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종묘 차담회, 세계유산 사적 이용 의혹
'조선의 상징' 문화유산들, 일제 강점기에 시련
광복 후에도 문화유산 부적절 활용 논란 지속
권력층 자의적 이용, 폐쇄적 접근 등 경계해야
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 중 하나는 종묘 차담회와 관련된 권한 남용 등 논란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9월 지인들과 차담회를 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를 사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당시 김 여사 일행이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가 있는 종묘 영녕전 신실까지 둘러본 사실이 이달 드러났다. 신실은 종묘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공간이다. 1년에 두 번 지내는 대제(大祭) 때만 개방될 뿐 평상시에는 관람은 고사하고 출입 자체가 엄격히 제한된다.
종묘를 관리하는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 지시로 신실을 개방했다고 밝혔다. 종묘 차담회는 특검 수사와 별개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추궁 대상이 될 전망이다.
조선 시대에 종묘는 궁궐, 사직과 함께 국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문화유산들은 일제 강점기에 시련과 오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특히 궁궐 파괴가 심각했다. 종묘는 궁궐보다는 피해가 적었지만 '종묘관통선'으로 불린 도로가 개통되며 외곽 담장 일부가 철거됐다.
1945년 광복 후 상황이 나아졌지만 이 문화유산들의 가치에 걸맞지 않은 부적절한 활용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세 사례만 살펴보자. 문화유산 관리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종묘 차담회 논란과 더불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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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6쿠데타 가담 군인들을 위해 1961년 5월 29일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펼쳐진 '위문 쇼'에서 춤추며 공연하는 여성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갈무리] |
첫 번째는 5·16쿠데타 13일 후인 1961년 5월 29일 열린 이른바 '5·16혁명군 위문 쇼'다. 당시 '공보처 홍보국 사진 담당관'이 촬영한 행사 사진을 현재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달려 있다. "1961년 서울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앞에서 마련한 5·16군사혁명(↘쿠데타)군을 위한 위문 쇼. 무희들의 공연 광경."
사진 속에서 근정전 앞뜰에 자리한 군인들은 노출이 적지 않은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춤추는 젊은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하단에는 앞뜰에 있는 군인들보다 가까이에서 여성들을 지켜보는 또 다른 이들도 있는데, 군의 주요 간부로 추정된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조선 시대에 주요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한 곳이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될 만큼 비중 있는 문화유산이다. 5·16쿠데타 세력은 그런 공간을 자신들이 총칼로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것을 자축하는 행사장으로 변질시켰다.
두 번째는 1963년 11월 한일 친선을 내걸고 열린 개싸움 행사다. 경향신문 1963년 11월 12일 자에 따르면, 문제의 행사는 대한경비견협회 등이 경복궁 뜰에서 주최한 한일투견대회로 한국 대표 개 4마리를 일본 대표 개 4마리와 일대일로 싸우게 했다.
80원을 내고 관람권을 사야 하는 유료 행사였다. 3000여 관중이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싸우는 개들의 모습에 손뼉을 치며 흥분했다고 한다. 3:1 한국 승리로 끝났지만 한국에서 출전시킨 개가 모두 토종개가 아닌 일본 토좌견(土佐犬) 즉 도사견이어서 뒷말이 나왔다.
오늘날과 달리 1960년대에는 경복궁에서 5·16쿠데타 기념 서독 서커스단 초청 공연(1963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1964년)처럼 대중의 눈길을 끄는 연예·오락 행사가 심심찮게 열린 게 사실이다. 그런 시기임을 감안하더라도 한일투견대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행사다.
개싸움과 한일 친선이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인지, 유료 개싸움이 궁궐과 어울리는 행사인지 등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문화재보호법이 1962년 1월 제정되고 경복궁이 1963년 1월 사적으로 지정된 후임에도 이런 행사를 허가했다는 점도 문제다.
세 번째는 2004년 9월 국보인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 열린 국제검사협회 총회 만찬이다. 화재 위험이 있는 화기(火器)가 사용되고 흡연이 허용된 가운데 술을 곁들인 검사들의 만찬이 진행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검찰은 화기는 최소한만 사용했고 과도한 음주는 없었으며 다른 기관도 경복궁에서 만찬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 사안이 적잖은 시민을 허탈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경회루가 당시 출입 통제 구역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주변에 띠를 두르고 일반인 출입을 막던 시기였다. 경회루는 이듬해인 2005년 6월에야 44년 만에 일반에 다시 제한적으로만 개방된다.
이처럼 논란의 만찬이 있던 시기에 평범한 시민들에게 경회루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 곳 앞에서 일부 계층 또는 특정 기관이 화기 사용, 흡연, 음주 등이 허용된 행사를 열어왔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세 사례를 볼 때 왕정 시대 문화유산 활용과 관련해 권력집단의 자의적 이용, 부적절한 유료 대중오락 행사장으로 변질, 특정 계층의 폐쇄적 접근 가능성은 늘 경계해야 한다. 종묘 차담회 논란을 계기로 문화유산 관리의 틀을 점검해야 하는 이때 되새겨볼 만한 사항들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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