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UP통신이 미국에 최초 타전"

오다인 / 2019-03-11 16:56:17
[인터뷰]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AP통신 인용한 뉴욕타임스보다 3일 빠르게 보도

▲ 1919년 3월 10일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치카샤 데일리 익스프레스> 신문에 실린 〈UP통신〉의 3·1운동 기사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제공]

 

1919년 3월 10일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일간신문 <치카샤 데일리 익스프레스>에 '한국이 독립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한국의 3·1운동과 독립 의지를 보도한 기사다. 기사작성자를 나타내는 '바이라인'은 "By United Press(UP통신)"였다.

 

이날 아이다호주의 <이브닝 캐피탈 뉴스>, 인디애나주의 <사우스 벤드 뉴스 타임스> 등 다른 지역 언론들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이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바이라인이 표기되지 않은 기사도 있지만, 내용이 똑같습니다. 모두 〈UP통신〉에서 받은 내용을 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한국의 3·1운동이 미국에서 보도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주 연구원은 "중국 상해의 현순 목사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안창호에게, 이후 안창호가 〈UP통신〉에 3·1운동 소식을 알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UP통신〉은 1907년 <유나이티드 프레스 어소시에이션(United Press Association·UPA)>으로 창립한 이후 1958년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INS)>와 합병되면서 지금의 〈UPI〉로 명칭이 바뀌었다. 합병 전까지는 〈UP통신〉이라는 줄임말로 통용됐다. 미국인으로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해외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도 〈UP통신〉의 초기 통신원이었다.

 

지금까지 3·1운동을 최초로 보도한 미국 언론은 <뉴욕타임스>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주 연구원의 발견으로 <뉴욕타임스>가 아닌 미국 전역의 지역 신문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3·1운동의 미국 첫 보도 시점이 3일 앞당겨졌다.

 

미국의 지역 언론들은 〈UP통신〉이 타전한 기사를 받아 1919년 3월 10일 3·1운동을 미국 최초로 소개했다. 대부분은 1면 톱 기사 등 주요기사로 실었다. 이에 비해 <뉴욕타임스>는 〈AP통신〉을 인용해 이보다 3일 늦은 3월 13일 3면 하단 기사로 3·1운동을 보도했다.


주 연구원은 지난 2월 28일 이 같은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 주 연구원은 국사편찬위원회 소속으로 아날로그 역사 자료의 디지털 전환을 수행하는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지금도 '디지털 역사 자료'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이번 발견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 '크로니클링 아메리카'에서 옛날 신문들을 살펴보던 중 파악하게 됐다. 3·1절을 앞두고 "학계에서는 3·1운동의 미국 최초 보도 시점을 언제로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는 것이다.

 

주 연구원은 "지금까지 3·1운동의 미국 최초 보도는 3월 13일자 <뉴욕타임스>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미국의 고(古) 신문들을 직접 찾아본 결과 3월 10일자 미국 전역의 지역 신문들이었다"고 설명했다.
 

▲ 1919년 3월 10일 미국 아이다호 주의 보이시 시에서 발행된 <이브닝 캐피탈 뉴스>는 〈UP통신〉이 타전한 내용을 받아 한국의 3·1운동을 보도했다.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제공]

 

▲ 미국 몬타나 주의 <그레이트 폴스 데일리 트리뷴>은 '한국의 독립 선언: 일제로부터의 반란이 선포되다'라는 제목으로 3월 10일자 신문 1면 톱 전면에 3·1운동을 보도했다.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제공]

 

▲ 1919년 3월 10일 미국 인디애나 주의 <사우스 벤드 뉴스 타임스> 신문에 실린 〈UP통신〉의 3·1운동 기사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제공]

 

주 연구원에 따르면 1919년 3월 10일 미국 △ 오클라호마 △ 아이다호 △ 필라델피아 △ 몬타나 △ 버지니아 △ 인디애나 △ 애리조나 △ 오레곤 △ 아이오와 △ 네브라스카 △ 워싱턴 △ 캔사스 주 신문들이 한국의 3·1운동을 보도했다. 주 연구원은 "이들 기사 대부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3월 9일~10일 〈UP통신〉이 타전한 기사를 인용해 3·1운동을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들 기사는 두 명의 한국인(정한경과 이승만)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려고 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3·1운동 역시 한국인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밝혔다. 특히 몬타나 주의 <그레이트 폴스 데일리 트리뷴>은 '한국의 독립 선언: 일제로부터의 반란이 선포되다'라는 제목으로 3월 10일자 신문 1면 톱 전면에 3·1운동을 실었다.
 
▲ 정한경의 저서 <더 케이스 오브 코리아>(1921)에 실린 정한경(왼쪽부터), 김규식, 현순 목사의 사진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제공]

 

주 연구원은 "이 기사는 당시 현순 목사가 상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연락을 취해 3·1운동을 알린 것으로 전했다"면서 "3000여 명의 기독교인을 포함한 천도교도, 대학생, 학생, 일반 시민 등 300만여 명의 군중이 1919년 3월 1일 오후 1시를 기해 서울과 평양, 그리고 다른 주요 도시에서 한국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썼다"고 밝혔다. 기사에 "손병희, 이상재, 길선주 등의 이름도 등장한다"고 부연했다.

 

현순 목사는 1919년 중국 상해에 밀파, 한국의 독립청원서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인물이다. 3·1운동이 시작된 이후인 1919년 3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안창호에게 전보를 보내 재미교포들이 독립운동의 현황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주 연구원은 "미국 언론의 3·1운동 보도는 상해·샌프란시스코로 타전된 〈UP통신〉 계열과 서울에서 타전된 〈AP통신〉의 기사로 나뉜다"면서 "〈UP통신〉 계열은 3·1운동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가고자 했던 이승만과 정한경에 대한 뉴스를 계속해서 보도했다"고 분류했다.


또 "독립운동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자주적인 열망의 움직임을 나타내지만, 이를 언론을 통해 전파하고 확산하는 데도 자주적인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1919년 3월 10일 <이브닝 캐피탈 뉴스>가 전한 3·1운동 관련 기사 전문.

 

 "샌프란시스코, 3월 10일.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이 받은 전보에 따르면 한국이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9일 전인 3월 1일 한국이 자국 내 주요 도시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행했다는 전보가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이어진 전보다.

 

한국인 대표들에 따르면 이 같은 독립 선언 소식은 일본의 무선과 전보 통제로 인해 지연됐다. 이 대표들은 상해에 있는 한국국가독립연맹의 대표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한국국가독립연맹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장인 안창호에 따르면 이승만 박사와 정한경 박사는 파리강화회의가 열리기 전 한국의 독립 열망을 전하려고 워싱턴에서 파리행 여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 명의 다른 한국인도 현재 파리로 향하는 중으로 추정된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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