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테카의 땅…신선한 매력 '풍성'

UPI뉴스 / 2019-04-17 08:00:43
[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⑦]
멕시코, 멕시코시티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 멕시코 시티 전경과 과달루페의 오래된 성당 [셔터스톡]

세계 여행이 보편화하면서 비교적 먼 지역인 중남미 대륙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아직은 낯선 그곳, 처음이라면 어디가 좋을까. 고대 문명의 막내 격인 아스테카를 꽃피운 나라,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거쳐 독립한 뒤 당당히 자신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나라, 바로 멕시코다. 그 나라에 가면 번성했던 문명의 퇴락한 흔적과 현대의 발달한 문화가 뒤섞인, 시간의 길이가 주는 무게감과 오늘을 지탱하고 있는 세월의 깊이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다양한 매력에 빠질 수 있다.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다


멕시코 국기를 보자. 초록색, 흰색, 빨간색으로 나뉘었고, 가운데 흰색 부분에 독수리 한 마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아 있다. 국가 문장으로 사용하는 이 그림은 전설을 이야기한다. 옛날 아스텍 왕이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 “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곳에 큰 도시를 세우라.” 그에 따라 아스텍 인들은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세웠고, 아스테카 문명을 꽃피우게 되었다.


도시는 1325년 멕시코 계곡의 텍스코코(Texcoco) 호수에 있는 섬에 건설했다. 1521년 스페인이 정복할 때까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 번성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테노치티틀란 위에 새로운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한 뒤에도 멕시코공화국의 수도이자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도시, 멕시코시티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수도권 인구로 세계 9위를 차지했다. 사람이 북적이는 길을 걷다 보면 마치 서울에 있는 듯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중심에 있는 소칼로(Zocalo)는 헌법 광장이라고도 부른다. 소칼로라는 말은 ‘기반, 기초’라는 뜻이지만 현재는 멕시코의 도시마다 있는 중앙 광장을 지칭한다. 광장 주변에는 대통령궁, 대성당 등 스페인 지배 당시 세워진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편, 지금도 아스텍 신전 유적지인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가 발굴 중이어서 과거 문명을 기억하게끔 한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은 완공하기까지 240여 년이 걸렸고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것은 물론 그 규모와 내부 장식에서도 스페인 본국의 성당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웅장하다. 


또 대통령 집무실과 일부 행정부가 있는 국립궁전은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에 있는 거대한 벽화가 유명한데, 디에고 리베라가 1951년에 완성한 ‘멕시코 역사’라는 작품이 아스테카 문명과 스페인 침략, 멕시코 독립 등 주요 사건들을 담고 있다. 

 

▲ 예술궁전. 각종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밖에도 예술궁전, 국립미술관, 중앙우체국 등 대리석으로 꾸민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바로크 양식 건물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특히 예술궁전은 격조 있는 실내 장식과 함께 디에고 리베라, 루피노 타마요 등 거장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공연 관람과 함께 작품을 보려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식 건물로는 1956년에 세워진 라티나 아메리카나 타워가 돋보인다. 높이 183m, 44층으로 1984년까지 가장 높은 것이었다. 도심의 전망을 보기 위해 전망대에 오르는 사람이 많고, 최첨단 내진 설계 덕분에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 때 끄떡없이 살아남아 그 이름을 더욱 널리 알렸다.

세계 최대 규모 국립인류학박물관 자랑


빠뜨릴 수 없는 곳은 차풀테펙(Chapultepec) 언덕이다. 야트막한 곳이지만 멕시코의 역사와 함께 한 곳으로 식민시대 군주가 거주했던 성이 있고, 시내도 조망할 수 있다. 주변에 조성한 공원은 규모도 크고 박물관도 여럿 있어 시민들의 휴식지가 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은 자랑거리다. 이곳에서는 테오티우아칸 지역 유물을 포함해 마야 문명, 사포텍 문명 등이 남긴 주요 유적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시대에 따라 분류한 12개 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원주민의 삶을 볼 수 있는 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둘러보기만 하려 해도 숨이 찰 정도다. 전시실마다 빼곡한 유물에는 그냥 휙 눈길만 주고 지나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규모의 대단함을 실감하게 한다. 보고 싶은 만큼 다 보려면 필요한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 소칼로 광장 모습. 멀리 라티나 아메리카나 타워가 보인다.

그러나 ‘태양의 돌’은 봐야 한다. 이돌은 제7아스텍실에 있는 중심 유물로 1790년 소칼로 광장에서 공사하던 인부들이 우연히 발견했다. 지름 3.6m에 무게는 24t이나 된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무엇을 표현하는지 학자들은 아직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아스텍 인의 우주관과 시간 개념을 담고 있다고 하니 갖가지 형상이나 장식을 보면서 나름대로 옛사람의 생각을 잠깐 더듬어 볼 뿐이다. 


밤에는 가리발디 광장이 불빛으로 밝아진다. 곳곳에 식당과 술집이 있어 저녁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어디서나 음악이 울려 퍼진다. 길거리 악사인 ‘마리아치’들이 두서너 명씩 짝을 지어 연주를 해주고 돈을 받는다. 실내외 상관없이 그냥 두 귀로 선율에 흠뻑 젖을 수 있다. 멕시코인의 넘치는 열정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는 순간이다.


디에고·프리다 부부와 망명객 트로츠키


▲ 국립궁전 중앙계단에 있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일부)

멕시코시티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셋 있다.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와 프리다 칼로(1907~1954) 부부,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 망명객 레프 트로츠키(1879~1940)다. 


프리다 칼로가 살았던 집인 카사 아술(Casa Azul, 파란 집)은 1958년부터 박물관이 되었다. 입구에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칼로는 소아마비로 태어난 데다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약하지 않았다. 화가를 자신의 꿈으로 삼고 디에고 리베라를 동경하고 따르면서 2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또 공산당에 입당해 사회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굵고 짙은 눈썹에 쏘아보는 듯한 눈매를 지닌 칼로는 강렬한 표정만큼 섬뜩하고 충격적인 묘사와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을 그려 세계에 알려졌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벽화운동’의 중심인물이다. 벽화운동은 1920년대 멕시코의 민족문화를 부흥하고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정부가 시행한 정책으로 대중이 공유할 수 있도록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알라메다 공원 부근에는 대형 벽화 한 점만 전시한 디에고 리베라 벽화박물관도 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리베라의 여성 편력은 심하다 못해 처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칼로를 절망에 빠뜨렸다. 결국, 이혼을 했으나 다시 결합하는 등 굴곡진 관계를 이어갔다. 두 사람이 한때 살았던 집이 현재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이다. 

 

▲ 트로츠키 박물관 내부

한편 칼로는 레프 트로츠키와 염문을 뿌렸다. 정적 스탈린에게 내쫓겨 해외 각국을 떠돌던 트로츠키는 리베라·칼로 부부의 도움으로 멕시코시티에 정착하게 된다. 망명객의 신세를 자신의 불운한 처지와 동일시했던 것일까. 트로츠키는 칼로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다가 소문이 나자 따로 거처를 마련해 나오는데, 결국 그곳에서 1940년 8월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에게 등산용 지팡이로 맞아 죽음을 맞는다. 그가 살던 집도 이제 박물관으로 꾸며 공개하고 있다. 방과 침대, 마지막 순간의 서재 모습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인식하면서 살았던 사람의 심정을 잠시 헤아려 본다. 이제 역사가 된 현장에는 한 줄기 연민만이 떠돌 뿐이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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