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펼치는 삶의 찬가...연극 '이방인'

이성봉 / 2018-08-27 17:08:16
카뮈는 '이방인'에서 절망을 뛰어넘는 삶을 말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이런 전보를 보내왔다. ‘모친사망. 내일 장례식. 조의를 표함’.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이다.”

연극 <이방인>. 막이 열리면 주인공 뫼르소(전박찬)의 독백이 흐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죽음’이 시작된다.

첫 죽음은 어머니의 죽음, 즉 자연적인 죽음이다. 이 자연사는 ‘전보’ 형식을 빌려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 통념상 큰 슬픔을 자아낼 것 같은 어머니의 죽음이 뫼르소에게는 그다지 충격을 주는 것 같지 않다.

둘째 죽음은 살인이다. 뫼르소가 바닷가에서 아랍인을 죽이고 체포된다. 재판장이 법정에서 살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뫼르소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대답한다.

셋째는 사형이다. 뫼르소에게 선고된 죽음의 형벌이다. 그는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이 또한 죽음을 앞둔 그의 독백이다.

▲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든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죽음과 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극단 산울림 제공]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의 죽음이 아니라 ‘미래’의 죽음이다. ‘남’의 죽음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죽음이다. 여기서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든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죽음과 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죽음 앞에서 겪는 절망이 아니라, 그 절망을 뛰어넘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라고 할 수 있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뫼르소의 읊조리는 독백 역시 절망의 색채가 없다.

연극은 작품이 지닌 내면의 연극성을 찾아내 이야기와 행위 사이에 독백과 대화를 끼워 넣음으로써 적절한 긴장의 균형을 지키고 있다.
 

▲ 카뮈는 미국판 <이방인> 서문에 “나에게 오래전부터 <이방인>은 매우 역설적인 작품”이라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울지 않았던 뫼르소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특히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것은 삶을 좀 쉽게 살기 위해 우리들 모두가 매일같이 하는 것이다.”

뫼르소는 있는 그대로 말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그런 뫼르소의 모습에 사회는 그로부터 위협을 당한다고 느낀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스스로 저지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이때 뫼르소는 “뉘우친다”라고 말하기보다는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유죄선고를 받는다.


이제 우리는 어떤 대단한 영웅적 태도를 취하지도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에서 만난다.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삶을 마감한 뫼르소는 현대 사외에서 일어나는 인간 소외와 개인에 대해 무관심한 부조리한 사회를 보여준다.

연극 <이방인>은 소설에서 ‘이야기된 것들’이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한 끝에 드러난 새롭고도 구체적인 모습이다. 출연배우는 이런 작업을 가리켜 '활자를 3D로 만드는 작업'이라 표현했다.

이번 재공연에서는 지난해 초연 당시 채택했던 원형 무대를 다시금 해변과 주인공의 집, 재판정과 감옥 등 장소에 걸맞게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조명들과 클래식 기타 선율을 기반으로 한 음악 등을 통해 원작의 이미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임수현 연출가는 이번 재공연에서 출연진을 줄이면서 적은 인원으로 다수의 역할을 담당한 점을 이야기하면서 재판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검사 측과 변호인 측 증언을 대비시킨 점을 강조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난해 제54회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전박찬 배우가 다시 뫼르소를 맡았다. 전 배우는 무미건조한 성격에 감정의 변화를 잘 드러내지 않는 뫼르소를 자신에게 투영시키면서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또한 공연 내내 이어지는 상당한 분량의 대사를 장면의 상황에 맞게 톤을 조정해 가면서 막힘없이 소화해 냄으로써 극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중저음의 독백이 뫼르소의 심경 변화를 잘 드러내면서 극의 중심을 흔들리지 않게 지켜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 왼쪽부터 정나진, 전박찬, 박윤석, 강주희, 문병주 배우 


아울러 페레스 역을 맡은 정나진, 살라나모 역의 박윤석, 변호사 역의 문병주, 그리고 마리 역의 강주희가 새로운 앙상블을 보이고 있다.

 알베르 카뮈 원작의 <이방인>은 내달 16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K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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