솔기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설픈 바느질로 이어놓았던 그 누더기들을 더는 그러쥐려 애쓰지 않았다. 무수한 거짓의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재열과 윤서는 어렵사리 관계를 봉합해 보려고 결혼기념일에 외식을 하지만 어색하고 짧게 치른 그 의식 후에 돌아온 집에는 도둑이 다녀갔다. 집안은 난장판인데 무엇이 없어졌는지 모호하다. 그들이 그날 도둑맞은 것은 그들 사이에 남은 마지막 '미련'이었다.
'윤서를 밀어낸 건 나였다. 나를 밀어낸 건 윤서였다. 우리는 공평하게 서로를 밀어냈다. …우리는 꽤 오래, 상대의 주변에 있는 무리를 보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더 피할 수 없게 되자 무리 중에 상대의 본체, 순정하다 할 만한 핵심을 찾기만 하면 된다는 듯도 굴었다. 하지만 수천수만 마리 사슴을 품은 한 마리 사슴을 뒤늦게 그냥 사슴 하나라고 우길 수는 없었다. 한때나마 서로를 아꼈던 우리는 어쩌면 상대를 오롯이 증오하기는 싫어서 이런저런 조각들로 나누어 미워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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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아진은 "제도가 아니라 진짜 사랑해서 공동체를 이루는 결혼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모든 사랑은 시간 앞에서 결국 속수무책인 걸까. 시간은 근본적으로 사랑을 훼손하는 반역의 속성을 지니지만, 어떤 사랑은 현명한 마법의 띠를 활용해 난관을 돌파해나가도 한다고 심아진은 설파한다. 재열과 윤서는 실패했지만 다른 현명한 사랑은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노련한 헤라라면 가끔 아프로디테로부터 마법의 띠를 빌리기도 한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보기 위해 마법의 띠가 필요하기도 하니까. 또한, 어떤 현명한 아프로디테라면 그 띠를 기꺼이 헤라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반역자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면 마법의 띠를 바쳐서라도 헤라를 달래야 하니까. 아프로디테에게 소중한 연인들도 어쨌거나 모두 헤라에게서 나고, 자라고 보호받았으며, 그러고 있고 또 그럴 테니까.'
소설 말미 대사처럼 친구(friem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ienemy)는'나쁘게 해석하면 친구인 줄 알았는데 적이라는 뜻이고, 좋게 해석하면 적인 줄 알았는데 친구라는 뜻'이다. 이 소설에서 재열과 윤서가 상징적인 프레너미이겠지만, 재열을 따라다니는 분신들 또한 몰아낼 수도 하냥 껴안을 수도 없는 애증의 프레너미들이다.
어머니는 고독과 우울의 배척 대상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뿌리인 것이고, 옳게만 살다가 창졸간에 죽은 삼촌의 어린 시절 '꼬마'는 천진난만하고 이기적이어도 껴안을 수밖에 없고, 성적인 합일의 극치를 누리지만 늘 싸우는 대상이었던 '예나' 들이 재열 속에서 동거하는 한, 프레너미의 모순을 극복하기는 난망한 노릇이다. 이 징그러운 적들을 일거에 잠재울 '흥그러운 사랑'을 여전히 기다린다는, 작가의 말.
-결혼과 사랑의 척력에 주목한 소설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랑 없음에 천착하기보다 그 이면에 딱 붙은 사랑 있음을 그리고자 했다. 세상사 모두 귀천궁달(貴賤窮達) 아니던가. …반역자 시간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여전히 흥그러운 그 사랑 위에 가만히 엎드린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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