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여성문화회관 시니어모델 지망생 "언젠간 런웨이에 설 것"
시니어모델로 새 인생 열어가는 액티브 실버들
소일거리를 찾아 마실 나온 노인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평균 연령 60대지만 눈빛은 여느 20대 청춘 못지않게 빛났다. 워킹연습 시간, 많은 이들이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거울을 보며 끊임없이 자세 연습을 했다. 다홍색 통바지를 입은 여성 시니어 모델은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꼰 뒤 머리를 쓸어 올려보였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남성 시니어모델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더니 한동안 거울을 응시했다.

"한번 보세요. 여기 나와 있는 시니어 분들 얼굴을요. 길거리에서 만나는 '노인'들하고 표정부터 달라요."
4년 차 시니어 모델 천황성(63) 씨가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교실을 가득 채운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은 공원이나 전철에서 만날 수 있는 주눅 들고 심통스러워보이는 노인들과는 한참 달랐다.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넘쳤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강해보였다. 기자가 카메라를 꺼내들자 "나도 찍어 줘" "이제 그만 나와. 나도 좀 찍게"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여기 있는 분들처럼 노인들 표정이 밝아지면, 에너지 넘치는 대한민국이 되는 겁니다. 안 그래요?"라고 기자를 안내하던 천 씨가 물었다.
시니어들도 안다. 처신하기에 따라 자신들이 젊은 세대에게 '꼴통 보수'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더 나아가 '꼰대'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음을.
시니어 모델 천 씨는 그런 두려움과 고정관념이 실버 세대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천 씨는 "함께 모델 준비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자식과 배우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민망해하는 분들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평생을 가부장적 질서에 길들여진 채 살아온 시니어들은 기성의 권위와 체통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남성 시니어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 다수의 여성 시니어들도 선뜻 무언가를 도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 나이에 무슨..." "내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생각에 발목을 잡히면 새로운 도전은 어느새 물건너가고 만다.
2단계는 '약 올리기'였다. "그거 돈 되나?" "삶에 무슨 보탬이 된다고..." 밤마다 보습 크림을 바르고 헤어왁스로 멋을 낸 천씨에게 이런 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3단계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근사한 모습으로 모델 일을 시작한 천 씨 얼굴에 드러난 행복이 지인들에게도 보였던 거다.
제대로 익은 술은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오크통 속에서 수십 년간 숙성된 고급 위스키나 와인이 대표적이다. 잘 익은 술이 그처럼 평가를 받는 것은 세월과 익어가는 풍미를 다른 것으로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액터스 정경훈 대표는 '나이 듦'을 재정의 하자고 제언했다. 그는 "백발이면 어떻고 눈가에 주름이 있으면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며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60년, 70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나야만 스미는 인생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은 대체 불가능한 멋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도전, 나이가 장애라고 생각한 적 없다"
그는 3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았다. 여느 주부들처럼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내 삶을 살고 싶어”
송파여성문화회관 모델 클래스에서 만난 남지수(61) 씨. 그의 워킹은 당당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동안 모델 수업을 받는 걸 주변에서 알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이 나이에 뭘...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 나이를 의식했다고 할까..."

하지만 시작이 어려운 법. 문화회관의 모델 클래스에 등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감이 생겼다. 당당하게 워킹하고 자세를 잡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는 "지금은 떳떳하게 이야기 하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남 씨는 최근 제2의 인생을 열어가는 시니어들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뀐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칠두씨 등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니어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여럿 등장하며 시니어도 '무언가에 새로 도전할 수 있는 나이'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
보라색 계통의 화려한 옷을 좋아하고 9cm 정도의 힐을 신고 싶어 한다는 남 씨는 가장 큰 꿈이 뭐냐고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보라색 카펫이 깔린 런웨이에 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이민재 기자 lm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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