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이상 중진들 '눈치 게임' 시작
최근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백원우 부원장의 불출마 선언을 기점으로 민주당의 내년 총선 '물갈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민주당의 세대교체 '물갈이론'이 현실화된 가운데 3선 이상 당내 중진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는 9월 초 각 의원실에 공문을 보내 국회의원 최종평가 심사 기간을 알리며 불출마 의향서를 받는다고 공지했다. 민주당은 9월 26일 보좌진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최종평가 방법 설명회를 개최했고, 오는 11월부터 본격적인 평가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당 안팎에서 현역의원인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비례대표 의원 등 10여명이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연말 국회의원 평가에서 하위 평가자 20%까지 포함하면 30여명이 넘는 현역 물갈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거센 물갈이 바람은 특히 3선 이상 중진들에게로 향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당을 지켜온 86그룹(80년대 대학 학번·1960년대생) 인사들 역시 이 바람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과 유은혜 교육부장관 불출마설이 나오자, 지도부 일각에서는 이를 인정했다가 뒤늦게 번복하기도 했다. 그만큼 지도부에서 중진 의원들의 물갈이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총선이 6개월여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터진 총선 물갈이 신호탄에 중진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당내 긴장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찬·원혜영만 불출마 의사 밝혀…5선 아래로는 불출마에 반발 기류
현재 민주당 3선 이상 의원들을 살펴보면 7선 이해찬, 6선 정세균·이석현, 5선 이종걸·추미애·원혜영·박병석 의원이 있고, 4선 의원 13명, 3선 의원 18명 등 총 38명이다. 이들 가운데 김영춘 의원(부산 부산진갑)과 이춘석 의원(전북 익산갑)을 제외한 나머지 16명은 모두 수도권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7선 이해찬 의원은 지난 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6선의 정세균·이석현 의원도 현재의 민주당 분위기라면 불출마할 공산이 크다.
5선 의원들 중에서 불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인사는 원혜영 의원뿐이다. 원 의원도 내부적으로 불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지 공식 선언한 것은 아니다. 지인과 측근들은 21대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에 나서기 위해서라도 총선 출마를 종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대표를 지낸 비주류 대표격인 추미애 의원도 불출마 압박을 보이지 않게 받고 있다. 그러나 본인의 출마 의지가 강하고, '여성 최초 국회의장'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직을 두고 현 문희상 국회의장과 경선을 벌였던 박병석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박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차기 국회의장이 유력해 출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5선 의원 중 상대적으로 젊은 이종걸 의원은 국회의장직보다 차기 당대표에 더 관심이 많은 경우다. 지난해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이 의원은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 4선 의원들은 선배 의원들의 눈치만 보는 모양새다. 당 차원에서도 5선 의원들부터가 백의종군하지 않는다면 후배인 3, 4선 의원들에게 2선 후퇴를 종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속에 이해찬 대표는 9월 19일 국회혁신특별위원회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중진의원들을 향해 "여기 계신 분들 다 신뢰 못 받는 분들 아닌가"라고 말해 물갈이설에 불을 지폈다. 다만 이 대표는 논란이 일자 "중진 물갈이론은 소설"이라고 일축한 뒤, 최근 권역별로 의원 5∼7명을 묶어 의원들과 릴레이 오찬을 갖고 있다.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불안감과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이 대표가 '분위기 다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중진들 "툭 하면 중진 용퇴론…당 지도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진의원들로서는 불만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한 4선 의원은 "개별 의원들의 출마 의지에 대해 당 지도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다선에다가 주요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는 지도부의 상당수가 내년 총선에 다시 나온다고 한다. 이들이 나오지 말라고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도 "툭 하면 중진 용퇴론이 나온다"며 "다선의원들이 그냥 놀면서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니다"라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한 재선의원은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당이 개혁적 새 인물을 세워 총선에 임할 수 있도록 중진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불출마 결정을 쉽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신율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는 본지에 "중진, 다선 의원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친문이 아니다"며 "중진들 중 동교동계나 친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의원들이 많아 '중진 물갈이'가 친문 친정체제 구축을 위한 하나의 명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요한 변수는 정당의 지지율이 과연 대통령 지지율보다 높아질 수 있냐는 것이다.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거의 비슷한데, 만약 역전이 된다면 중진들이 청와대 눈치를 안보고 각자 살길을 도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울러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우리나라 정치권의 물갈이 비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며, 17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의원들 중 50% 이상이 정치 신인들로 메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정치신인들이 많이 진출했지만 우리 정치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얘기인즉슨 중진, 다선 의원들을 솎아낸다고 우리나라 정치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보여주기식 물갈이'보다는 정치 시스템 자체를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
K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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