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오전, 문래 철공장 밀집 골목은 한가했다. 몇몇 공장은 문을 열었다. 지나가며 간판을 올려다 봤다. 간판을 봐도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샤링, 빠우, 밀링, 너링……. 이게 도대체 어떤 작업을 말하는 거지. 아무래도 한국어는 아닌 듯했다.
문래 산책은 친구 K와 함께하기로 했다. 둘 다 문래는 처음이었다. 빵을 좋아하는 K가 약속 장소를 물색해서 알려줬다. 스마트폰 지도앱을 켜고 목적지를 확인하며 몇 번 골목을 꺾어 철공장 밀집지역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촬영팀을 만났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들인 듯 보였다. 모델은 골목을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촬영팀을 지나 몇 걸음 걸으니 철공장 사이에 베이커리 간판이 보였다. 이런 곳에 베이커리라니. 스마트폰 위치 확인이 아니라면 지나칠 게 뻔한 곳이다.
친구는 벌써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마지막 봤던 게 일 년 전이다. 곧 만나자는 말만 카톡으로 수차례 나눴다.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페이스북을 통해 대충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는 건 달랐다. 몇 가지 빵을 더 골라 계단을 올라갔다. 유리문 밖으로 계단이 보여서 그냥 올라갔을 뿐인데 뜻밖의 장소가 나왔다. 장독대 같은 공간에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고, 바로 옆에 폐욕조에 꽃이 피어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에 어울릴만한 인테리어였다. 다른 건물이 내려다보이지 않지만 적당히 따뜻한 햇살을 즐기기엔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린 세 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그렇게 지난 것도 모르고 우리의 얘기에 몰두했다. 원래 계획은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문래를 같이 걷는 것이었다. 그런데 밀린 얘기를 하다가 시간이 마구 흘러버렸다. 시간을 확인한 K는 곧 집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손님이 오기로 했단다. 결국 K랑 문래사거리에서 헤어졌다. 나는 좀 더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현재 문래동과 도림동 일대는 경기도 시흥군이었다가 1940년대에 서울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도림정(道林町)으로 명명되다가 경인철도를 기준으로 북쪽을 영등포동 일부와 합해 '사옥정(絲屋町)'이라 개칭하였다. 당시 종연방직회사와 동양방직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실 사(絲)'자를 넣어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광복 후 일본식 이름 '사옥정'을 '문래동(文來洞)'이라는 우리식 이름으로 고쳤다. 방직공장이 우리말의 실을 자아내는 '물레'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이와 소리가 비슷한 '문래(文來)'라는 이름을 넣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골목에서 낯선 용어들과 다시 만났다. 푸리, 절곡, 엔드밀, 프라즈마……. 오전과는 달리 대부분 철공장은 문이 닫혀 있다. 그러고 보니 가끔 특이한 간판이 보인다. 재료는 철인데 간판은 예술작품이다. 문래에는 예술가 작업실이 많다고 들었는데 많이 보이진 않았다. 문래동 1가, 2가, 3가를 걸어서 문래 사거리에 이르렀다. 문래예술공장까지 둘러보는 게 산책의 목표였다. 하지만 이미 지쳐 있었고 배도 고팠다. 지나쳤던 일본 라멘집 간판이 떠올랐다. 찾을 수 있을까. 한 바퀴만 더 돌아보고 라멘집을 찾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철공장 밀집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은 인적이 드물었다. 철공장 사이에 있는 카페나 술집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지나치려는데 일본어로 '라멘'이라고 적힌 둥근 종이 간판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라멘을 먹고 나오니 골목은 벌써 어둑했다. 방향을 더듬어 문래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아무래도 이번 문래 산책은 실패 같아. K랑 돌아다니다가 수다를 떨었어야 했나. 별다른 정보 없이 무작정 온 게 잘못된 걸까. 철공장 간판에 있던 낯선 낱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다.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문래캠퍼스'라는 글자가 새겨진 문이 보였다. 불도 켜져 있었다. 무작정 들어가서 진열된 팸플릿과 책을 뒤적거렸다. 문래동 안내 자료들이다. 문래 투어 프로그램도 있고, 영등포 경인로 주변 도시재생활성화지역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일단 일요일에 있는 도시재생활성화지역 투어 프로그램 참가신청을 하고, 자료 몇 개를 챙겨왔다.
들고 온 자료들에는 문래동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인터뷰 자료집도 있었고, 문래 속에 예술과 예술인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자료도 있었다. 궁금했던 간판 속 용어를 풀어놓은 자료도 있었다.
문래를 산책하려면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이것이 문래 산책에서 깨달은 점이다. '문래'라는 곳을 처음으로 내게 각인시킨 조해진의 소설 '문래'를 찾아 다시 읽는다. "쇠를 깎는 소리, 떨이를 외치는 상인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미친 여자의 헛소리와 무당의 신들린 웃음소리, 개와 염소의 비명, 그런 소리들 속에서 나는 친구들과 함께 흙으로 집을 짓거나 금 밖의 술래로부터 도망 다니며 하루를 보냈다."(조해진「문래」)
이 글은 공정무역 사회적기업에서 운영하는 카페 '티모르'에서 쓰고 있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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