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기획] 이 세상 모든 자작들의 고향

UPI뉴스 / 2018-12-17 16:51:03
[장감독의 대륙횡단] Episode #5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년간 나홀로 SUV 차량을 타고 46개국 7만9365km에 이르도록 종횡무진 대륙을 달린 사나이가 있다. 장용우. ‘왕초’ ‘호텔리어’ ‘행복합니다’ 등 수십편의 MBC, SBS 드라마와 JTBC ‘D데이’ 등 대작 드라마를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이번엔 평생 꿈꾸어 오던 드라마형 로드다큐를 만들었다. UPI뉴스 온ㆍ오프라인 채널에 ‘장감독의 대륙횡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럽과 아시아 대륙 곳곳의 현장에다 온몸을 던져 이를 담은 영상과 기사. 그 장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감동은 우리를 또다른 세계로 이끈다. [편집자주]

 

'나타샤'와 '자작나무'를 떠올리다


▲ ‘끝이 없다’ 는 표현은 이런 때 하는 거다.

지도검색에서 자작나무를 입력하면 309개의 상호가 나온다. 카페, 레스토랑, 곰탕집, 치과, 족발집, 포장마차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국립중앙도서관 검색창에다 쳐넣으면 886건이 출력된다. 유난히 시집이 많고 ‘자작나무 수액을 이용한 탁주 제조에 관한 연구’라는 놀라운 논문도 있다. 송호근 교수가 2005년도에 연암 박지원, 허균, 정약용, 박경리, 시인 백석 같은 사상가 문학인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 배경과 사회학적인 비평을 담은 책을 내놨는데 제목이 ‘나타샤와 자작나무’이다. 아마도 백석 시인(1912-1995)의 시에서 표제를 가져왔을 것이다. 시인이 사랑했던 여인 자야를(김영한) 노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북동 길상사가 요정이었던 시절 소유주였던 나타샤는, 시세 1000억원짜리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며 그 1000억원은 시인의 한줄시보다 못하다 했다 한다. 185cm 큰 키에 미남, 4개국어를 구사하며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시를 썼던 시인. 여인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사랑에 값을 매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중략)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타샤가 등장하면 으레 눈이 내린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카츄샤는 ‘부활’의 주인공. 나타샤는 카츄샤, 소냐와 더불어 근대조선 문학에서 로맨티시즘을 상징하는 첫사랑 또는 청순가련한 여인의 표제어가 되었다. 식민의 그늘에서 방황하던 지식인 문학인들이 허공을 향해 부르짖는 애매모호한 만인의 연인이자 애수의 발라드였다. 


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 /
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위에 눈이 내린다 /
눈은 정다운 옛 이야기 /
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 / 좁은 길에 흩어져 /
아스피린 분말이 되어 곱―게 빛나고 /
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 / 그 위를 지나간다/
눈은 추억의 날개 때 묻은 꽃다발 /
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 /
공원의 동상 위에 / 동무의 하숙 지붕 위에 /
캬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위에 / 밤새 쌓인다
- 김광균 ‘눈 오는 밤의 시’

 

카츄샤는 만인의 여인이자 애수의 발라드


▲ 쓸쓸하지만 의연해 보이는 것은 차가운 바람과 냉정한 파란 하늘 가운데 저들이 아무 말없이 서 있는 까닭이다.

 

김부자가 부른 ‘카츄샤’에도 눈이 내린다. “…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떠나간다 …” 가수 김현성의 ‘백석 시인 탄생 100주년 앨범’을 발표했는데 ‘자작나무’라는 노래가 있다. 좀 뽕끼가 있는데 카일리의 ‘자작나무’는 좀 현대적이다. “이제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지난 시간들이 내게 찾아와 조용히 내 맘을 두드리고 너를 떠올리게 해. 눈이 시릴만큼 하얗게 내린 눈과 함께 너를 보게 된 그 날 …” 여기서도 어김없이 눈이 내린다. 제목이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는 시집도 있다. 혹시 소나무 대나무 숲에는 눈이 내리지 않을까봐 걱정된다. 이호준 작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의 표지도 눈 덮인 숲의 자작나무 일러스트로 꾸몄다.

