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까치·호랑이, 민화에선 까치 비중이 커진 이유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5-08-07 16:28:40
[김덕련의 역사산책 24] 까치 호랑이 그림
'케데헌' 열풍에 까치 호랑이 배지 품귀 현상
배지 모티브는 대표적 민화 까치 호랑이 그림
호랑이·까치 함께 그린 이유 관련 의견 분분
호랑이 그림에 까치 등장 여부 등 시기별 차이

까치 호랑이 배지가 세간의 화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문화유산을 모티브로 만든 상품 중 하나인 이 배지는 근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그 배경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이 있다. '케데헌'이 흥행하면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를 닮은 배지를 찾는 사람이 폭증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문화유산 상품 브랜드 '뮷즈' 온라인 숍에서 예약 판매 중인 까치 호랑이 배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두 동물을 화폭에 함께 담은 민화의 까치 호랑이 그림은 배지 모티브이자 한국인 다수에게 매우 익숙한 이미지다. 민화라는 말을 들으면 이 그림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한반도 곳곳에 분포하는 침엽수인 소나무다.

호랑이, 까치, 소나무. 까치 호랑이 그림은 이 세 가지를 기본 요소로 해서 다양하게 변주됐다. 그렇게 탄생한 수많은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까치 호랑이 그림과 관련해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 번째는 왜 호랑이와 까치를 하나의 화폭에 옮겼을까 하는 것이다. 두 동물은 생태계에서 깊이 엮일 일이 별로 없다. 까치는 호랑이의 주요 먹잇감이 아니고 둘이 공생 관계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영험한 맹수인 호랑이가 요사스러운 기운을 물리치고 까치가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오래전부터 한반도 주민들이 정초에 액을 막고 복이 오길 기원하며 집에 까치 호랑이 그림 등을 붙인 것과 이어지는 해석이다.

무속과 연관된 해석도 있다. 그중 하나는 까치는 신탁(神託)을 전달하는 존재, 호랑이는 그 신탁을 전해 듣는 무당의 신물(神物)이라는 것이다. 까치는 토지와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의 신탁을, 호랑이는 산을 다스리는 산신의 신탁을 전하는 영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표범과 관련지어 기원을 추정하기도 한다. 표범의 중국어 발음이 '보(報, 보답하다·알리다)'와 비슷하고 까치는 '희(喜, 기쁨)'를 상징해 중국에서 둘을 함께 그린 그림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상징처럼 여겨졌는데, 이것이 한반도에 전해진 뒤 표범이 호랑이로 대체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아 있는 까치 호랑이 그림들을 살펴보면, 호랑이 고유 무늬와 표범 특유의 점박이 무늬를 섞어 표현한 사례가 꽤 있다. 호랑이와 표범 중 어느 쪽을 그린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당시 사람들이 왜 이렇게 표현했을지 등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두 번째는 그림에서 호랑이와 까치의 관계 및 각각의 비중 문제다. 이와 관련해 까치 호랑이 그림이 중국 원나라와 명나라 시기, 그중에서도 특히 후자의 호랑이 그림에서 연원했을 것이라는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까치와 소나무를 배경으로 어미 호랑이가 새끼와 함께 있는 모습을 담은 명나라의 호랑이 그림이 임진왜란(1592~1598)을 전후해 조선에 전해졌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적인 까치 호랑이 그림으로 새롭게 정립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호랑이 그림은 시기에 따라 까치 등장 여부 등에 차이를 보였다. 명나라 그림 영향을 받아 17세기에 탄생한 호랑이 그림들 중에는 까치 없이 소나무만 그린 것이 더 많다. 까치를 그렸더라도 큰 의미 부여 없이 여러 배경 중 하나로만 등장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에 널리 유통된 것으로 보이는 민화의 호랑이 그림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우선 까치 등장 사례가 급증했다. 전보다 비중이 커진 까치가 호랑이와 맞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림도 늘어났다. 그러면서 호랑이를 바보처럼 묘사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19세기는 낡은 지배 구조가 무너져 내리던 때였다. 그로 인한 시대의 모순은 1862년 삼남(경상·전라·충청) 지방을 중심으로 한 농민 봉기로, 1894년에는 그보다 더 큰 규모의 동학농민전쟁으로 폭발했다.

격변의 밑바탕에는 계속 짓밟힐 수는 없다는 민초들의 변화된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적 민화로 꼽히는 까치 호랑이 그림에서 강자(호랑이)는 전보다 위축되고 약자(까치)의 존재감이 커지는 모습이 나타난 것을 그러한 시대 변화와 무관한 일로 볼 수 있을까.

△주요 참조=정병모 글(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까치호랑이' 항목), 한유진 논문(「민화의 주술적 기원과 상징성 - 호랑이 그림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41, 2014), 박은정 논문(「근대 이전 호랑이 상징성 고찰」, 『온지논총』 43, 2015)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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