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인공지능 사회학이 필요하다

KPI뉴스 / 2025-05-02 12:22:59

우리나라 연구팀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의 최고 권위 학술대회 'CHI 2025'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서울대 임하진·김은미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구팀은 미국 카네기멜론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미래의 나와 대화하면서 청년들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 오픈AI 'ChatGPT'로 생성한 미래의 나(AI)와 편지를 주고받는 이미지. [ChatGPT 생성]

 

진로탐색 수업에서 '수년 후 미래의 나'라는 가상의 자아를 상상하면서 대화 형식으로 적성을 찾아나가는 상담 기법은 그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AI로 만든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내가 문답을 나누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형식은 처음 시도되었다. 대규모 언어모델(LLM)로 사용자의 가치관·정체성 등을 반영한 '미래 자아 AI 에이전트'를 구현해내는 기술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AI의 일방적인 정보 제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에이전트와 대화하거나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진로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인간 중심 AI 기술'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올해 2월 서울대 공과대학과 카네기멜론대가 공동 설립한 '인간 중심 AI 연구센터(SNU-CMU Human-Centered AI Research Center)'가 행한 이번 연구 결과는 AI 기술의 사회적 응용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입증한 초기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래의 나로부터 온 편지(Letters from Future Self: Augmenting the Letter-Exchange Exercise with LLM-based Agents to Enhance Young Adults' Career Exploration)'란 제목의 논문은 지난달 26일 일본에서 개최된 HCI(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의 최고 권위 국제학술대회 'CHI 2025'에서 상위 1%에게만 주는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연구자들은 세계적으로 학교의 진로설계 수업에서 활용되는 '미래의 나에게 편지쓰기(Future Self Letter)' 기법을 AI 기술로 디지털화했다. 학생이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거나, 반대로 미래의 자신이 돼 현재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식의 자기성찰 활동은 미래 자아를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진로 계획을 수립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스스로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학생의 인지적 부담이 크고, 미래 자아의 현실감과 생동감이 부족해 학생이 진로탐색에 깊이 몰입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공동연구팀은 총 36명을 3개 그룹으로 나누어 기존 방식 1개 그룹을 제외한 2개 그룹 학생들에게 LLM 기반으로 생성한 미래 자아 AI 에이전트와 편지를 주고받거나 채팅으로 문답하는 경험을 하게 했다. 그 결과, AI 에이전트의 편지를 읽은 참가자들이 활동 몰입도와 전반적인 진로 탐색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구체화된 미래상을 그리는 데도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채팅 기반 상호작용은 참가자의 적극적인 진로 탐색과 실용적인 정보 교환에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인간 중심 AI 설계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편지 방식은 참가자의 느긋한 읽기와 반복적 숙고를 가능케 해 깊이 있는 정서적 성찰을 유도했고, 채팅 방식은 실시간 피드백과 유연한 대화를 통해 보다 적극적인 정보 탐색과 진로 조정에 효과적이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기계와의 상호작용 방식이 자기 성찰의 질과 방향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논문의 제1저자인 전하연 박사과정 학생은 "AI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도록 돕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연구 계기를 밝혔다. 임하진 교수는 "AI가 생성한 조언이 너무 현실감 있게 전달되다 보니, 일부 참가자들이 이를 '이미 결정된 미래'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사용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해석 여지도 남길 수 있도록 에이전트의 표현 방식과 개입 강도를 조절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AI 중독 내지 과몰입을 경계했다.

 

'인간 중심'이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AI 등장 이전에도 새로운 도구가 발명되면 이를 사람이 쓰기 쉽고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인문학적 연구가 실시됐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 포드 자동차의 대량생산 시스템인 컨베이어벨트 방식 도입 이전에 나온 테일러의 시간 및 동작 연구(time & motion study)는 육체노동자의 작업 공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설계하기 위한 최초의 과학적인 연구였다. 하지만 인간을 너무 기계에 종속시켜 비인간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 이후 수행된 후속연구들은 인간의 감정, 신체적 피로도, 기계와의 상호작용 등 보다 인간 중심의 공정 탐색으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컴퓨터와 인간 사이의 통역 언어라 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interface) 역시 끊임없이 인간 중심으로 개선돼왔다. 1950년대 종이에 구멍을 낸 펀치카드로 컴퓨터에 입력하던 초기의 물리적 인터페이스에서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으로 입력하는 가상 인터페이스의 폰 노이만 현대 컴퓨터로 소통 방식은 발전했다. SW 역시 포트란, 코볼 등 수학 공식 같은 기계어에서 일상 언어 비슷한 DOS, 그림처럼 직관적인 그래픽, 말로 입출력하는 음성 인터페이스로 인간에게 점점 더 가깝게 다가왔다. '인간 중심' 기계로 개량하는 것은 단순히 더 편하게 쓰고자 하는 목적만은 아니다. 인간다움을 상징하는 존중과 배려, 협력과 소통 등 인류 보편의 가치에 부합하는 AI로 만들기 위함이다. AI를 이렇게 인간사회와 공존 공영하는 친구로 육성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AI 사회학이다.

 

서울대-카네기멜론대 공동 연구팀은 미래자아 AI 에이전트와의 상호작용이 청년들에게 미치는 강한 심리적 영향력을 확인했다. 조언의 해석 방식과 정보 활용 수준에 따라 AI 과의존이나 자기결정권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또 사용자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에이전트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개인정보가 수집되므로 향후 기술이 상용화될 때 프라이버시 보호와 데이터 투명성 등 윤리적 고려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시 한 번 외쳐본다. 인공지능 사회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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