 

자작나무, 눈, 나타샤. 이 순백의 이미지는 시베리아를 발원지로 삼는다. 형벌과 고통의 버려진 땅으로 추방되었던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그 동토의 땅에서 회개와 각성의 기적을 맞이했다. 그래서 시베리아는 새로운 정신적 유토피아로 재탄생했다. 그런 부활의 이미지가 러시아 문호들의 손으로 생산되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후 근대 조선의 지식인 문학인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복음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러시아, 시베리아 팬덤을 형성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러시아어로 떠들었고 앞다투어 카츄샤와 나타샤를 찾아 북으로 향했다. 식민의 고통 속에서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청년지식인들에게 혁명의 나라, 서구 근대화에 성공한 이상향, 매우 가까운 유럽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다. 그래서 한용운은 시베리아를 찾았고 나운규도 러시아로 탈출했고 이효석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세 권의 소설을 썼다. (‘노령근해’ ‘상륙’ ‘북국사신’) 

 

러시아는 식민지 청년지식인들의 이상향

 

▲ 예술적 재능은 조상과 하늘과 자연이 협력해서 선물하는 것이다.

“어디를 무엇을 하러 가느냐 하면 꼭 바로 집어 대답할 말은 없으면서도 그래도 가슴 속에는 무슨 분명한 목적이 있는 듯도 싶은 그러한 길이였다. 그것도 시대사조라고 할까, 이렇게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것이 무슨 영광인 것 같이도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광수 ‘이광수 선집’) 


김진영 교수는 이를 ‘시베리아의 향수’라 명명하였다. 


“근대기의 러시아관은 낭만적 동경과 향수의 긍정적 이미지를 축으로 한다 … (중략) …근대 조선의 ‘러시안 드림’은 실재하는 꿈이었던 셈인데, 애초 그 꿈을 싹틔운 토양이 바로 러시아 문학이었다.”


산림청은 ‘휴양 복지형 국유림 명품숲’ 10개소를 선정했는데 강원도 인제 원대리 달맞이산 자작나무숲이 단연 선두에 위치한다. 금산 편백나무숲과 더불어 여행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꼭 가봐야 하는 숲이라 한다. 수종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지만, 자작나무는 고위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핀란드, 노르웨이, 러시아가 그곳이다. 한반도에는 함경북도에 많다고 한다. 남쪽의 자작나무들은 대부분 인공조림한 것들이다. 핀란드 사우나 또는 러시아식 사우나인 반야에서 이파리가 매달린 가지로 몸을 탁탁 때리는 것도 자작나무이다. 가구와 종이의 재료이자 자일리톨 껌의 원료로도 쓰인다. 자작나무에 달라붙어서 진액을 먹고 자란 차가버섯은 연해주를 찾는 한국관광객들의 필수 쇼핑리스트이기도 하다.

 

“자작나무는 어느 북구의 설원에서 온 키 큰 여인이 옷을 벗고 서 있는 것처럼 이국적이다”라고 설명적으로 노래한 시인도 있다(변경섭 ‘자작나무3 - 사랑은 고독’) 키는 20m 정도까지 자라니까 큰 편이다. 하얀 자태가 신비롭고 순수해 보여서 여인의 나신으로 묘사했는지 모르겠다. 생애 대부분을 눈 속에 덮여 있어야 하는데 눈의 반사율이 높아서 나무의 수관 같은 내부 시스템에 해가 올까봐 햇빛을 반사하도록 진화한 거라 한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원래는 樺라고 썼는데 華자로 변했다)라고 쓰는데 여기서 화촉(華燭)이란 말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에 기름이 많아서 그걸 돌돌 말아 불을 켜고 신방을 밝히는 초가 되는 것이다.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가 자작나무 위에다 그린 거라 한다. 천년을 버티는 나무껍데기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명품 자작나무숲의 파라다이스를 독점 질주하다


▲ 옆에서 보거나 위에서 보거나 저들은 아름답다.

우리는 자작나무를 동경한다. 동경이란 무언가를 간절히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인데 때로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좋아하는데,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나무가 불에 타는 소리를 듣고 이름 ‘자작’의 어감이 좋을 수도 있다. 아니면 희고 기다란 자태가 보기 좋아서 일 수도 있다. 거기다 가구, 종이, 약재, 버섯과 자일리톨 껌에 이르기까지 쓰임새도 다양하다 하니 안 좋아하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런 자작나무가 넓디넓은 시베리아 땅에 가득하다. 그 한가운데를 달려가는데, 명품 숲 백배 천배의 파라다이스를 독점 질주하는데, 한용운과 나운규, 백석이 앞섰던 방랑길을 따라가는데 어떻게 그냥 무심히 갈 수가 있겠는가. 시를 쓰기로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이곳은 세상 모든 자작들의 고향”

 

KPI뉴스 / 글·사진 장용우 감독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UPI뉴스

UPI뉴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